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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06.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전)호주 청소부의 독후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하 경비원)는 이번 주 발제 도서다. 일요일 모임이다. 일요일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독서모임에 참여할 예정이다. 일요일 전까지 읽어야 한다. 마침 몇달 전에 읽은 책이다. 한국에 있을 때 수면용으로 틀어놓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책은 마지막 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꿈나라에서 들었다. 꿈나라의 룰 넘버 1. 꿈에서 한 경험은 현실로 가져 나올 수 없다. 일부, 그것도 편집된 상태의 파편만이 반입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꿈나라에 울려 퍼지던 책 내용은 반입 대상에 포함되지 못 했다.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꿈나라의 기억 제거는 분명했다. 집중해서 들었다. 이런 내용이 있었나? 아 이런 책이었군. 전혀 새로운 책을 읽었다.



좋은 책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3 가량 읽었다. 그럼에도 감히 좋은 책이라 말한다. 울림이 있다. 좋은 책이라 느낀 점 몇 가지를 개인적 경험과 함께 풀어볼까 한다. 



공감대가 있다. 내가 청소부로 지낸 10년이 떠올랐다. 밖에서 보면 단순한 일이다. 아주 단면적이다. 하지만 안에서 보면 나름의 기술과 노하우, 그들만이 느끼는 고충이 있다. 일상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나 의외의 발견도 있다. 모든 직업인이 그럴진대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결여됐을 거라 치부한다. 경비원? 그냥 서서 이상한 짓 하는 사람들 막는 사람 아니야? 들여다보면 다양한 맥락이 그들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이끌었다. 다양한 역사와 전문성이 모인다. 경비원이란 단어가 주는 딱딱하고 투박한 느낌과 반대다. 큐레이터만큼이나 작품을 사랑하고 깊게 감각하고, 감상에 철학이 있다. 책을 통해 경비원이란 단어에 묶인 다양한 맥락과 입체적 인물들이 빠져나온다. 경비원 저마다 취미가 있고, 장점이 있고, 대단한 지점이 있다. 그리고 저자는 글을 정말 잘 쓴다. 청소부도 마찬가지다. 그간 다양한 이들이 나와 손을 맞췄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다. 존경스러운 면, 대단한 면이 분명하다. 회사 소속의 다른 프렌차이지들도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갖고 있다. 대단한 사업가, 영어 선생님, 한국어 선생님, 헬스 트레이너, 축구 선수 등. 단순히 청소부란 단어에 묶이기엔 너무 다채로운 인물들이다. 저자가 주변인의 다채로움을 묵직한 글 솜씨로 풀어냈다. 직업이란 그릇이 담기에 인간이란 바다가 너무 크다. 그 사실이 자연스러운 맥락으로 독자에게 다다랐다. 



다른 공감대는 도피처로써의 직장이다. 특히 인상적인 구절을 발췌한다.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내게 청소가 이랬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회의 담론에서 빠져나온 세계다. 예술과 함께 일상을 잊는 시간이다. 저자가 그림, 조각 등의 예술작품 속에 둘러싸였던 것처럼, 나는 책에 둘러싸였다. 청소기 잡는 내내 책을 읽(들)었다.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 통찰과 발견과 아름다움에서 헤어나지 못 했다. 청소기를 멈추고 에어팟의 뿌리 부분을 한 번 눌렀다. 청취 모드가 중단된다. 핸드폰을 꺼내 방금 지나간 구절을 하이라이트 표시한다. 눈으로 다시 읽는다. 문장을 음미한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고 청소기를 켠다. 문장의 여운을 품고 먼지를 빨아들인다. 손으로 눈에 보이는 먼지를 빨아들이고, 얼룩을 닦는다. 마음마저 정리된다. 잘 정리된 마음에 귀를 통해 문장을 넣는다.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청소부로서 지낸 10년은 행복했다. 책을 듣고 먼지 닦는 순간은 아름다웠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벗어난 시간이었다.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느꼈고, 10년이 지난 후에서야 앞으로 나아가기로 정했다. 10년 동안 잘 통한 속임수였다. 비슷한 환경에 있던 사람으로 문장의 울림이 컸다. 경비원이 되겠단 결심을 문학적으로 잘 풀어낸 문장이었다. 



또 다른 감동 포인트는 직업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다. 미술관 경비원 직업은 현실의 도피처로써 찾은 곳이다. 그럼에도 그 직업에 대한 충분한 존중을 드러낸다. 현실에서 도망친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여전히 삶을 살고 있는 생생한 인간으로 그린다. 하루하루를 감각하고,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며, 일상에서 감동과 깨달음에 열린 상태. 그러다 일부 무례함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작은 사람들에게는 작은 힘이 어울리지..."라고 경비원들의 요청에 코웃음 치던 한 부자 아빠의 경우처럼 말이다. 가끔 사회에서 직업이 차지하는 위치를 실감하며 나의 감동이 정신승리처럼 보이는 때가 있다. '기분이 괜찮을 때는 모욕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기분이 바닥일 때 때때로 이 불량배들이 의도하는 것처럼 작고 힘이 없다고 느끼고 만다.' 나 또한 청소부로서 누군가의 한 마디와 사소한 행동이 나를 작고 힘이 없다고 느끼게 만든 경험이 있다. 떳떳하다가도 부끄럽다. 직업에 귀천이 모호한 호주에서도 간혹 발생한다. 그럼에도 나와 직업을 존중하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이 온다. 그 경험을 함께 한 동지로서 더욱 감동한다. 행간이 말한다. 내가 나의 직업을 존중하겠어. 여기도 삶이 있고 깊이가 있어.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사소한 고충 또한 재미 요소다. 경비원으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기술은 '서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연마하지 않으면 녹스는 기술이다. 서 있고, 기대어 서 있고, 서성거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다 쓴 잉크 카트리지처럼 다리를 터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핵심 기술이다. 나뭇바닥인지, 콘크리트 바닥인지에 따라 피로도가 다르고, 공간의 조명에 따라 방문객의 행동이 달라져서 다루는 방식이 다르단 점도 흥미롭다. 그 일을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깨달음이다. 청소에서 배운 사소하지만 중요한 깨달음도 있다. 자연광이 닿지 않는 곳에선 먼지가 얼마나 날리는지 알기 어렵다. 더스터로 먼지를 털 때 온 방 안이 먼지로 뒤덮인다. 그렇기에 먼지를 제거할 때 항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 집 한 집 끝날 때마다 손 세정제를 사용해 손을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역력이 약해질 때 병치레하기 쉽다. 사소한 노하우를 통해 어떤 직업을 더 잘 알게 된다. 대리 경험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저자는 잘나가는 잡지 '뉴요커'의 기자로서 사회의 저명인사를 만나 친분을 나누고 유명세를 떨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진해서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으로 향한다. 세속의 평과 무관하다.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평온을 얻기 위해 직장을 떠난다. 그리고 단순한 도피가 아님을 근로로 증명한다. 이곳에도 삶이 있고, 여전히 나는 잘 살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여기든 내가 충실히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책이 말하는 핵심은 그의 삶이 도피가 아닌 선택이었단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곳과 직업과 동료들을 향한 존중이 증명한다. 



잘 쓴 책은 몇 페이지만 읽어도 안다. 1/3이 남았다. 이미 큰 울림을 줬다. 독자가 저자에게 표하는 최고의 경의는 책을 끝내는 것이다. 남은 독서는 예정된 성공이다. 재빨리 저자에게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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