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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Nov 15. 2023

당위를 벗어던지면 사회가 손가락질하지만 기분이 낫다


일본 드라마 제목처럼 지어봤다. 구체적으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차용했다. 그 드라마를 보는 이틀 동안 드라마 속에 머물렀다. 나의 친구 각키, 나의 친구 호시노 겐. 그들과 더 이상 생활할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허구의 세상에 침잠했고 이야기의 끝에 현실로 돌아왔다. 묘한 우울을 느낀다. 분명 찾아보면 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겠으나, 명명의 권한을 양도하고 싶지 않다. 나는 스토리 블루라 이름 짓겠다. 현상에 이름 지으면 대단한 사람이 됐다며 착각한다. 착각은 기분 좋다. 제목 설명으로 한 문단을 낭비했다. 문단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것도 글쓰기의 당위다. 당위를 벗겠단 의지 표명이 이 글의 주제이므로 기꺼이 낭비를 수용한다. 




당위를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피로 사회의 핵심이기도 하다. 현대 성취 사회에서 성취하라는 사회의 명을 거부하자. '아니'라는 말의 대단함. 행동 과잉 사회에서 행동하지 않음이 도움이 된다. 유한계급의 사회에서 CEO, 창업자 사회로 넘어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의 미덕이 되고,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했다. 이제 자기 일, 소명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이다. 그 소명도 세속의 기준에서 가치가 나뉜다. 세속의 기준은 경제력이다. 돈 많이 버는 일에 소명의식을 느끼고, 그에 최선을 다해 돈을 쓸어 담으면 존경할 만한 삶으로 거듭난다. 

ㄴ가끔 전문용어나 개념어를 사용한다. 대체어를 찾을 수 없다. 어떤 개념을 말하기 위해선 정해진 용어를 써야 한다. 쉽게 풀어써주는 것은 대단한 사람의 몫이다. 놀이터에 할아버지 들어오니 어긋난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말한다. 아 글방은 그냥 하루하루의 느낀 바를 캐주얼한 문체로 쓰는 사람이구나. 엥 프로테스탄트 윤리? 소명? 유한계급? 무슨 소리야. 해외의 삶이 어떤지, 뭐 먹는지, 얼마 버는지, 뭐 하고 노는지나 쓰라고. 아오 재미없어. 다신 오나 봐라. 문단 아래 덧붙인 글은 사족이다. 당위 벗어던지기 두 번째.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너사와도 그렇고 주변인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취미가 글쓰기면 출판해야지. 언제 출판할 거야? 무슨 장르의 책을 낼 거야? 출판이라는 분명한 결승점이 있고, 거기에 이르지 못 하면 취미는 성취를 이룬 게 아니다. 출판은 좋은 기준이기도 하다. 분명하고, (대체로) 일정 수준의 구조적 완결성을 담보한다. 글쓰는 취미를 가졌으면 잘 써야 하고, 잘 쓰면 출판해야 한다. 글로써 돈을 벌어야 한다. 주머니에 꽂히는 것(돈)이 세상의 인정을 뜻한다. 취미의 결실이다. 어떤 일을 한다면 성취를 내야 한다는 성취 사회의 미덕을 체화한다. 




한때 그 미덕을 실현하고 싶었다. 재미와 생각 정리라는 장점으론 부족하다.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글쓰기라면 출판이다. 글에 흡입력이 필요하다. 출판에 이르는 길은 많은 구독자와 활발한 소통으로 인한 네트워크다. 좋았어. 많은 블로그 이웃을 만들고, 브런치에 자주 노출되는 요즘 이슈를 다뤄야겠다. 뒤에 사람의 참여를 요구하는 문구를 덧붙이는 거야. 그 부분은 친근한 말투를 써야지. 브런치 출간 작가의 로직을 따라 해보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같이 이야기해볼까요? 생각 남겨주세요!' 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글을 쓰면 아무에게도 관심을 얻지 못 하고, 안 읽히는 글은 출간의 기회가 없을 텐데... 이거 어쩐담. 내가 쓰는 건 시시콜콜하면서도 책과 현실에서 배운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이야기다. 시시콜콜한 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사회문화인문경제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어필하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글이다. 요컨대 출간하기 위해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미와 생각정리라는 장점을 포기해야 한다. 취미는 재밌으려고 하는데 어느 틈엔가 부담이 됐다. 나는 게으르다. 불편한 일은 안 한다. 결국 블로그 이웃 모으기와 브런치 출간 전략은 시작과 동시에 폐기됐다. 폐기를 취미의 실패로 인식했다.




당위를 벗어던지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성공의 결실을 다른 곳에서 얻을 때. 둘째, 성취 사회와 결별할 때. 두 가지 방식은 대척점에 있다. 나는 양극단의 방식을 이용했다. 글로 추가 소득을 올려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지! 다른 사업으로 추가 소득을 올렸다. 글로 벌 수 있는 것보다 큰 소득이다. 굳이 글로 돈 벌 필요는 없겠다- 이것이 첫째 방식. 꼭 성취가 있어야 해? 그냥 재밌고 생각 정리할 수 있다는 유용함으로 충분하지 않나? 성취라는 것도 외부의 기준이지. 나는 나의 삶을 살자. 내가 인정하는 유익함으로 취미는 충분히 존재할만해- 이것이 둘째 방식. 어떤 결실도 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피로 사회가 말한 쓸모없는 것의 쓸모다. 쓸모없음을 선언하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당위가 사라진다. 취미를 취미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 




이는 취미 뿐만 아니다. 모든 영역에 적용이 된다. 내가 먹고 살만 하면 당위를 벗어나기 수월하다. 그까짓 성취 이루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아. 나를 세상의 우위에 둔다. 그냥 재미를 그 자체로 존중하자. 성장하지 않아도 돼.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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