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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브러리 Jan 18. 2016

<봄날은 간다>(2001)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위 문구는 영화 <봄날은 간다> OST에 수록되어 있는 곡의 일부분이다.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감과 동시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이 작품을 제대로 만끽한 관객이라면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게다. 작품에서 밀려오는 진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윤아의 구슬픈 목소리까지 흘러나와 감정선을 사정없이 건드려버리니 말이다.


게다가 노래가사 마저도 애달프다. 가만히 음정들을 곱씹어보고 있노라면, 가사의 모든 구절들이 영화 전체와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만약 누군가가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의 절정이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엔딩 크레딧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작품 속 상우와 은수,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의 사연을 대변해주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오래도록 뇌리에 박혀있을  듯하다.


상우와 은수가 미묘한 감정을 싹틔우게 되는 대숲.


위 스틸컷은 영화 <봄날은 간다>를 대표하는 유명한 스틸컷이다. 강릉 방송국의 라디오 PD인 은수(이영애 분)는 소리 녹음을 위해 상우(유지태 분)와 인연을 맺게 된다. 서로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던 두 남녀는, 이 대숲이 제공해주는 바람소리에 귀기울이며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사운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캐릭터로 설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소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은은한 음정들은 작품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며, 덩달아 관객들은 잔잔한 배경음 아래에서 상우와 은수의 감정 변화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전혀 다른 주제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랐다. 이 소설 속에는 두 쌍의 남녀가 등장하는데,  그중 '사비나'와 '프란츠'가 연상된다. 쿤데라는 소설을 통해 사랑에는 두 개의 대립된 방식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가벼움과 무거움. 그리고 이 상극의 특성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 감정의 무게차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노력으로는 메워질 수 없는 영원한 공백과도 같은 것이다.


사비나는 유목민의 사랑을, 프란츠는 농경민의 사랑을 추구하는 인간상이다. 사비나는 거처를 매번 옮겨야 하는 반면 프란츠는 한 장소에 최대한 오래 정착해있어야 한다. 왠지 모르게 이 둘의 관계는 상우와 은수를 연상시킨다. 은수는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성으로, 쉽게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단기성이 체내화된 유목민적 기질이 다분하다. 반면 상우는 어리숙하다. 재밌는 이야기로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조차 모르는 썰렁한 남정네이다. 허나, 그의 진중한 속내에서 피어난 애증의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바위와도 같은 무거움을 지닌 인물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쉽게 말해 한 쪽이 질려버리게 된다. 상우의 우직하고도 한결같은 애정에 익숙해진 은수는 그에게서 전혀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한다. 일시적인 짜릿함을 영양소 삼아 살아가는 그녀. 이제는 거처를 옮겨야 할 시기임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녀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이다. 애초에 유목민과 농경민은 결코 공동생활을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해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은수의 감정 변화를 이해하고 감싸안으려는 상우.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제각기 다른 시점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과 이별의 경험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 형태는 실로 천태만상이다. 누군가는 은수처럼 익숙함의 덫에 걸려 소중한 것을 잃었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상우처럼 전심을 쏟아부었던 상대로부터 냉정한 이별을 선고받은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상우와 은수라는 인물에는,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의 경험들이 투사되어 있다.


상우와 은수의 이별 장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한국 영화사의 명대사 중 하나인, 작품 속 상우의 대사이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 허공에 내뱉는 이 멍청한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었다. 우리들도 역시 몰랐었다. 사랑이란 감정은 지고지순하고 초월적인 것이라 영원토록 유지될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이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한마디의 짤막한 의문문은, 첫사랑의 실패를 겪어본 이들의 속을 깊게 후벼판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의 벽을 절절히 실감하는 상우의 모습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엄청난 굴욕감과 한계를 실감케한 은수에게 복수한답시고 하는 행동은, 고작 자동차에 기스내는 것이 전부이다. 불쌍하다 못해 심지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상우의 처절한 행동들은 그를 더없이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이처럼 사랑은 유한성을 지닌다. 언젠가는 막을 내려야만 하는 연극과도 같다. 이러한 특성을 깨닫기 위해 치러야 할 경험은 쓰라릴  수밖에 없다. 엔딩씬에서 은수가 재결합을 제안하지만, 그녀를 마주하는 상우의 태도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그는 이미 오랜 아픔의 시기를 통해 사랑의 비극적인 성질을 체득해버렸다. 상우는 그녀의 손길을 차분하면서도 완강히 거부한다. 그의 내면에는 이미 그녀와의 사랑 연극이 막을 내렸다.


재회와 동시에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상우와 은수.


<봄날은 간다>가 명작으로 꼽힐 수 있는 이유는, 단연 시나리오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카메라 무빙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정도의 간단한 팔로우 샷은 종종 등장하지만, 이를 제외한 모든 씬들이 픽스(Fix)로 촬영된다. 오로지 컷과 컷의 구분으로만 두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나간다. 그렇다고 컷의 개수가 많은 것도 절대 아니다. 허진호 감독은 어떠한 영화적 기교도 부리지 않으면서, 그저 담담히 둘의 이야기를 서술해나갈 뿐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온전히 상우와 은수의 감정에 편안하면서도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복잡한 화면 구성이나 동적인 촬영이 배제되어 있어 시각적 피로감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리라. 정적이면서 차분한 분위기는 마치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현란한 기법에 의존한 착시효과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각본에 전력투구 하는 영화. 마치 허 감독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속삭이는 듯 하다. 담백한 영화란 이런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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