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siseon Apr 04. 2022

생명, 우연의 산물이라

물리학이 정의하는 생명

예전에는 곧잘 팟캐스트를 들었더랬다. 한 지역 내에서 출퇴근할 때는 라디오도 잘 들었지만 교외를 포괄하게 되니 주파수가 맞질 않아 시작하게 된 팟캐스트였다. 물론 반복되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CM송 같은 광고가 좀 지겹기도 했고. 


30분 정도 운전하는 거리는 팟캐스트를 듣기 매우 적절하다. 보통 한 시간 에서 한 시간 반 수준인 한 회차를 천천히 나누어 들으면 한 2~3일 정도에 한 회를 다 듣게 되는데, 두 개 정도 팟캐스트를 돌려 들으면 주 5일 출퇴근 길을 지겨울 새 없이 꽉 채워주니 너무나 좋은 것. 


그렇게 팟캐스트가 출퇴근길의 동반자이자 낙이었던 시절이 멀지 않건만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니 그 재미가 사라졌다. 아니, 사실 그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 딱 30분 정도 혼자 운전할 일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팟캐스트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은 욕망을 대신해 나의 시간을 꽉 채워줄 완벽한 방법! 1분이라도 더 들을까 싶어 부랴부랴 앱을 실행하고 재생. 


오래전에 듣던 알릴레오 북스가 리스트에 뜬다. 시간의 종말?! 심오한 책 제목이었으나 너무도 친절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출연한다니 일단 들어본다. 그리고 역시, 왜 팟캐스트를 운전하면서 들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아. 이렇게 초집중해야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딴짓하면서는 절대 못 듣지. 


엔트로피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정의까지, 물리학으로 정의되는 세상의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들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머리가 저릿저릿할 만큼 재밌는 이야기였으니. 전자니 원자니 분자니 양성자니 디테일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우주의 모든 것은 빅뱅 이후에 생겨난 물질들의 합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냐는 것이다. 아직 보편적으로 인정된 정의는 심지어 없어서 그 특징으로 정의해야 하는데, 생명은 존재를 그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을 가지고 '자기 복제 혹은 번식'을 하는 존재를 칭한다 했다. 그런데 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원자 분자 등등 물질의 융합이 어떤 것은 생명을 가진 것으로, 어떤 것은 생명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그런데 그 답이 매우 놀랍다. 아직까지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 말고는 생명체를 전혀 발견한 바 없으니 사실 이것은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단다. 어디 다른 곳에서 생명체를 발견해야 그와 어느 정도 유사하고,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생명'의 조합이 발생했는지를 비교, 논쟁, 정의해서 밝혀볼 수 있을 것인데 아직 발견된 바가 없다. 그러니 그저 모른다. 혹은 우연이다. 혹은 차라리 조물주가 창조했다가 더 쉽고 유일한 설명이라는 놀라운 결론.  


여기까지 듣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생명의 존재는 우연의 한 일종일 뿐인 하찮음으로 놀라워해야 할지, 대단한 우연의 산물 중 하나로 놀라워해야 할지가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역시, 이런 혼란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어서 오늘의 팟캐스트 시청은 매우 성공적. 운전할 때 만이 아닌 다른 루틴으로 팟캐스트를 일상에 다시 끼워넣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척돔, 실내 야구장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