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녁에서 우린 처음 만나 식사를 했지. 그리고 카페도 가고 신촌에서 영화도 보고.
네가 세운 계획은 거기까지였어.
그런데 내가 헤어지기가 싫더라.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길래 같이 잠깐 보자고 했어.
신촌에서 너랑 처음 길거리 공연을 봤어.
그리고 너랑 처음으로 노래방에 갔지.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신촌역이 왜 그리 우리와 가까운지. 그 앞에서 헤어지는 게 싫어 우리는 이대역까지 걸었어.
2019년 5월 18일. 가을과 초여름 그 어딘가의 날씨였지.
넌 베이지색의 린넨과 코튼이 섞인 셔츠와 하얀 바지를 입고 있었어. 시계를 찬 손목과 팔뚝이 보이게 셔츠를 걷고 있었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혹시나 내가 차에 부딪치지 않게끔 차들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팔을 뻗는 너.
그 모습에 반했어.
지켜줄 것 같았어.
너라면 앞으로도 나를 이렇게 지켜주겠구나.
오늘은 회사에서 기분이 언짢은 일이 있었어.
나는 너보다 퇴근이 이른 편이라 너와 통화하려면 네가 퇴근할 때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지.
그래서 홍대입구역에서부터 서대문역까지 혼잣말을 하며 걸었어. 그리고 혼자 기도도 하고 노래도 불렀어.
그러다 신촌역과 이대역을 지나는데 우리 처음 만난 날이 생각이 나더라고.
그리고 마침 네게 전화가 왔어.
내 고민,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안 좋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이 이야기가 너를 우울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무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지 않으려고 해.
그런데 사실 그럴 새도 없이, 너의 장난스러운 말들에 웃음이 먼저 나. 그리고 너는 늘 그렇게 나를 웃게 만들어버리고 다른 대화로 가게끔 만들어.
그래서 난 계속 웃다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 너에게 말하지. “아아! 이제 내 얘기할래. 내 얘기 들어줄 수 있어?” 그러면 너는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 하지만 또 진지하게 고민해 줘. 그리고 해결책을 내주지. 그러면 나는 마음이 시원해져.
그런 사람이야. 너는 내게.
웃음을 주고 시원함을 주는 사람.
네가 좋아.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네 덕분에 오늘도 시원한 여름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