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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10년

청소 사업 10년의 마무리

by 띤떵훈

최근 10년의 비지니스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데드라인이 있는데, 처남 결혼식 참여로 출국하는 12월 말까지다. 그 판매가 안 되면 비지니스를 말소하고, 판매가 되면 회사에 각종 비용을 공제한 뒤 어느 정도의 소득을 거둔다.


비지니스 판매가 90% 정도 성사됐다. 지역 매니저에 따르면 디파짓(선 계약금)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면 100%가 된다. 일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어제 선 계약금을 보냈다. 내 관리 지역도 좋고, 고객도 양도받고, 판매 금액도 저렴하다 보니 이 업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다. 내 가족에게도 좋은 조건이라며 떳떳하게 판매할 수 있다. ​​



앞으로 남은 절차는 이렇다. 구매자는 회사 헤드 오피스에서 일주일의 트레이닝을 받고, 내게 이주 동안의 트레이닝을 겸한 인수인계를 받는다. 이주 트레이닝이 끝나면 나는 계약 이전 서류에 사인하고, 공제한 금액을 수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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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금은 훌륭하지 않다. 10년 전에 내가 구매한 금액이 3.5만 불이다. 더 좋은 조건에, 물가마저 오른 현재 판매 금액이 2.5만 불이다. 급하게 처분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회사에 공제하고 나면 1.4만 불 정도가 들어온다. 소박한 금액이나, 말소시킬 생각까지 했던 걸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없는 것보다 낫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이어온 고객과의 관계가 있다. 그들에게 대리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물론 초짜 청소 프렌차이지는 당분간 미숙한 모습을 보일 테지만. ​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사랑뿐이 아니다. 사업도 타이밍이다.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렸다면 훨씬 좋은 조건에 판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좋은 조건을 포기한다. 집중이 필요할 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대단치 않다. 환경이 많은 변화를 이끈다. 그렇기에 환경을 조성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청소 사업도 유지하며 새로운 사업도 관리할 수 있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해도 대단한 결과를 낼 수 없다. 멀티태스킹 하려다 이도 저도 안 된다. 그럴 바에 기꺼운 마음으로 얼마의 수익을 포기한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생긴 탓도 있다. 내가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다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당장 1, 2만 불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만약 새로운 사업에 그 돈이 없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면? 죽기 살기로 비지니스 몸집을 키우고 판매했을 것이다. 신규 고객을 받아 사이즈를 키우고자 하면 금세 키울 수 있다. 주 고정 수익을 늘려 판매 금액을 올릴 수 있다. 판매금액이 오르면 구매자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는 1만 불을 벌기 위해 더 일하고, 판매 기간 연기라는 리스크를 짊어 지어야 한다. 1만 불이 이 모든 단점을 능가하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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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삶을 가능케해준 감사한 존재(비지니스가 생물은 아니지만, 감정이입을 위해 활유법을 곧잘 사용하니 이해해 주시길)다. 긴 여가를 누렸고,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사람을 상대했고, 충분한 고정 수익을 거뒀다. 청소 머니로 여자친구 밥 사주고, 교통편이 되는 차량 유지비 충당하고, 술 사준 덕에 결혼했다. 부재중에도 수익을 창출해 준 덕에 어머니 임종 전까지 자주 뵀다. 신호 위반 누적으로 3개월 면허가 정지됐을 때도 마음 편히 집에서 놀았다. 어떻게든 먹고살게 해줬다. 주 3.5일일하면서 저축까지 했고, 그 돈으로 집을(85%는 은행 소유지만) 샀다. 직접 청소기 잡을 땐 먹고 살 정도 이상을 줬다. 여행하고, 친구 선물 사주고, 문화생활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감사해 마지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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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하다.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오는 첫 마디다. 이 모든 감사함 탓에 나는 한없이 나태해졌다. 적당히 살아도 먹고 살만했다. 적당히 이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가의 단맛을 알아버렸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는데,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5년 정도 있었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고, 은퇴 후 시나리오가 생긴 이후론 생각이 바뀌었다. '이래도 되겠다. 적당히 즐겁게 살자.' 이런 마음으로 그 후 5년을 살았다. 그러다 주식 투자에 있던 돈을 사업에 투자하고, 경영에 참여하며 환경이 바뀌었다. 고정 수입이 늘고, 내 노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게 됐다. 늘어난 고정 수입의 맛은 중독적이다. 맛있는 음식 먹는 빈도가 늘고,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빈도가 는다. 내가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노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도 생겼다. 주식투자는 방구석에서 판단하는 일만 요구했다면, 사업은 발로 뛸 것을 요구한다. 환경이 이렇게 바뀌니 '이대로 쭈욱-'이란 마음가짐도 사라진다. 그 덕에 10년의 고리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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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없는 삶에서 챌린지가 필요한 삶으로 넘어왔다. 일상에 자극이 커졌다. 그 자극은 긍정적이다.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의미를 지닌 과제를 성취해 나아가는 과정은 보람이 된다. 변화를 체감한다. 이대로 즐거이- 상태였을 때 너사와의 말이 나를 찔렀다. 오빠 이렇게 나태하게 매일 시간 보내는 거 멋지지 않아. 커리어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랑 살고 싶어. 내게 다 계획이 있으니 나의 게으름을 존중해달라 항변했다. 이제 그 계획이 바뀌었다. 게으름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존중했다가 개털 된다. 나를 10년 동안 보살펴주던 청소 사업에 엔딩 크레딧이 내려온다. 청소의 보살핌을 벗어나 험난한 세상으로 나왔다. 고마웠고, 어떻게든 잘 해볼게. 망하면 청소기 잡으러 돌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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