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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22. 2024

조카 탄생



조카가 태어났다. 2.9kg의 인형처럼 작은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름은 아직 안 정해졌다. 엘로이즈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올리비아, 어쩌면 줄리아. 엘로이즈든 올리비아든 줄리아든 그녀의 앞날을 축복한다. 



아이가 좋다. 여가가 좋다. 좋은 모든 것을 가질 순 없다. 양자택일이다. 아이를 택하면 여가를 포기해야 한다. 여가를 택하면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육아는 많은 시간을 요구하므로. 30대가 되니 현실적으로 변한다. 주변인의 입을 통해, TV를 통해, 책을 통해, 생명의 무게를 실감한다. 나의 실감과 현실엔 괴리가 있다. 맛집 레시피의 비결은 '내가 짜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소금을 좀 더 넣는 것'이다. 맛집 레시피와 육아는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힘든 지점에 힘듦을 추가하는 것. 나이와 비례해 딩크 결심은 공고해진다.



주변인은 말한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불편을 압도한다.' 나는 기계적 객관을 추구한다. 나라고 특별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많은 경우 나는 일반에 속한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몇십만 분의 1이라면 나는 1을 제외한 다수일 것이다. 요식업에 성공할 확률이 8% 미만이라면 나는 92% 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주는 행복으로 그 어떤 고통도 극복할 수 있다는 몇몇의 말을 통계로 반박한다. 자녀가 있는 노인 인구의 행복도를 조사한 설문이 있다. 아이가 없는 노년의 행복도가 높다. 나는 다수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여가로 인해 누릴 확정 행복을 포기할 만큼 용기가 있지 않다. 



조카는 내게 선물 같다. 아이를 포기한 대신 주변인의 아이를 보며 대리만족한다. 아이를 안아 볼 기회를 얻는다. 작고 따뜻하다. 이렇게 작은 존재가 언젠가 커서 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자신의 아이를 갖고, 나보다 훨씬 대단한 누군가로 거듭난다니! 경탄스럽다. 처남의 아이가 주는 감동은 정도가 다르다. 피가 전혀 섞여있지 않지만, 우리는 3촌이다. 배우자 동생의 자식이다. 배우자 DNA의 25%를 갖고 있다.(확률 계산이 틀렸을 수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아이라는 사회적 틀이 친밀감을 더한다. 내가 너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2천 불을 쓰고, 주말을 반납하고, 기사를 자처했단다. 촌수 계산 시스템과 만남의 기회비용이 엘로이즈 혹은 올리비아 혹은 줄리아 혹은 또 다른 어떤 이름의 아이를 한층 사랑스럽게 만든다. 



"한 번 안아봐도 돼?" 처남에게서 아이를 받았다. 오른손 손바닥으로 아이의 머리를 받치고 양팔로 아이의 몸을 지탱한다. 한 손으로 드는 4킬로 덤벨보다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무서울 지경이다. 조심스럽게 아이의 몸을 흔든다. 느릿한 스윙이 아이를 안정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면서. 지그시 아이의 작은 얼굴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바라본다. 이 작은 얼굴에 눈 코 입 귀가 다 있다니! 되려 아이가 나를 안정으로 이끈다. 



이가 하나도 없다. 손톱만 한 혀는 걸리는 것 없이 입술과 마찰한다. 작은 입술을 오물오물 거린다. 혀를 내밀고 침을 흘리고 가끔 토를 한다. 처남은 토사물을 치우고 입가를 닦는다. 뭐든 좋다는 한국계 아버지,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는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해,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조카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며, 시드니 뉴타운에서 자라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고, 유행하는 옷을 사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유튜브로 한국과 중국 문화를 학습하고, 호주식 교육을 받아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본인 정체성을 고민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 한식당에 갈 나이가 되겠지. 어눌한 호주 발음으로 또폭키(떡볶이)와 뷸교기(불고기), 킴취 스튜(김치찌개)를 주문할 것이다.



멜번 사는 마이 코리안 사이드 엉클은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 뭘 해도 잘한다 잘한다 하며, 한국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오고, 호주에 산지 20년 넘었지만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고, 용돈을 잘 주고, 시도 때도 없이 장난치고, 사업과 투자 얘기에 눈이 반짝거리고, 매일 카페에서 읽고 쓰고, 책과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자기 의견을 분명히 하고, 소박하고, 자신의 어떤 선택도 존중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먼훗날의 조카의 시선을 의식한다. 아무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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