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Nov 09. 2023

안녕 10년

청소 사업 10년의 마무리

최근 10년의 비지니스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데드라인이 있는데, 처남 결혼식 참여로 출국하는 12월 말까지다. 그 판매가 안 되면 비지니스를 말소하고, 판매가 되면 회사에 각종 비용을 공제한 뒤 어느 정도의 소득을 거둔다.


비지니스 판매가 90% 정도 성사됐다. 지역 매니저에 따르면 디파짓(선 계약금)을 받았다고 한다. 계약서에 사인하면 100%가 된다. 일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어제 선 계약금을 보냈다. 내 관리 지역도 좋고, 고객도 양도받고, 판매 금액도 저렴하다 보니 이 업종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물건이다. 내 가족에게도 좋은 조건이라며 떳떳하게 판매할 수 있다. ​​



앞으로 남은 절차는 이렇다. 구매자는 회사 헤드 오피스에서 일주일의 트레이닝을 받고, 내게 이주 동안의 트레이닝을 겸한 인수인계를 받는다. 이주 트레이닝이 끝나면 나는 계약 이전 서류에 사인하고, 공제한 금액을 수령한다.

​​


판매금은 훌륭하지 않다. 10년 전에 내가 구매한 금액이 3.5만 불이다. 더 좋은 조건에, 물가마저 오른 현재 판매 금액이 2.5만 불이다. 급하게 처분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했다. 회사에 공제하고 나면 1.4만 불 정도가 들어온다. 소박한 금액이나, 말소시킬 생각까지 했던 걸 생각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없는 것보다 낫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이어온 고객과의 관계가 있다. 그들에게 대리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 물론 초짜 청소 프렌차이지는 당분간 미숙한 모습을 보일 테지만. ​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다. 타이밍이 중요한 것은 사랑뿐이 아니다. 사업도 타이밍이다.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기다렸다면 훨씬 좋은 조건에 판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좋은 조건을 포기한다. 집중이 필요할 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대단치 않다. 환경이 많은 변화를 이끈다. 그렇기에 환경을 조성한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다면 청소 사업도 유지하며 새로운 사업도 관리할 수 있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해도 대단한 결과를 낼 수 없다. 멀티태스킹 하려다 이도 저도 안 된다. 그럴 바에 기꺼운 마음으로 얼마의 수익을 포기한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생긴 탓도 있다. 내가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다면 다른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당장 1, 2만 불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만약 새로운 사업에 그 돈이 없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면? 죽기 살기로 비지니스 몸집을 키우고 판매했을 것이다. 신규 고객을 받아 사이즈를 키우고자 하면 금세 키울 수 있다. 주 고정 수익을 늘려 판매 금액을 올릴 수 있다. 판매금액이 오르면 구매자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는 1만 불을 벌기 위해 더 일하고, 판매 기간 연기라는 리스크를 짊어 지어야 한다. 1만 불이 이 모든 단점을 능가하지 못 한다.

​​


나의 모든 삶을 가능케해준 감사한 존재(비지니스가 생물은 아니지만, 감정이입을 위해 활유법을 곧잘 사용하니 이해해 주시길)다. 긴 여가를 누렸고,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사람을 상대했고, 충분한 고정 수익을 거뒀다. 청소 머니로 여자친구 밥 사주고, 교통편이 되는 차량 유지비 충당하고, 술 사준 덕에 결혼했다. 부재중에도 수익을 창출해 준 덕에 어머니 임종 전까지 자주 뵀다. 신호 위반 누적으로 3개월 면허가 정지됐을 때도 마음 편히 집에서 놀았다. 어떻게든 먹고살게 해줬다. 주 3.5일일하면서 저축까지 했고, 그 돈으로 집을(85%는 은행 소유지만) 샀다. 직접 청소기 잡을 땐 먹고 살 정도 이상을 줬다. 여행하고, 친구 선물 사주고, 문화생활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감사해 마지아니하다.

​​


홀가분하다.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나오는 첫 마디다. 이 모든 감사함 탓에 나는 한없이 나태해졌다. 적당히 살아도 먹고 살만했다. 적당히 이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가의 단맛을 알아버렸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는데,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5년 정도 있었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고, 은퇴 후 시나리오가 생긴 이후론 생각이 바뀌었다. '이래도 되겠다. 적당히 즐겁게 살자.' 이런 마음으로 그 후 5년을 살았다. 그러다 주식 투자에 있던 돈을 사업에 투자하고, 경영에 참여하며 환경이 바뀌었다. 고정 수입이 늘고, 내 노후가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게 됐다. 늘어난 고정 수입의 맛은 중독적이다. 맛있는 음식 먹는 빈도가 늘고,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빈도가 는다. 내가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노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도 생겼다. 주식투자는 방구석에서 판단하는 일만 요구했다면, 사업은 발로 뛸 것을 요구한다. 환경이 이렇게 바뀌니 '이대로 쭈욱-'이란 마음가짐도 사라진다. 그 덕에 10년의 고리를 끊었다.

​​


챌린지 없는 삶에서 챌린지가 필요한 삶으로 넘어왔다. 일상에 자극이 커졌다. 그 자극은 긍정적이다.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의미를 지닌 과제를 성취해 나아가는 과정은 보람이 된다. 변화를 체감한다. 이대로 즐거이- 상태였을 때 너사와의 말이 나를 찔렀다. 오빠 이렇게 나태하게 매일 시간 보내는 거 멋지지 않아. 커리어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랑 살고 싶어. 내게 다 계획이 있으니 나의 게으름을 존중해달라 항변했다. 이제 그 계획이 바뀌었다. 게으름을 존중해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존중했다가 개털 된다. 나를 10년 동안 보살펴주던 청소 사업에 엔딩 크레딧이 내려온다. 청소의 보살핌을 벗어나 험난한 세상으로 나왔다. 고마웠고, 어떻게든 잘 해볼게. 망하면 청소기 잡으러 돌아갈게.

작가의 이전글 워렛 버핏, 백종원 렛츠 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