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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피셔 Dec 28. 2020

마모된 삶에 대해 -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인간은 정지해 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찰리 카우프먼이 훌륭한 감독이냐고 묻는다면 답변하기 어렵다. 내가 본 그의 영화 '시네도키, 뉴욕',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쉽지 않은 영화였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고, 가끔은 졸음과 싸워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가 좋다.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선샤인', '시네도키, 뉴욕',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등 이야기는 난해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점점 우울해지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현실적이다. 인간의 삶은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울로 회귀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내가 본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우울한 영화다.


제목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감독 : 찰리 카우프먼
배우 : 제시 버클리, 제시 플레몬스, 토니 콜렛, 데이빗 듈리스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을 통과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정지해 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하는 것이다'


갓 성인이 된 20살. 대학교에 입학 후 강의실 근처에서 만나는 22살의 선배들은 모두 어른이었다. 옷이 달랐고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난 아직 성인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성인이었다. 5년 후 25살이 된 나는 20살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어른이 되기엔 멀었고, 철이 없었다. 하지만 내 나이는 당시 22살 선배들보다 3살이 많았고 군 복무까지 마친 상태였다. 당시 신입생들이 본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은 멈춰있고 시간이 우리를 통과한다면, 끊임없이 통과하는 시간에 우리는 마모되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간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사람은 철이 들고, 어떤 사람은 야박해지고. 그리고 "너 변했어?"라는 말에 당황하며 "난 그대로야"라고 우길지 모른다. 마치 나처럼. 하지만 객관적으로 32살의 난 20살의 나와는 다르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대부분은 시간의 풍파에 견디며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속 제이크가 그런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바람에 마모된 자신이 과거 꿈꾸던 자신의 모습이 아닌 것을. 그리고 그 간극이 너무 깊다는 것을. 시간이라는 바람이 너무 강해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마모된 그의 삶 속에서 제이크는 어쩔 수 없이 망상에 빠졌다. 티브이 속에서 혹은 학교에서 훔쳐보는 뮤지컬 속 한 장면 속에서. 그는 자신을 그곳에 투영시켰다. 


'그 가정은 옳다. 두려움은 커져간다. 이제 대답할 시간이다. 질문은 단 하나.'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아무리 행복한 망상이라도 결국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더 행복해질수록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계속되는 망상 속에서 그는 현실로 돌아올 것을 알았고 되뇌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하지만 그는 반복해 왔다.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여있던 아이스크림만큼.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 끝을 안다. 그는 가장 영광스러운 곳에서 제이크는 본인이 끝을 선택한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시간이라는 바람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견디는 것뿐이다. 마모되지 않기 위해 혹은 덜 마모되기 위해.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고 우리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우연 속에서 현실을 맞은 제이크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일까? 어쩌면 자기 안으로 숨은 제이크의 선택이 최선일 수 있다. 최소한 끝은 본인이 맞이했으니까. 시간은 인간을 통과한다. 인간은 견디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는 자기 방식으로 견디다 사라졌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답이 없는 우울한 영화였다.



Written By. 낭만피셔
Photo By. 낭만피셔
Instagram : @romanticp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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