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깥 Mar 14. 2017

어떤 선택, 어떤 행복

트레바리 극극 1703 <인형의 집> by 헨릭 입센

욕망과 선택, 그리고 행복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은 두 키워드는 '선택'과 '행복'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어떤 형체를 갖는다고 했을 때, 그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재단되고 잘려나가기 마련이다. 사람을 돌보고 가르치고 싶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흔히 교사가 되는 길을 택해야 하는데, 그것은 욕망의 완전한 실현이라기 보다는 축소 내지 변형이다. 욕망의 완전한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욕망의 실현에는 어떤 선택이 작용한다. 그리고 욕망의 주요 동인과 목표를 행복으로 본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필연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이 관점에서 각각의 인물들은 어떤 선택을 했고, 결국 행복했을지 질문을 던져 본다.


린데 부인의 선택

린데 부인의 행복은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챙길 필요가 없어지자, 그녀는 뭐라도 하기 위해 노라를 찾아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허전해.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이제 그 누군가가 없잖아. (p.23)

특이한 점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린데 부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에는 주체성이 녹아 있다. 크로그스타드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다른 것을 선택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 p.92), 그를 다시 선택한 것도(내가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요. : p.93), 편지를 둘러싼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도 그녀의 선택이다.

헬메르 씨는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해요. 이 불행한 비밀은 밝혀져야 해요. 두 사람은 자기들 사이의 모든 일을 해명해야 해요. 이렇게 계속해서 감추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p.95)


노라의 선택

노라 역시 겉보기에는 린데 부인과 유사한 선택을 한다. 헬메르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노라가 낭비벽이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노라 스스로에게 쓰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노라, 노라"는 사람들 생각처럼 그렇게 정신이 나간 여자는 아니야. 그래, 우리 살림은 내가 낭비할 수 있을 정도는 안 돼. (p.20)

헬메르의 마음에 들기 위해 기꺼이 그의 종달새가 되기도 한다(토르발이 진짜 좋아할 아주 애교스러운 걸 뭔가 생각해 내 볼게. : p.24, 당신이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해 주면 다람쥐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공중제비를 할거예요. : p.62). 남편을 살리기 위해 큰 돈을 빌리고 서명을 위조하는, 위험한 선택까지 한다. 그녀에게 이 모든 일들은 행복하기 위함이며,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저의 즐거움이며 기쁨인 이 비밀을 남편이 이런 비열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당신에게서 듣게 하다니요. (p.42)

하지만 린데 부인의 선택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여기엔 '노라'가 전혀 없다. 그녀가 그런 행동에서 왜 행복을 느끼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당신은 모든 것을 당신 취향대로 꾸몄고, 그래서 나는 당신의 취향을 내 것으로 만들게 됐죠. 아니면 그런 척했던 것이었거나요. : p.115). 선택만이 있고 행복의 실체가 없다. 실체 없는 행복을 부르짖기만 한다(행복하게 살고 행복하게 되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야! : p.30). 실체없는 행복의 환영이 사라진 순간 행복의 '감정'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니요.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p.116)


헬메르의 선택

헬메르의 행복은 알량한 명예와 이를 주위에 과시하는 것이다. 헬메르가 크로그스타드 해고를 결정하면서 처음에는 크로그스타드의 인물됨과 논리적 당위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밝혀지는 진짜 이유는 얼마나 사소한가!

그는 나에게 친밀한 말투로 말할 특권이 있다고 믿거든. 그러고는 아무 때나 '너, 너, 헬메르' 하며 의기양양하단 말이야. 나에겐 아주 곤란한 일이지, 정말. 그는 은행에서의 내 위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 거야. (p.64-65)

자신의 명예가 무너질 위기에서 노라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이를 명백히 드러낸다.

당신에 관한 일은, 우선 우리 사이는 전과 똑같은 것처럼 보여야 해. 물론 세상의 눈에만 그렇다는 거지. (p.110)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행복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위한 그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도구를 확실히 소유하고, 자신에 맞게 길들이는 것이다. 노라 역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고, 헬메르는 끊임없이 노라를 길들이고 자신의 소유물임을 확인해야 했다.

나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말인가? 나의 것, 온통 나만의 것인 이 아름다움을? (p.100)

하지만 헬메르의 마지막 질척거림을 보면서 나는 확신이 들었다. 행복의 목적이 소유가 되면 소유가 상실되는 순간 불행이라는 것을. 그러한 행복이 얼마나 빈약한 수준의 것인지.


노라는 행복했을까?

각 인물들의 선택과 행복을 보면서 나름대로 세 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첫째, 선택과 행복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둘째,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행복의 본질과는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셋째, 행복은 어떤 대상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3막에서 노라의 선택에는 '노라 자신'이 있다. 이전의 노라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로 볼 수 있다.

나는 오늘 밤처럼 분명하고 자신 있어 본 적이 없어요. (p.120)

하지만 그녀가 최종 선택하기 직전까지도 헬메르의 어떤 선택을 기다렸다(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확신했어요. 이제는 놀라운 일이 생기겠구나. : p.121). 상대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면, 기적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라면..과연 노라가 집을 떠나서도 행복할 수 있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든다.



#What We're Reading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37462481


#트레바리

http://trevari.co.kr


매거진의 이전글 자율주행시대를 상상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