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

더 포스트 보고 왔다

by 하나김

"읽는 거 말고 쓰는 거 좋아하는 사람?"


경쟁사(그것도 상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에 엄청난 특종이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크게 물을 먹은 날, 이런 얘기 들었던 것 같다.


"뭐해? 아직도 여기 있어?"


선배에게 욕 먹고 잔뜩 쫄아서는 뭐라도 시키실까 해서 눈치보며 서 있을 때, 이런 말 들은 적 분명히 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워딩은 다르지만, 취지는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좋은 기자라거나, 미모가 어떻다거나 하는 유의.


나에게 이 영화 <더 포스트>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사와 장면, 스토리를 따지고 들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가 나의 개인적인 체험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여성으로, 기자로 일하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 그리고 늘 동경하고 꿈꿔왔던 워싱턴포스트의 모습까지. 다른 사람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를 장면들에 울었고, 웃었고, 가슴 졸였고, 설렜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다. 기억의 파편들을 기록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2013년에 언론재단 연수 프로그램으로 워싱턴 포스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 사진과 꼭 같은 모습의 본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기억.


#1. 기자로서 엄청난 특종을 했던 경험은 없지만, 단독 기사라도 발제한 다음 날에는 잠이 잘 안 왔다.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머리는 너무나 맑아져서 계속 뒤척이게 된다. 기사와 관련된 사람이 항의 전화라도 할까 불안하기도 하고. 실제로 항의 전화가 오면 무섭고 떨리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아무 전화도 안 오면 너무 허탈하고 실망스럽고 서운하고.;;


#2. 물을 먹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아침마다 신문을 볼 때 손이 떨렸다. 선배들에게 "너 지금 뭐하는 거냐?" "아무 것도 안 해?" 같은 말을 들으면 숨이 턱 막히고 그 자리에 얼어서 망부석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힘은 들었지만. 극도로 치열하게 일하는 문화 속에서 매일 자극받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 작은 기억들이 마구 밀려와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마감 시간이 목을 죄어 오면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을 물어뜯게 된다. 정신차려! 5분 남았어!!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심정으로;



#3. 흔히 '여러분'으로 번역되는 "레이디스 앤 젠틀멘"을 말하고 싶어도 남자뿐이어서 "젠틀멘"이라고만 인사하는 캐서린 그레이엄. 세상 떠난 남편을 대신해서 신문사 대표 자리에 앉은 캐서린은 이사진에게조차 '케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남자들은 그게 친절함이고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차별이자 개무시. 70년대였으니 오죽했을까 싶지만, 미국의 70년대 모습이 2000년대의 한국 사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사랍시고 건네는 '아이구 미모의 기자님이 오셨네' 라든가 '여성분이 일하기는 힘들겠어요' 같은 말은 심심하면 들었던 것 같다.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 기자님'이라는 말은 '김 기자님'보다는 확실히 많이 들었다. 악의가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상처받았고, 속상했던 기억.


#4. 조판을 마친 신문 틀에 종이가 지나가고 인쇄된 신문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선형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모습은 무슨 비룡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을 보는 듯 아름다웠다. 기자부터 배달원까지 모든 구성원이 오늘 '우리' 신문에 큰 기사가 나갈 것이고 그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모습은 이상적인 일터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급결론)신문사를 떠나왔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는 세상을 바꿀 것이고, 우리가 만드는 새로운 시스템은 문화를 바꿀 것이다. 그렇게 믿는 구성원들과 일하고 싶다.


스트립, 행크스, 스필버그, 더 포스트. 이걸로 충분하다. 설명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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