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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Aug 12. 2024

부산, 나의 힐링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가 무엇이냐 물으면, 당연히 나를 위한 휴식,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답해야 하겠으나 늘 나의 휴가는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정해진다. 학기 초. 모든 가정 통신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역시 학사일정표인 것은 그 서류를 받아 든 순간 나의 휴가 기간이 확정되기 때문. 아. 이때 아이가 학교를 안 가는구나. 그러니 휴가는 곧, 아이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늘 욕심이 많은 나는, 강제로 주어진 휴가라도 알차게 즐겨보겠다고 갖은 애를 쓴다. 어쩌면 이젠 루틴화되어버린 활동들 이건만 그럼에도 늘 계획을 짤 때는 버겁고, 보내고 와서는 아쉽다. 


이번 휴가에도 그래서, 보석 같은 시간이 있었다. 풍경. 태생이 부산인 나에게 빠질 수 없는 힐링의 공간은 역시 바다다. 탁 트인 바다. 모래사장. 그리고 바람. 여름을 무색하게 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좋다. 소금기 가득한 바람에 온몸이 찝찝해지면 좀 어떤가. 드득드득 들러붙어서 아무리 털어내도 끝없이 나오는 모래로 흔적을 좀 질질 내고 다녀도 어떤가. 그래도 나는 바다가, 바닷바람이 좋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은 순간을 만끽한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바다 로망이 있다. 이번에도 꿈도 못 꿨지만 언젠가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는 나의 로망. 작은 백팩 하나를 맨다. 거기엔 시원한 물과 작은 돗자리, 책이 한 권 있다. 그리고 뜨거운 햇볕아래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해 줄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는 백사장으로 성큼성큼 들어선다. 어디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턱 하니 배낭을 내려놓고, 옷을 훌렁 벗는다. 짧은 반바지와 남방 하나를 벗으면 물에 들어갈 준비는 완료. 그대로 바다로 향한다. 적당히 차갑고 표면은 뜨뜻한 바닷물에 몸을 맡기면서, 파도가 부서지는 구간을 지나 적당히 내 어깨쯤을 넘실댈 때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맡겨 파도를 느껴본다. 


부산에 살았던 그 많은 나날 중에 단 하루도 이 로망을 실현시켜 볼 시간을 내지 않았다니. 이제와 너무도 후회되지만, 한편 로망이 남아있어 더 아련해진 바다가 마음에 들기도 하다. 


그리고 산. 바다만 풍경인가. 내가 살던 동네에는 지역주민이 아니면 잘 알지 못했던 자그마한 산속 마을, '산성마을'이 있다.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카페로 이제는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그마저도 좋다.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커피와 달다구니들이 가득 들어차줬으니 이젠 여기도 저기도 커피와 함께 산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옵션이 많아졌다. 그리고 올라가는 길에 만난 작은 계곡. 이미 주차장은 가득 차버렸지만 한때 지역주민의 짬바로 사람이 없는 상류를 공략,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계곡을 만나 발을 담근 것도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힐링은 단순하다. 바다. 산. 계곡의 한적함이면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나의 힐링스팟들이 잘 찾아져 있는 부산이 그래서 좋다. 7년째 살아도 현재의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한 것은 역시, 집 근처에 이런 힐링 스팟들을 찾지 못해서인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정도. 


여튼, 이렇게 나의 힐링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이번 휴가가 남긴 것은 떠오르면 뿌듯한 풍경, 그 와중에 한 권, 휴가 내내 내 손에 들려있던 책이 남겨준 생각거리와 소중한 인연들과의 대화. 이만하면 아쉽다 불평하기에는 욕심이 과했던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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