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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Mar 29. 2021

팔씨름

새벽 단편: 팔씨름



아슬아슬하게 팔이 테이블에 닿자 네가 폴짝 뛴다.

“아싸! 내가 이겼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깔깔대며 웃는다.


“너 졌으니까 술 사”

뭐야, 뭐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해?

아니 그것보다도, 누구세요 대체?

애초에 팔씨름하자고 한 것도 저면서, 내기 같은 건 건 적도 없으면서, 너는 참 당연하게 술을 사라고 외치고는 능숙하게 주문을 한다.

“여기서 제일 비싼 거 주세요!”


내가 오늘 얼마를 가져왔더라.


팔씨름은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이어졌다.

대부분 술을 먹고 신난 네가 최근에 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 덕분인지 요새 부쩍 근육이 붙었다던가, 힘이 세져서 택배 박스를 혼자서도 척척 옮긴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다 갑작스럽게 시선을 나에게 돌려 시비를 거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얘기 몇 번째예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삼켰는데, 내 침묵은 네 도전의식을 멈추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국 세 차례를 연달아 져주고 나서야 제 풀에 지친 네가 떨어져 나갔다.

네가 이길 때마다 들이키던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얘 어떻게 해요 누나?”

곤란한 목소리로 묻자 누나는 뭘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뭘 어떻게 해? 택시 태워서 보내”

이렇게 황당할 데가. 술값도 잔뜩 썼는데, 오늘 일진이 진짜 사납구나.

주소도 모르는 애를 어떻게 택시에 덜렁 태워 보내냐고 물으니 주인 누나는 ‘그럼 영업도 안 끝난 내가 나서랴?’하며 나를 쫓아냈다. 예상치 못한 짐짝과 함께.


“저기요, 저기요, 주소 좀 말해보세요”

아이씨,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네.

주소도 모르는 사람을 택시에 무작정 태울 수는 없어 일단 가게 앞 벤치에 앉히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걸 어쩐다.


참 잘도 잔다. 안 추운가?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잠꼬대인지 잠깐 술이 깬 건지 모를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지마요”

“네?”

“팔씨름 졌으니까.. 어디 가지마요.”


깬건가? 놀라서 쳐다보니 잠꼬대인가보다. 여전히 눈을 감은채로 계속 웅얼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나 코 제대로 꿰인 것 같다.

어쩐지 오늘따라 술이 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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