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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양 Nov 22. 2022

안녕하셨어요?

마침내 다시 쓰기까지의 이야기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간 글을 쓰지 못했어요.


거짓말이에요. 뭐든 쓰긴 했어요. 자소서, 보고서, 기획서, 사업소개서, 시말서, 사유서, 설명서...

같은 '서'자 돌림자를 쓰고, 결이 비슷한 친구들이죠. 인정받고 싶고, 잘 보이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문장들.


'글 쓰는 디자이너'라고 소개 글을 썼던 게 2015년이었어요.
'글 쓰는'은 '디자이너'를 수식하는 표현이 아니었어요. 외려 '디자이너'가 수식어였죠. 저는 평생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자라왔거든요. 손가락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서 음성녹음으로 써둔 글을 나중에 받아적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어요. 매 순간 어디서든, 심지어 손바닥 반절만 한 전자사전 메모장에도 끊임없이 썼었죠. 지금도 저희 부모님 집에 가면, A4 파일철과 클리어 파일이 열 권도 넘어요. 페이지마다 온갖 상념이 줄을 잇죠. 다음에 한 번 보여드릴게요. 호르몬과 자아가 격전을 벌인 기록이 빼곡한데 무지 웃겨요.


그런데 취업과 동시에, 온종일 꿈에까지 따라와서 재잘대던 목소리가 사라져버렸어요.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을 마주하는데도, 마음이 수증기가 되어 기화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이걸 저는 '글이 나를 떠났다'고 표현했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쓰는 뻔하고 진부한 표현일는지도 모르겠네요. 모르겠네요. 가 얼버무리는 표현이 아니라 진짜 모르겠다는 말이에요. 글이 저를 떠난 시점부터, 다른 작가들의 글을 절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됐거든요. 누가 좋은 책을 추천해도, 근사한 글로 가득한 링크를 보내와도 절대 읽지 않았어요. 실수로 읽기라도 하면 온종일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는데 열등감보단 자괴감에 가까웠어요. 난 더 이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데, 찰나마다 머물러 피어나는 감상을 음미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는데. 어린 왕자에게 친구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 물어보는 그런 어른이 되었는데 이를 어쩌지?


마침 브런치 계정도 잃어버렸거든요. 잘 됐다 싶었죠. 다시 찾을 생각 없었어요. 더는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그런 생각으로 그런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인걸요. Let bygones be bygones.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도록 그래 그렇게 내버려 두고, 나는 이제 숫자와 투자, 흑자와 경제적 해자 그리고 마침내 백만장자의 세계로 나아가노라. 농담이에요.


다양 요즘 왜 글 안 써? 라는 지인의 질문에는,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대답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어요. 기분이 좋을 땐 '이야깃거리를 채집하며 인생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는 중이랄까'하고 얼버무렸죠. 상태가 나쁠 땐 인정욕구를 앞세워 행패를 일삼았어요. 내가 얼마나 바쁘고, 하는 일마다 얼마나 완벽하게 잘 해내고 있으며, 어마어마하게 찬란한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멋쟁이인지 아냐고 길길이 날뛰었죠. 누구도 읽고 손뼉을 치지도, 돈 한 푼 주지도 않는 글을 쓰는 낭만적 사치를 부리는 대신 생산성과 자기효능감으로 가득한 찬란한 인생을 빌드업 중이라고 역설했어요.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놓고선 쓰다 보니 또 몇 문단을 채웠네요. 늘 이런 식으로 써오긴 했었지만. 사실 전 오늘 그냥, 근황톡이랄 것을 좀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요. 왜냐면 제 근황이라는 게 객관적으로 남의 인생이라고 놓고 봐도 꽤 흥미롭거든요. 제가 대기업에 입사해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했죠? 일일 알바부터 인턴, 계약직, 단기 알바, 프리랜서를 거쳐서 바야흐로 정규직이 되었다고요.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도 들려드렸나요? 회사 다니면서 주경야독했죠. 이것도 이야깃감 한 보따리인데! 그럼 제가 대표이사가 된 이야기는 대체 언제 들려드릴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브런치 계정을 찾은 건데 말이죠.


세상에, 대표이사가 된 이야기를 하려고 브런치에 돌아왔다고? 뭘 홍보하려는 속셈이 있나본데? 싶으실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 안 하셨다고요? 죄송해요. 사실 제가 그렇게 낄낄 꼬인 스크류바같은 사람이거든요. 뭐든 이리저리 모든 각도에서 굳이 굳이 살펴보고, 뜯어보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숨은 의도'를 간파하려고 하고. 코난과 김전일을 벗 삼아 자라서 그런 것이려나요? 근데 디자이너는 그게 미덕이고 역량이거든요. 발상의 전환 뭐 그런 거요. 그리고 전 디자이너고요. 아무튼 걱정마세요, 지난 5년간 저를 기다려주신 1476명(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얼버무리지 않고 일의 자리까지 그대로 썼어요)의 구독자 여러분. 저는 더 이상 목적을 갖고 글을 쓰지 않기로 했거든요. 


저는 지난 5년간, 아니 어쩌면 '다양'의 이름으로도 한동안은,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한 글쓰기를 연습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내가 가진 남다른 관점, 재미난 생각, 흥미로운 견해를 좋아해 주길 바랐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문장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어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만들고, 내 의견이 여론이 되기를 기대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음, 저는 이제 그런 일이라면 어느 정도 마스터한 것 같아요. 그게 제 본업이고, 저는 그걸로 충분히 좋은 것들을, 멋진 일들을 이루어왔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게 제 입을 막고, 제 영혼을 숨 막히게 했다는 사실도 이젠 알죠. 다양의 글쓰기로만큼은, 무엇도 이루고 싶지 않아요.


오롯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거예요. 하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안 하곤 못 배기는 이야기를 하려고요. 목적이 있는 문서가 아니라, 의도가 있고 그래서 평가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촌스럽고 두서없고 별 볼 일 없어도 그저 나 좋자고 늘어놓는 '이야기'요. 배울 점이나 영감을 주지 못해도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은 아직 제 자의식을 인질로 삼고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어요. 걔가 언제 느닷없이 공격해올진 모르겠어요. 워낙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분이신데다 저를 못살게 괴롭혀서 모든 글을 비공개로 돌리고 도망쳐 숨게 만든 전적도 몇 차례나 있거든요. 하지만 지난 5년간의 경험이 제게 가르쳐준 것 중 하나는, 두려움은 완치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매일 마음을 가다듬고 태도를 바로잡는 생활습관을 갖추고 하루치 용기를 빠짐없이 털어 넣고 삼키면서 관리하는 만성질환에 가깝더라고요. 안고 가려고요.


세상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죠. 하지만 그건 꼭 제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 저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저 아니면 못 하는 이야기도 있는걸요. 제가 써주기만을 기다리며,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도카니 기다리는 풍경들이요. 불안정한 자아가 마구 비하하고 괴롭혀도,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가냘프게 반짝이는 하루살이 같은 이야기들이 잠들기 전에 기록해줘야겠어요. 별것 아니라 해도, 별 것 아니어서 정말 나밖에는 눈여겨봐 주지 않으니까, 그 하찮은 사연들이 스러져 사라지기 전에 써주려고 해요.


글을 쓰기 싫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댈 수 있어요. 인생은 실시간 라이브인데, 어제 했던 생각조차 자고 일어나면 진부하고 한심해지는 마당에, 인터넷 공간에 나를 전시하는 건 용기보다는 치기에 가깝다고 느껴요. 나 자신이 구세대의 유물이자 추악한 허물로서 박제되다뇨. 전에 썼던 글들을 보면 가끔 소름이 끼치거든요. (진부하네요, 소름이 끼친다는 표현. 그렇지만 말 그대로 닭살이 오소소 돋으면서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는걸 어쩌겠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발빠르게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제 신체반응을 탓해야겠죠 뭐.)와,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정욕구 덩어리네. 어떻게 이런 걸 써재꼈지? 어휴 너무했다, 너무 갔다, 싶은 글들 많아요. 누가 캡쳐라도 해놨으면 어떻게 하지? 싶은 사진들도 셀 수 없고요. 흑역사를 더 쓰기 싫달까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한다는 건 개구리라서, 개구리로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요. 성장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나를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고, 그래서 부끄러워할 수도 있는 거예요. 머무르지 않았고 멈춰있지 않았다는 증거죠. 스물다섯의 다양이 쓴 글은, 스물다섯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었어요. 스물다섯을 팔순 잔치까지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나서 되짚어봐야 기억은 온통 희뿌옇겠죠. 회고록은 그 이름이 주는 논픽션적 기대감과 달리 대체로 소설에 가까운 문학작품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만 하더라도 브런치에 열 개 남짓 글이 있는데, 거기 기록된 에피소드들은 다시 읽기 전까진 전혀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피클 빼고요)그 순간 그 시절의 나를 담아 보관하는 것은 나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해요. 현재를 살아가는 미완의 존재로서 다양은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니까요. 매 순간의 최선이 모이면 그 합도 최선일 거고요. 최소한 팔순 잔치 끝나고 심심할 때 꺼내 읽을 재미난 컨텐츠는 마련하는 셈이죠. 노후를 대비하는 적립식 ETF랄까? (아이고)


마지막 문단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문단이 핵심이고요.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잖아요. 브런치 앱을 다시 깔고 며칠간 지켜보니 6년 전, 7년 전에 쓴 글에 매일 새로운 '좋아요' 알림이 떴는데 그때마다 무음 모드인 스마트폰 대신 제 마음이 찌르르 떨렸어요.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에너지가 되어서, 기어이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더라고요.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안부를 물어봐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꼭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저도 제 글을 좋아하려고요. 진부해도, 영양가 없어도, 나중에 후회할 거 알면서도, 못마땅해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용기를 다시 내보려고요.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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