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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아파커플 Aug 10. 2023

이제 더 이상 제 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말

저는 ”성장중독자“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몇 번 언급해서 벌써 눈치를 챈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성장중독자”다. 마치 “성장”을 해야만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방출되는 사람처럼 말이다.


새로운 성장을 이끌어 내는 “도전”이 삶에 끊임없이 주어져야 되는 사람. 어려웠던 일이 쉬워지고 나면 안정감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함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 더 이상 성장이 없게 느껴지고 안주한다고 느껴지면 한 없이 우울해지는 사람.


I don’t want to settle down.

20대 초반엔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주변 사람들에게 “저는 어디 한 곳에 정착하게 되는 삶이 두려워요. 무서워요. I don’t want to settle down.”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미국에 있을 당시 이 생각이 굉장히 심했는데, 영주권, 시민권을 받고 싶어 이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던 대부분의 한인 유학생들, 직장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봤던 게 생각이 난다.


고등학생 때 미국을 처음 가보고, “어른이 되면 꼭 다시 미국에 와서 인턴을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다시 온 미국. 다시 오기 전까지는 미국이 바로 나의 글로벌 무대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미국에 와서는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기에 그 출발선의 자격을 다시 갖기 위해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살아야 하는 ‘이민자’가 되었기 때문일까.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린카드(Green card, 영주권)를 얻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나, 차선책이었던 회사를 택하기도 해야 할 수도 있고. 무언가 나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받는 것 같아 싫었다.


1년 남짓 미국 생활이 즐겁고 재미있었고 유익했고, 많은 것들을 배웠고, 내가 그리 원하던 진짜 미국인이 운영하던 미국 사업체였음에도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사장들이 운영하는 한국어만 쓰는 회사에 인턴으로 가는 케이스들도 많기에 이렇게 언급한다.) 그곳에서 나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받기 위해선 일단은 영주권을 얻는 게 먼저라는 사실이 과도한 에너지 소모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선택하기로 했다. 그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포기하기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내 능력을 키워서 다시 미국에서 살게 된다면, 그때는 “영주권 드릴게요. 우리 회사가 비자 스폰서가 될게요. 제발 와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모셔가는” 인재가 된 시점일 거라고.


(그래서 그 후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고, 이곳에서 또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내가 만났던 회사들 중 가장 자유로운 곳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실리콘 밸리 같은 회사에서 말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영어를 쓰며 해외에 있는 고객들과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늘 전전긍긍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청춘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라도 삶에서 확정되어지는 게 너무 두려웠던 나의 20대 초중반.


그래서 하나라도 무언가가 확정되어진다면 그건 무수히 많은 고뇌 끝에 나 스스로 검증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랬기에 나는 늘 새로운 일들에 도전해야만 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남들이 해주는 말로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꼭 내가 직접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책으로 알게 된 남미 콜롬비아가 정말 마피아의 소굴이 아니라 분명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스무살엔 콜롬비아도 다녀왔으니까)


불안함이 싫고 스트레스가 되면서도, 계속해서 꿈을 꾸고 도전하고 싶지만, 무언가 이 불안함을 어떻게든 떨치면서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나의 20대 초중반.


이율배반적이었다.


겉으로는 자신감에 차있었지만, 속에서는 끊임없이 안달이 나있는 안달새가 불안해서 울고 있었다.


늘 내 안을 맴돌던 질문,

“이 불안함을 치우기 위해서는 꼭 안주, 정착, Settle down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내 마음의 안달새가 그를 만났다.

결혼을 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결혼의 장점, “안정감이 든다. “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도통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직접 경험해서 스스로가 깨달아야지만 통상적인 명제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는 ENTP다. 자꾸 MBTI 이야기하는 거 불편할 수도 있지만, 네, 전 MBTI 과학자 맞습니다^-^*)


그런데 4년이 넘게 그를 만나면서 이 말이 점차 무슨 뜻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몇 개월간 무역회사에서 인턴을 한 뒤에, ‘안 되겠다, 난 내 사업을 해야겠다!’ 하고 작은 내 일을 시작한 적이 있다.

그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고 묻는다면, “엄마의 걱정”이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젊은 나이에 사업을 성공한 이들이 하는 조언에 관한 숏츠를 우연히 봤는데 정말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다. “일단 부모로부터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먼저 해야 한다. 자본금이 적더라도 그냥 들고 나와서 독립해서 시작해야 한다. “

와… 이 말이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집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하다 보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부모님은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고 걱정하고 불안을 주는 말을 내뱉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근데 그게 어찌나 그때 당시에는 서운하고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지. 엄마는 내 사업을 발 벗고 도와주는 조력자이기도 했지만, 함께 일을 도와주는 시간 내내 내게 눈치를 주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결국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결국 엄마 말처럼 내 사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물리적인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의 수익성에 한계를 느꼈고, 형태가 없는 재화 및 서비스를 팔아야겠다고 경험을 통해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그에 따라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는 IT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찾았던 것 같다.

끊임없이 내 곁에서 무한한 신뢰와 응원과 지지를 보내줄 사람을.


그리고 진짜 거짓말처럼 20대 중반에 그런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내가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다.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쉽게 생각해서 그걸 경제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돈이 아니다.


자신의 “꿈”보다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다.

자신의 “꿈”보다 상대방이 마음껏 꿈꿀 수 있게 그냥 늘 그곳에 있어주는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것이다.


나의 남자친구는 자신의 ”꿈“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친구들에게 그를 소개해주는 자리에서조차도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무엇이 되고 싶으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옛날에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냥 그게 너무 당장의 큰 목표가 되어버려서 나의 꿈같은 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냥 00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고생 안 시키고 싶고… 00이랑 함께하는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  


그가 친구들에게 했던 그 말은 나에겐 거의 그냥 사랑고백을 때려 박은 수준이었다.


어찌 보면 나는 앞으로 이뤄갈 가정이 중요하지만 성장, 도전, 꿈에도 목마른 사람이라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또 바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니까. 결국 나의 꿈이 나의 남자친구의 꿈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우린 앞으로도 함께할 거니까.


그런다 할지라도, 그에게 고맙다.

요즘 스물일곱 살 남자 중에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이 얼굴도 못 보고 일하느라 바쁜 아빠는 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게 싫어서, 30대에는 여유시간을 가지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나의 남자친구.


그래서 늘 더 잘해주고 싶다. 그가 가진 소소한 꿈들을 내가 이뤄주고 싶다. 그 꿈에 나도 함께 들어가 있고 싶다. 그가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나도 앞으로 이뤄갈 가정을 위해서 내가 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5년 안에 목표는 그래서 이렇다. 미래의 아이를 양육할 때에 대면하는 시간이 많을 수 있게 원격 근무가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것. 열심히 일해서 연봉도 지금보다 더 올리기. 또는 원격근무를 제공하면서 급여 수준은 그 나라에 맞춰서 주는 미국, 캐나다 회사도 고려해 보기.




이렇게 글로 정리하니까 더 감사하다.

이렇게 보물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가장 큰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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