옛날 필름을 뒤적이면서.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평생동안 흘린 수만가지 흔적들을 만난다. 그때 그 장소, 음악, 음식, 공기같은 것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흔적들을 다시 마주칠 때 우린 진정으로 '추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닫는다. 인간은 무한할 수 없기에 모든 걸 품을 수 없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가질지 무엇을 놓을지. 선택하지 못한채 머뭇거린다면 시간을 잃는다.
"미소랑 연락하는 사람 없어?"
"전화를 안 받더라고"
"폰이 끊긴 거 같아" "나아지면 연락되겠지 뭐"
오랜만에 모인 밴드 멤버들은 최근에 만났던 미소를 떠올린다. 그들은 그날 이후 다시 미소를 잊을 것처럼 보인다. 미래의 어떤 날 아주 작은 흔적으로 미소를 추억할 것이다. 먼훗날 젊은 날의 작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영화 '소공녀'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생각하게 된다. 담배와 위스키를 위해 집을 포기하고 결국에는 머리카락(?)까지 포기한 미소. 끝까지 자신의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미소를 보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소중한 무언가를 위해 집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미소의 삶이 옳은가 아니면 미소를 내보낸 밴드 멤버들의 삶이 옳은가. 미소의 삶은 우리와 거리가 매우 멀다. 때문에 낭만적이다.
나는 미소가 아닌 밴드 멤버들을 생각해보고 싶다. 담배와 위스키를 위해 집을 포기한 미소처럼 그들 역시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삶의 한 부분을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혹은 사랑을 위해, 아님 더 좋은 삶을 위해.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얻으면 그에 맞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한다. 밴드 멤버들은 미소를 포기했다. 그들에게 미소는 함께 밴드를 구성했던 멤버이기도 하지만 부족했던 과거의 자신, 낭만을 꿈꾸던 20대 초반 자신의 모습이다. 미소는 젊음의 흔적이고 낭만의 흔적이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밴드 멤버들에 비해 젊어보이는 미소의 얼굴을 보자) 마지막까지 낭만을 꿈꾸며 남과 다른 길을 걷던 한솔 역시 미소를 둔 채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그는 웹툰을 포기했고 미소를 포기했다.
“돈 많이 벌어 다시 돌아올게" 미소에게 전한 한솔의 마지막 말은 어쩌면 결국 자신이 놓아버린 꿈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새해가 다가옴을 덤덤히 여기면서도 나 역시 2019년의 목표들을 세우고 있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겠다' '다이어트를 하겠다' '결혼을 하겠다' 등등. 난 소공녀를 떠올리며 반대를 생각했다. 2018년에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2019년 난 무엇을 잃게 될까. 내가 잃어버린 수많은 흔적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영화의 엔딩에서 미소는 도시 한가운데 텐트를 치며 머문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한솔은 한국으로 돌아와 미소를 찾을 수 있을까. 밴드 멤버들은 미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흔적은 점점 옅어진다. 나는 내가 평생 잃어버린 흔적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만난다면 난 그것들을 어떻게 맞이할까.
Written By. 낭만피셔
Photo By. 낭만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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