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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Aug 28. 2023

인생의 쓸모

‘끝내주는 인생’을 읽다 말고.


요즘 통 울 일이 없었다.

나는 눈물에서 글이 나오는 사람이라, 울 일이 없는 요즘은 글을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뭘 쓰든, 지루할 것이었다. 지루한 글은 태어날 필요가 없다. 세상에는 이미 글이 무수히 많아서, 나까지 사람들을 실망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변명을 대며 글을 쓰지 않은지 일 년이 넘었다.

그리고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을 읽으며, 한 챕터만에 글이 쓰고 싶어졌다.

참 대단한 사람. 단 몇 줄만에 인생의 쓰임에 대해 고민하게 하다니. 작가란 무엇일까.



어릴 때는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이 너무나도 예민하게 느껴져서, (물론 누구도 겪어선 안 되는 고통이긴 했지만) 내가 뚫고 가는 모든 고난마다 살이 찢어지는 듯했다. 지나고 나면 ‘학교에서 괴롭힘 당해서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라는 문장 하나로 퉁쳐지는 일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매일을 울었다.

엄마는 우는 나를 안고,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이렇게 힘드냐’며 아파했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울고 싶다’고 비명을 질렀다.

당장에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미래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묻고 싶었다.

힘든 날이 길어졌다. 나는 버티고 버티다가 조용히, 그림처럼 앉아있다가 졸업을 맞았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남들 눈치를 자주 봤고, 미움받기 싫어 자주 조급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그렇게 일 년을 넘게 또 버티던 어느 날, 화가 났다.

‘내가 왜?’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울렸다.

답은 찾지 못했다. 이유가 없었으므로.

열일곱의 나에게도, 스물둘의 나에게도 그렇게까지 미움받을 이유는 없었다.

교복 치마가 길어서? 남들 다 보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듣는 음악이 달라서?

다 헛소리였다. 나는 이유 찾기를 그만뒀다.


한번 붙붙은 화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매일 친구를 붙잡고 울고, 독주를 들이부어도 화는 커지기만 했다.

마침내 거대한 화마가 불꽃의 크기로 줄었을 때, 미움을 손가락 끝으로 비벼 끄고 나는 산뜻해졌다.

나를 미워하는 것들을 우스워하니 마음이 날아갈 듯했다.

멀리 보니 그렇게 다 우스운 거였단 걸 깨달았을 때, 너무 억울해서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 쉬울 것을, 왜 그렇게 울었대.



스물셋에 한국 땅을 박차고 먼 곳으로 갔다.

연고도 없는 프랑스에서, 생전 맞닿아본 적 없는 언어를 뒤집어쓰고, 이방인으로 살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즈음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전에서, 대구에서, 전국 각지의 친구들이 파리의 이방인이 되기 위해 날아왔다.

여행자라고 불릴 수 없이 오래된 손님으로 머물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만큼 다른 사연을 들고 왔다.

오래된 손님으로 눌러앉은 나는 모든 사연을 꼼꼼하게 들었다.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위로를 건네고, 그 마음을 이해하노라 말했다.

혹 오만한 마음일까 봐 네 맘을 다 안다고는 말 못 했지만, 나는 정말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야기 속 그늘마다 어느 날의 내가 지나간 밤이었다.

이야기 끝마다 고생했다는 말과, 앞으로의 응원과, 행복하라는 당부를 전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오늘 너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날의 내가 아팠구나.



이슬아 작가는 그동안 해온 모든 키스가,
좋거나 나쁘거나 더럽거나 슬펐던 모든 키스가,
빚더미를 등에 진 친구를 웃기기 위해서 쓰인다는 게
기쁘고, 귀하고, 좋았다고 했다.  


고통 속의 친구를 잠시라도 편하게 웃길 수 있다면 올해 최악의 키스든, 언젠가의 망한 연애든 무슨 상관일까.

나는 그 뒤로 크게 아프지 않고 자랐다.

허나 나이를 먹으며 가장 성장한 때가 언제냐 물으면 늘 스물셋의 그 여름을 떠올린다.

내가 아파서, 네가 덜 아팠던 계절. 인생의 쓸모를 깨달은 파리.



별이 제 몸을 불태워 타오르는 것은, 감내할 수 없는 슬픔을 삭이는 누군가 어느 밤 바라볼 빛을 위해서가 아니겠나.

그리하여 눈멀듯 까만 밤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스포트라이트는 아니어도, 너를 비추는 빛이 있다는 위안을 주려고.

어둠 속에 홀로 선 듯해도, 수많은 빛이 여기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렇게 어느 날의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별들도 자기만의 지옥 속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별을 사랑하지.

그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어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걸 아니까.



인생의 쓸모를 깨달아 더 이상 무엇도 그렇게 밉지가 않은 날들.

그거야말로, 끝내주는 인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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