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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6. 2023

'왜' 레이어 쌓기

'왜' 레이어 쌓기


내가 책, 혹은 글에서 요구하는 것은 통찰이다. 매번 보는 것을 낯설게 보고, 함의를 찾고, 이유를 분석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사물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은 멋지다. 왜냐면 삶에서 능동성을 얻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것을 아무 가공 없이 받는 것은 기계다. 나를 찾고 싶다. 다른 말론 자아실현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알고 세상을 알 필요가 있다. 그 작업을 잘한 사람에게 '통찰 있다'라는 평을 한다. 통찰 또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 그 사고 메커니즘을 따라가다 보면 대리 경험하게 된다. 통찰의 전이다. 글인 이유는 글이 논증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리듬으로 논리 구조를 파악한다. 그래서 나는 통찰을 찾는다.



인간이 통찰을 얻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왜?'에 답하는 것이다. 왜는 중요하다. 이유를 찾는 활동이다. 근간을 찾는 활동이다. 나를 알아가는, 세상을 알아가는 활동이다. '왜'라는 1음절이 모든 과정을 상징한다. 행동경제학은 모든 것에 의미를 찾으려는 본능은 현실과 무관한 경우가 많으며 여러 휴리스틱의 근간이 된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왜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더라도 사고 활동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날카로운 이성을 갖기 위해 왜를 겹겹이 쌓아야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논증의 중요성을 말한다. 주장엔 논증 책임이 따른다. 본인의 취향을 말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소바를 좋아해-는 논증의 대상이 아니다. 취향은 예외다. 사실과 가치 판단에선 논증이 필요하다. 취향의 나열을 제외한 모든 글은 논증 책임을 지닌다. 세상은 둥글다- 둥근 근거를 대야 한다. 수평선, 지평선, 우주에서 보이는 지구 모습, 달 등을 댈 수 있다. 유시민은 멋지다- 멋진 이유를 대야 한다. 자신의 멋의 기준을 말하고 유시민의 어떤 점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말해야 한다. 여기서 논증은 '왜'의 다른 표현이다.



'찰리 멍거, 자네가 옳아'를 읽고 있다. 영제는 'Damn Right'이다. 직역하자면 '존나 맞아' 정도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감탄한다. 감탄의 정도가 지나치면 욕이 나온다. 본능을 자극하는 감정이 욕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찰리 멍거가 지나온 궤적을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실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Damn right!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멍거는 가장 합리적인 사람에 속한다. 그는 행복하길 원한다. 행복에서 돈이 주는 영역과 주지 못 하는 영역을 분명히 구분한다. 행복에 중요한 요소를 구분한다. 그것은 준거집단, 소득보다 낮은 지출, 가족의 유대, 사회적 평판 등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 솔루션은 인상적이다. 미국 최상위 부자에 속하는 한 의사 가족 얘기다. 베버리힐즈의 최고 부촌으로 이사한다. 고액 연봉의 의사지만 그 지역에선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된다. 배우자는 이웃과 비교하며 남편을 구박한다. 자신들이 못난 사람 모자란 사람이 된 기분을 느낀다. 여기서 찰리 멍거가 주는 솔루션은 이렇다. "내가 가장 부자가 될 수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라" 준거집단을 바꾸면 행복해진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솔루션이다. 물론 현대 사회의 정치적 올바름 기준에서 애매한 곳에 위치한 대답이다. 실리적으론 맞다. 



멍거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능력을 기르는 방법도 친절히 소개해 준다. 바로 독서다. 책을 많이 읽어라. 전제 조건이 있다. 내게 필요한 책 목록을 먼저 작성하고 왜 필요한지 납득한 상태로 읽어라. 인간의 한계와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그 덕에 심리학 책을 우선순위로 읽을 것을 명한다. 실제로 그의 판단 근거에 행동경제학적 지식이 많다. 다음으로 물리학과 회계를 뜻한다. 함의를 보자면 심리학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물리학으로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회계로 기업/사업을 이해하란 뜻이다. 함축하면 이렇다. 나와, 세계와, 돈을 알라.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위한 일상적 합리성 기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로 '왜?'라고 묻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왜, 왜, 왜를 입에 올린다. 자기만의 답을 끝없이 찾길 요구한다. 수동성을 벗어나라! 주어진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왜 그렇게 됐고,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이 구절을 읽으며 손뼉을 쳤다. 찰리 멍거, 자네가 옳아! You are Damn right! 왜를 달고 살자는 나의 삶의 신조다. 합리적 삶을 추구한다. 내가 존경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산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타인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 찰리 멍거가 나를 격려한다. 물론 나와 그가 같은 위치에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의 합리성과 인품에 비해 내 것은 한없이 초라하다. 그럼에도 잘하고 있어. 그렇게 살아-라고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나의 '왜'는 한정적이다. 빈도도 한정적이고 깊이도 한정적이다. 나의 부족함 탓이다. 통찰은 '왜'의 레이어 횟수에 비례한다. 내 왜는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통찰이라 말하기 애매한 곳에 머문다. 왜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답하기 어렵고 불편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어렵고 불편한 일에 소극적이다. 좋은 거 알지만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멍거를 위시한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과 나의 차이다. 



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의식적 실천밖에 없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나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반복적으로 한 활동에 친근함을 느끼고 더 자주 하는 경향성을 띤다. 그러니 어떤 분야에 정통해지고 싶으면 습관을 들이고,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말한다. 예를 든다. 합리적 의사 결정에 정통해지고 싶다. 그러면 왜를 겹치는 습관을 만든다. 습관을 만들기 위해 왜의 레이어를 만들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그에 부합하는 환경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커피가 맛있다. 왜 맛있지? 내가 맛있다고 느끼니까. 어떤 맛이 맛있는 맛이지? 고소한 맛과 산미, 끝에 남는 향. 이 커피는 그중 뭐가 특별하지? 끝에 향이 오래 남음. 왜 향이 오래 남지? 빈이 좋을 수도, 로스팅 잘된 이유일 수도. 왜 매번 오는 카페에서 다른 거지? 빈을 바꿨거나 로스팅 방식을 바꾼 것일지 모름. 대답하기 쉬운 열린 질문을 건네면 습관이 되고 원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이 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 원인을 알고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불가능의 영역에 속한다. 행동경제학을 보면 시스템 1,2의 뇌의 역할을 잘 구분한다. 우리 삶의 대부분을 시스템 1, 직관적, 반사적 뇌가 담당한다. 그리고 숙고가 필요할 때 2가 등장한다. 뇌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모든 것을 2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레이어 쌓기의 의의는 숙고가 필요한 상황을 구분하고, 필요할 때 적절한 조치를 줘서 내 삶을 긍정적 방향으로, 합리적 방향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예외의 상황에 성장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아도 예외 사항은 연일 발생한다. 그때 성장하면 그만이다. 좀 더 나은 결정, 도덕적 판단을 하기 위해 오늘도 '왜'를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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