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 #.001
집에 있는 책을 좀 정리했다. 중고서점에 내다팔기 위해서였다. 짐도 줄여야 했고, 앞으로도 잘 안 볼 것 같은 책들이었다. 사실 언젠가는 봐야지 하면서 고이 모셔놓은 책들 이기도 했다.
휴일 낮에 일어나서 집 주변 북까페에 갈까 하다가, 곧 이사가게 될지도 모르는 강남역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김에 잠깐 들려서 책을 팔려고 했다. 그러다 출발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고, 주차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려서 책을 팔고 밥을 먹으면 애인은 바로 기차를 타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마음이 급했나보다.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복작대던 강남역도 한몫했을거다. 내가 아껴두었던 책들을 작은 수레에 싣고, 끌고 가는 것을 도와주는데 급한 마음에 함부로 다뤘다. 내가 하겠다고 해도 답답한지, 아니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계속 자기가 하겠다고 우겼다. 그 와중에 묶어놨던 책들은 계속 쓰러졌고, 바닥에 끌리기도 했다. 나는 가는 내내 속상했는데, 복잡한 사람들과 급한 일정에 너에게 나는 보이지 않았나보다.
다행히 중고서점에는 대기줄이 없었고, 빠르게 팔 수 있었다. 한 권씩 바코드를 찍는 내내, 나는 마음이 서운했다. 그리고 마치 아끼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의식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 와중에 책 한 권은 급하게 옮기면서 바닥에 끌려서 손상이 심했고, 매입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다친 것처럼 괜시리 마음이 아팠다.
잠시 매장 안을 둘러보던 너는 다시 계산대 앞으로 왔고, 얼른 계산하고 나가자는 분위기였다. 매장 직원은 포인트로 하면 30% 더 준다고 하는데, 나는 또 그 앞에서 망설였다. 그 서점은 내가 e북을 많이 사는 곳이라, 포인트로 하면 5만원 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너는 옆에서 계속 현금으로 받으라고 했다. 포인트로 받으면 책을 또 살 거 아니냐고. 그렇겠지. 그래서 현금으로 받았다. 만 원짜리 몇 장, 천 원짜리, 그리고 동전 몇 개로. 너무 헐값에 파는게 아니냐는 엄마 말이 계속 생각났지만, 안 보는 책을 계속 지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매장에서 나오면서 나는 아쉽다고 말했다. 보고 싶었던 책들인데 돈 몇 푼에 팔게 돼서 말이다. 그리고 그 책들을 살 때 느꼈던 마음들과 과거의 열정 가득한 내가 떠올라서 말이다. 너는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책이 많다고, 보지도 않으면서 뭘 이렇게 많이 갖고 있냐고 늘상 하는 말이 생각났다. 아꼈던 책을 파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나의 상실감을 너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작은 마음까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까? 어떤 이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내 과도한 바람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2019. 10. 3.
(사진 출처 : Unsplash, Jamie Tay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