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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깥 Dec 25. 2017

당신에게 '동네'는 어떤 의미인가요

트레바리 극극-블루 1712 <빨래> by 추민주

"서울살이 몇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뮤지컬 '빨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서울살이를 멜로디에 실어 털어 놓는다. 그들의 사연을 듣고 있으니 나는 언제,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을 더듬게 된다.


뮤지컬 '빨래' ⓒ씨에이치수박


수능을 친 당일 저녁, 수시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상경했다. 창문이 없는, 두 사람이 눕기도 힘든 고시원. 창문이 있고 통풍이 되는 방은 10만원인가 더 비쌌다. 정신이 없었는지 아무 것도 몰라서인지 짐을 풀고 잠을 청한 첫날은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논술 학원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대치동의 고층 빌딩들을 보면서 한 지역 안에서 동시에 겪는 상반된 풍경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고 나의 서울살이는 시작됐다.


어린시절 놀러왔던 서울이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현실이 된 서울은 참 쌀쌀맞게 느껴졌다. 돈은 돈대로 더 들어가면서 아파도 걱정해주는 이를 찾기 어렵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삶을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 언젠가 계산을 했더니 1년 동안 가족 모두가 함께한 저녁이 5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받기도 했다.


그런 서울의 등살을 견딜 때면 '나는 도대체 왜 이 못된 서울에 올라왔던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얻어갈 것이 많아' 찾아왔던 걸까? 서울살이는 늘어가는데 많이 얻었을까?


돌이켜보면 뚜렷한 동기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막연한 미래에 가닿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 서울살이였다. 이른바 '무작정 상경' 흐름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결국엔 내 선택이었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지만, 마치 강요당한 듯한 억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서울살이 10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런 억울함조차 조금씩 무던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이 단단해진 결과가 아니라 슬프게도 일종의 포기에 가까운 것 같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어딘가에 소속됨을 거부하는 것.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어느 곳에도 쉽사리 정을 주지 않는 것.


그래서일까? 나에게 '동네'라는 단어는 어딘가 어색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곳을 한번도 '동네'라고 느꼈던 적이 없다. 택배 주소지 아니면 "어디 사세요?"에 대한 답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숙사를 포함해 10년째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예의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매일 오고 가던 길은 1년이 멀다하고 무언가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집에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분위기 있는 거리가 나온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곳을 '샤로수길'이라 부른다. 소위 '뜨는 상권'이라며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샤로수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지만 나는 시큰둥하다. 처음부터 생활범위에 있었던 곳도 아니고, '동네'라는 소속감이 없으니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샤로수길 ⓒDaum지도


그에 비하면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좀 늙고 배는 나왔지만)크게 바뀐게 없다. 여전히 막연한 미래를 꿈꾸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이 생각의 사이클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서울살이가 흘러왔다.


나영이 말대로 사는 건 또 왜 이렇게 힘든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빙판길을 걷는 느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보이지만 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껏 온몸에 힘을 주고 있다. 누군가가 밀쳐 넘어졌을 때 그냥 그 상태로 주저앉고 싶지만, 차디찬 얼음 위에서 그렇게 있는 것도 고통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시 일어나야 된다.


하루종일 빙판길을 버티고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된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방에 들어서면 모든게 귀찮아서 그냥 잠을 청한다.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면 그 역시 뭔가 부자연스럽다. 또다른 빙판길이다. 더 지친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내 집에서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런데 온전히 '내 공간'이 아니다. 계약이 끝나면 또 떠나야 한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도 갖지 못하는데 '동네'라는 개념이 내게 유효할 리가 없다. 


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을 무겁게 하는 존재가 있다. 나영이에게는 '빵'과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솔롱고에게는 공장장과 건물 주인, 희정엄마에게는 구씨, 주인할매에게는 둘이가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대체 누가 안쓰럽고 서글픈 우리 삶을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그래, 우리에겐 '비빌 구석'이 필요하다.

힘을 쏟는 곳이 아니라 충천하고 받을 수 있는 곳.

뭔가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비빌 구석을 찾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그 사람들이 서로의 비빌 구석이 되는 곳.


그렇게 공간, 사람, 기억이 중첩되고 연결되면서 (체감적) 동네는 넓어지고 명확해지는 것은 아닐까? 캄캄한 세상에서 제각기 희미한 빛을 내다가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모여 하나의 그림이 되는 별자리 같은 연대 말이다. 그런 토대에서 어딘가 잃어버렸거나 닳아서 지워진지 오래된 '우리의 꿈'을 다시 꺼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질문을 모두에게 던지고 싶다.

"당신에게 동네는 어떤 의미인가요?"



#트레바리

http://trevar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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