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띤떵훈 May 24. 2024

타협의 여정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작이다. 커리어 초창기에 발표한 중편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마음에 들지 않아 언젠가 고치겠다 벼르던 작품이란다. 몇 년의 시간을 투하해 살을 붙이고 군더더기를 덜어냈다. 분량이 길지만 아주 날렵한 작품으로 거듭났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말한다. '영화는 두 번 재생된다.' 영화를 본 이후에 저마다의 해석이 뒤따른단 의미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두 번 읽힌다. 독자의 삶과 가치관이 녹아들어 책이 규정하지 않은 공간을 메운다. 그렇게 무수한 작품이 탄생한다. 예술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작가와 작품과 관객이다. 관객의 감상은 예술의 일부다. 해석은 새로운 창조다. 70억 인구라면, 70억의 맥락이 다르다. 70억 개의 맥락이 매번 새로운 예술을 만든다. 차이라면 70억의 예술은 대체로 생각과 몇 마디 말로 만들어진다는 것. 하루키는 두 번째 재생을 위해 공간을 넉넉히 마련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중심 주제는 두 공간이다. 공간은 여러 상징으로 작용한다. 관념과 유물, 이상과 현실, 나와 타자, 환상(이상은 현실 내부, 환상은 현실 외부에 존재)과 현실, 공과 사, 혹은 독자가 만드는 어떤 세계와 현실이다. 일견 매트릭스의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세계가 연상된다. 거짓의 세계와 진실의 세계다. 거짓의 세계는 내게 안락과 평화를 준다. 진실의 세계는 고통을 주고 책임을 지어준다. 정의와 부정의로 고쳐 쓸 수 있다. 키아누 리브스는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정의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을 고른다. 미녀와 편한 침대, 맛있는 식사가 한가득한 환상의 세계를 뒤로하고 해야만 하는(당위)의 세계로 떠난다. 진실은 고통스럽고 위험하다. 그러나 감수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다. 선택지 앞에 고민하는 주인공은 한없이 인간적이다. 우리는 깊은 공감을 한다. 공간을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만든다.



벽은 여러 경계가 된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함께 산다. 완벽한 사랑처럼, 완벽한 이해는 있을 수 없다. 누구도 온전한 나를 몰라준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그럴 바에야 높은 벽을 치고 혼자 살고 싶단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결국 벽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이 넘어야 하는 장애물이면서도 그를 지켜주는 방벽이다.



공간 구분의 특징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이하 '도시')가 낙오자의 공간이 아니란 데에 있다. 도시는 실재한다. 노동과 삶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하루키는 도시가 단순한 '현실 도피처'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 안에 사람이 있고, 직업이 있고, 일상이 있다. '사회부적응자가 타인을 피해 틀어박힌 내 방'이라는 단면적 해석을 초월한다. 능숙한 작가는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입체성을 부여한다. M으로 불리는 인간 도서관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그 도시'로 향한다. 도태된 이가 걷기를 포기하고 바로 앉을 수 있는 내 방 침대가 아니다. 무거운 결심과 험난한 과정, 본인의 철학을 고수하는 이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주인공의 성실함이 포인트다. 그는 성실히 현실을 산다.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무시당하는 주변인이 아니다. 직장에 근속하며 성실히 그날의 임무를 수행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내향적이지만 사회생활에 문제로 여겨지진 않는다. 되려 괜찮은 사람이란 평판을 얻는다. 16살 첫사랑의 환상과 평생을 보내지만, 환상으로 삶을 훼손하지 않는다. 대학에 들어가, 졸업하고, 취직하고, 데이트하고,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성실한 주인공을 통해 도시는 단순한 낙오자의 공간이 아님을 재확인한다.



회사를 퇴직한 주인공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삶을 시작한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도서관에서 일했던 것처럼. 명확한 대조가 현실과 꿈을 보여준다. 현실에선 책을 관리하고, 도시에선 꿈을 관리한다. 도시의 일은 꿈 기록을 보는 것이다.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났을 때 여러 대화를 나눈다. 그중 하나가 꿈 이야기다. 그녀는 꿈을 기억하기 위해 꿈 일기를 쓴다. 쥐기 쉬운 몽당연필로 기억난 모든 것을 종이에 옮긴다. 이를 통해 꿈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이때 꿈은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매일 밤 꾸는 꿈이며, 내가 이루고 싶은 지향의 꿈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하는 일은 꿈을 관리하는 것. 그러니까 현실과 무관하게 자아실현을 위해, 이상에 닿기 위해 갈고닦은 꿈이다. 그 꿈을 쥐고 놓지 못 한다.



서른 중반에도 꿈을 놓지 않는다.  어느 날, 우연히, 맥락도 없이 '도시'의 삶이 시작된다. 어떻게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들어갔는지 알 길은 없다. 도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다. 삼십 대의 주인공은 꿈을 관리하는 도시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그림자와 분리한다. 도시의 규칙 중 하나는 그림자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에 머물면 그림자는 서서히 죽는다. 그림자는 현실에 대한 미련, 현실과의 타협 등을 의미한다. 그림자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그를 현실로 탈출시킨다. 그는 그림자와 작별하고 도시에 남기로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주인공은 현실도 놓지 않는다. 시점은 현실로 돌아온다. 주인공은 선택과 무관하게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십수 년을 더 산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며 현실을 방치하지 않는다. 성실히 삶을 산다.후에 그림자와 본체 구분이 모호해진다. 누가 그림자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도시를 벗어난 삶은 사실 그림자의 삶일 수 있다. 이상을 택했지만 도저히 현실을 버릴 수 없다. 삶에 후회 없는 결정은 없다. 항상 선택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떠오른다. 결정 받지 못 했다고 아끼지 않는단 것도 아니다. 삶은 그런 도식이 아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했지만, 다른 하나를 완벽히 놓지 못 한다.



현실의 승리. 또 다른 결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도시에 남을 것인가 현실로 떠날 것인가. 마흔 줄의 주인공은 이번엔 다른 결정을 내린다. M에게 꿈 관리를 맡기고, 도시를 떠난다.



우연히 만난 찻집 주인은 첫사랑의 그녀와 비슷한 점이 많다. 키스는 주고받았지만 성관계까지 이어지지 못 한 지점, 상호 호의, 현실에 애매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의 나이다. 십 대인 주인공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영원을 꿈꾼다. 사십 대인 주인공은 사랑에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정도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먹는다. 주인공은 시간을 내 장을 보고, 음식을 손질하고,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든다. 현실을 가꾼다. 영원을 꿈꾸기 보다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을 기뻐한다.



주인공의 마지막 결정은 찻집 주인을 통해 의미가 분명해진다. 꿈은 환상의 결정이다. 도시는 환상의 공간이다. 꿈엔 영원이란 단어가 붙는다. 주인공은 더 이상 영원을 꿈꾸지 않는다. 첫사랑은 나를 도시로 이끄는 존재다. 그녀의 존재는 이후에 만난 모든 인연을 시시하게 만든다. 완벽한 비교 대상이다. 그래서 이후에 만난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없다. 마지막에 와서 주인공은 찻집 주인을 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든다. 일상을 보내고 퇴근 후에 만나 함께 위스키 한 잔 마신다. 하루에 담배 한 개비,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그녀의 리추얼을 존중하고, 함께 한다.



개인적 해석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내게 도시(꿈으로써)는 특정되지 않는다. 나의 꿈은 추상과 격정으로 가득 찬 곳이다. 막연히 완벽한 존재가 돼서, 완벽한 일을 하고, 완벽한 사람과 완벽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지향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지만 결국 살다 보면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은 결정을 한다. 이것이어야만 하는 게 없어진다. 주어진 하루를 보낸다. 완벽은 아니어도 적당히 즐거운 하루를 긍정한다. 꿈은 어린 시절 상상에만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하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을 산다.


작가의 이전글 조카 탄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