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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May 25. 2022

관계의 시작과 끝의 평행이론

시작하는 관계가 가지는 설렘이 있다. 그 설렘은, 다른 모든 것이 가려져서 오는 것. 서로 마음의 주파수가 맞은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것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외모도, 합의를 찾지 못할 것 같은 서로 다른 취향도 이미 여러 번 확인했을 텐데. 어쨌든 뱃속이 간지러운 것 같은 설렘이 파도처럼 밀려온 순간, 그 감정이 다른 모든 이성과 감정을 압도한다.


그리고, 끝나는 관계가 가지는 절망이 있다. 그 절망은, 다른 모든 것이 가려져서 오는 것. 서로에게 깊이 상처받고, 신뢰가 깨어진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것도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분명 좋았던 순간이, 행복하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순간이 없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끝이 없는 것 같은 깊은 절망이 파도처럼 밀려온 순간, 그 감정이 다른 모든 이성과 감정을 압도한다.


관계의 시작과 끝의 평행이론. 사실 관계의 팔 할은, 아니 구 할은 저 두 순간을 뺀 나머지 순간이지만 늘 흥미를 끄는 것은 시작과 끝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순간들은 지난하고 반복적이지만, 관계를 시작하고 끝내는 순간은 늘 찰나 같고, 극적이니까. 그러니 참, 아이러니. 지난하고 반복적인 순간들로 채워질 관계의 유지에 드는 시간과 노력이 때로 허망하다. 또 그렇게 쉽게 시작될, 혹은 그렇게나 쉽게 끝나버릴 관계인데. 


관계로 인한 상흔이 오래 남는 이유는 아마도 이 아이러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영원할 것 같았던, 하지만 너무나 찰나 같았던 그 모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소화를 방해한다. 이제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와서 종지부를 찍지 못하게 하는 것. 거짓말 같던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로부터 홀연히 멀어지는 것은 애당초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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