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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띤떵훈 May 17. 2024

자투리 모음


브런치에 올리긴 부족하고, 묵혀두긴 아까운 습작을 모았다. 부족한 퀄리티를 양으로 때운다. 통찰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휘리릭 읽을 법한 수준 낮은 글 뭉텅이.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쇼츠를 몇 편 연달아 본다. 유명한 부부관계 강연자의 스피치 영상이 나온다. 연애의 이유는 '그래서'고,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저 사람의 저런 점이 좋다. '그래서' 만난다. 결혼은 다른 영역이다. 몇 개의 좋은 점으로 충분치 않다. 결혼 생활엔 무수한 실망과 고난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이 결혼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 결혼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 접속사가 주는 뉘앙스와 의미 차이가 흥미롭다. 문학적이다. 





전날 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위스키 회동이라 부른다. 친구와 동업자 형, 나 셋이 모였다. 형을 처음으로 초대하는 자리다. 격식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랐다. 고급 위스키인 '히비키 하모니'를 구매했다. 형은 말비니 12년을 가져왔다. 연어 회와 치킨 립, 샐러드, 넛츠 믹스, 치즈, 훈제 터키와 훈제 살라미를 곁들였다. 예쁘게 플레이팅하고 술을 마셨다. 좋은 술은 술술 들어간다. 안주를 집어먹으며 술술 들어가는 술을 마셨다. 어느새 아침이 왔다. 눈 뜨며 혼잣말한다. 아 피곤하다.





오늘은 멜번의 한 클럽과 우리 사업이 콜라보 하는 날이다. 클럽에 우리 부스를 넣어, 클러버에게 공짜 사진을 제공한다. 우리는 스폰서의 로고가 담긴 프레임과 전문 인력을 제공하고 임대료를 받는다. 큰 수익이 되진 않는다. 레퍼런스와 인맥을 위해 협업에 나섰다. 클럽 오퍼레이터는 중국계 호주 회사다. 굵직한 이벤트와 클럽 행사를 담당하며 부동산 사업과 최근엔 복권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거물과 안면을 트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선 아무튼 자주 만나야 한다. 진지한 관계는 만남에서 시작한다.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오픈 1시간 30분 전에 클럽에 입장한다. 클럽은 10시 오픈이다. 말인즉슨 저녁 8시 30분까지 일정이 없다. 숙취가 있다. 라면 한 그릇 먹고, 운동 몇 세트 했다. 침대에 누워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듣는다. 분량이 길어서 4회에 나눠서 한다. 이번 독서모임의 진도에 도달하고, GPT4o와 함께 책 내용을 복기했다. 내용을 정리하고, 독서모임에서 할 법한 질문과 통찰 있는 예시 답안을 요구했다. GPT와 대화하며 사르륵 잠에 빠졌다. 꿀맛 같은 잠이다. 다른 독서모임의 발제 도서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으로 넘어간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청취 모드로 들으며 잠을 이어가야지. 몽롱한 상태로 이북을 들으면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다.





가게에 문제가 생겼다. 누구도 가게에 나갈 수 없다. 귀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다. 금요일은 대목이다. 금요일 장사를 망치면 한 주 장사가 망한다. 우리의 한 주를 위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매출도 문제고 애써 매장에 찾은 고객들이 온전한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평판이 낮아진다. 푹신하고 따뜻한 침대를 벗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아~ 어휴~ 한숨을 내쉬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막상 나와서 할 일을 하니 예상보다 기분이 괜찮다. 해야 할 일을 할 때 성취감을 맛본다. 7시간 동안 무얼 하나 걱정했으나 단골 카페에 나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블로그에 글을 적으니 행복이란 단어가 입을 맴돈다. 





전날 위스키 회동 직전에 친구와 음식을 주문하러 길을 나섰다. 집 앞 피자집에 치킨립이 프로모션 중이다. 밤길을 거닐며 인생의 예측불가한 성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지금 내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본다. 몇 해 전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산다. 사소한 변수가 인생의 궤도를 크게 바꾼다. 주거래 은행도 그렇다. 10년 넘게 이용하고 있는 은행이 있다. 숙소 바로 앞 쇼핑센터에 은행 브랜치가 있어 가입한다. 꼭 그 은행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공교롭게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그래야만 해'와 무관하다. 어쩌다 보니다. 어쩌다 어떤 공간에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난다. 한 번의 어쩌다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무수한 관계를 떠올린다. 





내 의도와 무관한 삶을 산다. 예상은 완벽히 빗겨났다. 군대 근무를 설 때 동기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서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나의 서른은 스무 살 군바리가 구술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고, 지금의 나는 서른의 내가 그린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살맛 난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살맛 나는 걸지도. 예상된 길은 재미없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낸다 믿지만 몇 년 뒤엔 전혀 다른 내가 있다. 








 허기




배고프다. 지금은 오후 12:41분이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다. 보통 아침을 먹지 않고, 이른 점심을 먹는다. 보통 오전 11시부터 1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다. 점심 마지노선이 지나고 있다. 배는 꼬르륵 거린다. 뭔가를 먹고 싶다. 뭘 먹으러 카페를 벗어나면 재진입을 위해 다시 커피를 결제해야 한다. 긴축 중이기 때문에 카페 체류 시간을 되도록 늘리려 한다. 하지만 2시에 카페를 나선다 해도 식후에 다시 카페에 와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고픈 지금 카페를 나서는 게 맞다. 저녁 약속이 있다. 점심을 너무 늦게 먹으면 저녁 만남의 즐거움이 반감된다. 적당한 시기에 점심을 먹고, 적당한 시기에 저녁을 먹어야 건강도 챙기고 입맛도 챙긴다. 





무슨 음식을 먹어야 잘 먹은 걸까.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중국식 뷔페다. 최근 방문한 이후로 계속 생각이 난다. 23불에 온갖 중국 진미를 즐길 수 있다. 다만 저녁 약속을 고려해 과식하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 한 끼 분량을 먹는 게 적당하다. 최근 SNS를 통해 알게 된 곳이 있다. 시티에 매일 나오지만 정해진 동선이 있다. 그 동선을 벗어나면 익숙지 않다. 동선과 멀지 않지만 결코 가지 않는 곳에 오래된 쇼핑센터가 있다. 그 센터 푸드코트에 오래된 아시아 식당이 있다. 태국부터 중식까지. 차 쿼이 티아오를 특히 좋아한다. 태국식 볶음 누들인데, 계란과 각종 야채, 선택한 육류와 함께 볶는다. 포크, 비프, 치킨, 프론 4종류가 일반적이다. 비프 누들을 먹는다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인간의 행복은 참 가까이 있다. 일상에서 누리는 사소한 행복,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어질 행복이 좋다. 지속가능성이 핵심이다. 오늘 먹고 맛있으면 내일 먹을 수 있고, 내일 맛있으면 모레 먹을 수도 있다. 식비 15불은 언제든 기꺼이 낼 수 있는 정도의 돈이다. 부담 없는 금액에 가까운 곳에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거부할 수 없다. 





디지털 ID도 그렇고, 점심 메뉴 선정도 그렇도 참 시답잖은 글감이다. 친구 만나 나눌 일상 대화 소재다. 매번 예술작품 보고, 삶과 철학과 인권과 사업과 투자 얘기하지 않는다. 뭐가 맛있다. 뭐가 재밌다. 뭐가 볼만하다 등의 감각의 세계에 머문다. 인간이라면 느끼는 반사적 감각을 공유한다. 맛있는 음식 입에 넣으면 즉시 기쁘다. 그 즉시 기쁨을 타인과 나누고 싶다. 물론 입맛이란 게 다르지만, 현대에 와선 수렴하는 지점이 있다. 맵고 짜고 달면 웬만하면 맛있다. 적절한 밸런스로 그 자극을 한곳에 담으면 열에 아홉은 맛있다!는 말을 뱉는다. 그러니 친구를 만나면 맛있고 볼만한 곳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가끔 거장이나 대단한 아티스트나 대단한 학자나 유명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하다. 어디에나 삶은 있고, 인간이란 종은 거기서 거기다. 이미 답은 정해졌다. 그들 또한 이런 시답잖은 주제가 대화의 대부분일 것이다. 항상 세상과 우주와 과학과 철학과 사회와 인권과 아름다움을 논하진 않는다. 단지 그 기정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뿐이다. 아 여기도 저기도 사람 사는 것 똑같구나! 하는 실감이 즐겁다. 





그러고 보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문득 든다. 내 친구들은 사업가다. 동업자들을 만나면 90%는 사업 이야기를 나눈다. 사업 미팅이 아닌 일반 커피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사업을 개선할지, 아이디어를 어떻게 디벨롭할지, 적합한 담당자는 누구인지, 요즘 인기 많은 가게는 어디인지, 대중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등등. 돈 버는 구조를 짜는 법을 논한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은 그 관심사를 주로 말하긴 한다. 





그러나 집에 오면 사는 얘기, 오늘 본 영화 얘기, 오늘 만난 사람 얘기, 뉴스 얘기, 가십 얘기 등을 한다. 사람에 따라 단순한 감각의 얘기부터 다양한 레퍼런스를 통해 필터링 한 통찰까지 답변이 다르다. 그러나 그냥 사는 얘기, 세상이 말하는 얘기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동일하다. 아는 것이 많으면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의견이 나오는 것일 뿐이다. 요컨대 장르는 똑같지만 답변의 레이어의 두께 차이일 뿐이다. 





배가 고프다. 영혼이 배고플 때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갑자기 글이 방향을 바꿨다. 형편없는 글감 선정에 대한 비판과 항변이 이어졌다. 하고 싶은 말 마음껏 하니 이것이야말로 의식의 흐름이다. 오늘 이미 일반적인 에세이 'GPT4o 소회'란 글을 썼다. 하루 한 편의 완성된 글이면 충분하다. 그 이외엔 이런저런 잡담을 해도 거리낌이 없다. 할 만큼 했다는 기준이 남보다 낮다.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며 취미를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몸의 허기로 시작해 영혼의 허기로 이어진다. 대화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다. 그곳에서도 생각 없는 떠듦이 주고 생각이 필요한 토론이 사이드다. 그 사이드 디쉬를 먹기 위해 쓰고 읽고 듣는다. 몸이든 영혼이든 허기 채우면 기쁘다. 지금 이 순간 몸의 허기가 중요 이슈다. 정도가 지나치게 배고프다. 배고픔을 의식하니 더 배고프다. 지금은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다. 소크라테스 형 죄송합니다. 나훈아 선생님 말로는 테스 형. 나혼아 선생님의 형님이시니 나에겐 형이기 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적합하다. 테스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돼지가 되겠습니다. 








의식의 흐름





많이 쓰고 싶다. 의식의 흐름을 통해 쏟아낸다. 카페인은 내 통제 아래 있다. 이것이 내가 믿어왔던 명제. 이제는 그렇지 않다. 콜드브루나 푸어 오버 커피를 마실 때 카페인에 강하게 반응한다. 카페인의 양이 다른 건지, 조제법에 따라 카페인의 종류가 달라지는지는 모른다. 궁금증이 생겨 GPT에 물었다. 카페인의 종류는 하나다. 다른 카페인은 없다. 함유량과 다른 성분과의 조합이 중요하단다. 그렇담 원인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1. 드립 커피가 내리는 속도가 느리므로 카페인 함량이 높다. 2. 기분 탓이다. 공교롭게 드립 커피를 마셨을 때만 몸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이고, 플라세보효과로 매번의 섭취에 카페인을 의식한 것이다. 아무래도 1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플라시보 효과라 하기에 카페인 작용이 너무 분명하다. 정성스럽게 내린 푸어 오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벌써 머리가 핑- 돈다. 플라시보라고 하기엔 너무 분명한 어지러움. 





역대 힙합 멜론 1위 곡 모음을 듣는다. 1위 곡의 특징이라면 멜로디컬한 사비와 중독적인 비트다. 대중성은 멜로디에서 나온다. 





토요일이다. 내게는 도로에 사람 많고, 추가요금 내는 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백수로 지내며 주말과 평일의 구분이 없다. 매일 노는데 토요일이 무슨 소용인가. 11불짜리 르완다 푸어 오버를 시켰다. 서차지로 1불이 추가됐다. 12불을 냈다. 토요일은 1불 더 내는 날이다. 가게는 주말에 잘 된다. 내가 일하는 게 아니므로 내 일상 패턴과 다를 건 없다. 그래도 삼십몇 년의 경험이 축적된 탓인지, 여전히 토요일이란 단어는 묘한 설렘을 준다. 사람들의 여유와 행복엔 전염성이 강하다. 누가 행복하고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하다.





블로그 이웃 중 하나가 평균적 삶에 대해 말했다. 읽으면서 나는 평균의 삶인가 물었다. 아니다. 개편하다. 정도가 지나치게 여유롭다. 여유의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1. 여가 시간. 2. 소비보다 큰 소득. 내가 돈을 엄~~~~청 버는 것도 아니고, 쌓아둔 부가 엄~~~~청 많은 것도 아니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연식 14년 된 낡은 도요타 캠리를 탄다. 특별히 사치를 부리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부리는 사치는 11불짜리 르완다 푸어 오버 커피와 종종 마시는 위스키 구매 정도다. 최근에 한 최고의 사치는 유니클로 캐시미어 터틀넥 스웨터다. 200불짜리 제품이 80불로 할인했다. 이것저것 다 해도 돈이 남는다. 보드라운 캐시미어 섬유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를 실감한다. 





전날 귀한 선물을 받았다. 어제저녁으로 친구네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 한국 일본 퓨전 레스토랑이다. 친구가 내게 입생로랑 가죽 재킷을 선물로 준단다. 받으러 갈 겸 식사도 할 겸 너사와와 함께 향했다. 스키야키 전골과 치즈불닭에 기린 생맥주를 곁들였다. 친구는 서비스로 모둠 회와 일본식 모찌아이스 두 개를 줬다. 배보다 배꼽이 큰 식사다. 식사가 끝나고 부드러운 양가죽이 인상적인 가죽 재킷을 들고 가게를 떠났다. 친구 말로는 입생로랑 제품인데, 공장에서 택 붙이기 전에 하나 빼준 거란다. 집에서 찾아보니 입생로랑 제품은 아니고 패턴을 본뜬 보세 옷이다. 보세라도 가죽 퀄리티와 공임비만으로 수십만 원은 한다. 나와 세 번 정도 본 사이다. 지난번 만남에서 내게 선뜻 옷을 주겠다 말했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잘 안 입는 옷을 선물로 주고 싶단다. 나는 또 염치 없이 주면 받겠다 답했다. 마침 나와 사이즈가 딱 맞았다. 양가죽은 가볍고 부드럽다.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실실거리며 귀가했다. 





친구에게 가기 전에 생로랑 향수를 선물로 주기로 정했다. 받기만 하면 기버가 아니다. 더 많이, 대가 없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급하게 나오느라 키통 옆에 향수를 두고 나왔다. 로레알 취직한 동생이 100불대의 향수와 크림을 줬다. 크림은 너사와에게, 향수는 누가 됐든 선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작년 생일 선물로 받은 샤넬 블루 향수가 아직 4/5나 남았다. 이거 다 쓰려면 2년은 필요하다. 마침 내게 옷을 선물 준다는 친구에게 뭐를 주고 싶다. 그에게 주기로 정했다. 결국 못 줬다. 부채감이 크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른다. 





의식의 흐름은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일기와 에세이. 사실의 나열,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할 때는 일기가 된다. 평소 가졌던 문제의식이나 고민을 풀어낼 땐 에세이. 이번엔 일기다. 블로그에 순도 100프로의 일기를 쓸 땐 불편하다. TMI여서.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설명한다. 자기표현에 미친사람이다. 관심종자다. 블로그 글을 읽는 사람이 20명 있으면 19명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의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들에게 시간낭비를 하게 만들어 송구스럽다. 되도록 일기를 안 쓰려 하지만, 의식의 흐름은 뭐가 됐든 쓰는 게 컨셉이므로 생각할 여지가 없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쓴다. 결과는 하늘에 있다. 하느님 믿지도 않는데 하늘이라니. 후후 그냥 세상의 질서로서 신을 떠올렸다. 코스모스 뭐 그런 거. 그러니까 어떤 존재라기 보다 질서다. 




질문에서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그럼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 생각을 이끄는 질문이다. 생각을 이끌려면 추상적이어야 한다. 열린 질문이어야 한다. 그럼 그런 질문을 GPT를 통해 찾아보겠다. 아래는 GPT가 뽑아준 생각을 깊게 하고 개인적 철학을 쌓을 수 있는 질문 10선이다. 다 대답하겠다. 



1. 행복이란 무엇이며,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만족이다. 만족에서 행복이 나온다. 만족은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 대상보다 나을 때 만족한다. 그렇기에 비교 대상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준거집단이라 말한다. 내가 가장 자주 어울리고, 속한다 느끼는 집단을 뜻한다. 전설의 투자자 찰리멍거는 행복을 위한 아주 쉽고 분명한 솔루션을 줬다. 내가 최고가 될 수 있는 곳에 살아라. 평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 살면 행복해진다. 정리하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나보다 못난 사람과의 교제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없는 주장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보다 못난 준거집단이다. 사람의 우열을 어떻게 나누냐는 반론이 따른다.명쾌한 글쓰기를 위한 주장으로 남기고 현실에선 입을 닫는다. 




2.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멋이다. 그간 여러 번 물었는데, 태어난데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내가 직접 목적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고른 목적이 '멋'이다. 이왕 태어나진 것이라면 멋있게 살아야 한다. 멋은 주관적이다. 나의 멋은 타인에 다정하고, 겸손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유연하고, 배우는 일이다. 행복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나의 안락함과 정의가 충돌할 때 정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멋이다. 나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멋진 사람이다. 행복이 목적이 되면 동물성과 이기심을 인정하는 셈이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모호한 지점에 있다. 양심을 지켰단 생각은 오래 지속되는 만족이며 행복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멋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복이라 할 수도 있다. 




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다정함이다. 다양한 언어로 고쳐 쓸 수 있다. 기독교에선 사랑이다. 풀어쓰면, 남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다. 혼자선 존재할 수 없다. 남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데 필수불가결한 타인이란 존재를 아끼고 위해야 한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져야 사회가 돌아간다. 모두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야 한다. 나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모두가 대접받는 사회여야 나도 대접받을 수 있다. 



4. 사랑이란 정확히 무엇이며, 진정한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랑은 몹시 아끼는 마음이다. 모든 진정성을 구분하는 행동은 촌스럽다. 가짜 사랑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짜를 전제로 해야만 가치 있는 것이라면 멋지지 않다. 누군가를 몹시 아끼면 사랑이다. 내 가족과 나 자신과 사회를 몹시 아끼면 사랑이다. 이성적 사랑은 성애적 행위가 더해진 아낌이다. 보통 부부의 사랑은 이성적 사랑에서 일반적 사랑으로 발전한다. 아낌은 흔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니 기준이 되는 정도가 필요하다. 그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저마다 사랑을 입에 올리는 빈도도 다르다. 



5. 고통과 어려움은 개인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통은 필요를 낳고 필요가 성장을 부른다. 성장할 필요가 생겨야 성장한다. 지금 상황에 만족하면 성장하지 않는다. 버틸만하고, 어렵지 않다. 안주한다. 성장하지 않는다. 고통스럽다. 만족스럽지 않다. 배운다. 성장한다. 그렇기에 고통은 성장에 중요하다. 




6.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이며,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빈곤이다. 일상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버는 것보다 덜 쓰고자 한다.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베풀려 한다. 투자와 사업에 관심을 갖고 배우게 만든다. 그것이 본업이 된다. 결국 일상을 재단한다. 





7~10은 시간 관계상 못 썼습니다. 









굴레를 벗어나




듀스 형님들의 곡 중 굴레를 벗어나란 곡이 있다. 한국 힙합의 선구자이며, 대중화에 힘쓴 1세대 형님들이다. 물론 지금 같은 라임을 쓰진 않는다. 다음절 라임은 그 이후 고안된 것이다. 무라임 혹은 1음절 라임에 단조로운 플로우지만, 힙합이란 장르와 랩을 대중에 전파시켰단 사실만으로 후대에 길이 남는다. 여기서 듀스 형님들의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굴레에 갇혀 사는 삶을 논하기 위해 제목을 가져왔다. 그러나 현도 형님이 만들고 성재 형님이 부른 '말하자면'이 나의 최애 곡임을 언급하고는 싶다. 제목을 지을 때 대중예술의 이름을 본뜨는 것은 클리쉐다. 이것 또한 굴레에 속한다. 





굴레에 속할 때의 장단이 분명하다. 장점은 우선 편하다. 나는 굴레에 속한다. 문득 오늘도 같은 카페로 걸음을 옮기는 자신을 인지했다. 조건반사적으로 응당해야 할 일을 한다. 무릎 사이에 작은 고무봉을 툭 치면 발이 툭 하고 나오는 것처럼. 이거야말로 수동적인 삶 아닌가. 왜?의 레이어를 쌓자고 굳이 굳이 말하는 사람이 행하기에 부적합한 일상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반론한다. 아니다. 왜?의 진정한 쓸모는 새로운 환경에 많은 것을 얻는 기술이 아닌, 일상에서 새로움을 찾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일상에 속하면서도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또한 가게에 일이 생겼을 때 언제고 출동하기 위해선 도보 2분 거리에 위치한 이 카페가 제격이다. 다른 카페에 가면 문제 상황에 즉시 대처하기 어렵다. 2분 거리에 다른 카페도 있지만 여기가 커피 맛도, 분위기도 좋다. 구비된 책상도 랩톱 사용에 적합한 사이즈다. 굳이 불편을 감수하고, 맛없는 커피에 돈 쓰러 갈 이유가 없다. 분명한 이유가 단골 카페로 향하는 걸음을 지지한다. 





굴레에 속해서 나쁜 점은 분명하다.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업에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사람에서 투자가 인프라가 기술이 나온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것이 사업자가 해야 할 가장 큰일이다. 어제 본 사람 오늘 또 보고, 10년 전 본 사람 아직도 본다. 인간관계는 큰 변화가 없고 매번 반복이다. 항변하자면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시간은 한정적이다. 결국 만났을 때 편한 사람에게 연락하게 된다. 그 빈도가 줄면서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원래 친하던 사람이다. 굴레를 벗어나려 하면 이런저런 합리화가 찾는다. "야, 왜 굳이 험한 길을 가. 좀 쉽게 쉽게 가자." 금세 수긍한다. 그치 쉬운 길 놔두고 험한 길을 가려고 하다니 어리석었네. 





굴레를 벗어나는 시즌이 있다. 모든 일의 처음은 열정이 넘친다. 열정이 굴레를 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어떤 열정도 영속적이지 않다. 유효기간이 있다. 원동력은 고갈된다. 다시 편한 곳, 익숙한 곳으로 향한다. 





굴레를 벗어나는데 외부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한다. 친구/동업자들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024년의 목표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자다. 내가 구상한 신규 사업을 통해 그런 목표를 이루고자 했다.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된 사업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사람을 만난다. 아무튼 결과적으론 원하는 바를 얻는다. 그래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선 누구라도 그렇게 한다. 다만 나의 선택의 범위에선 결국 익숙한 선택지를 고른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나약한 존재다. 사업엔 행동력이 필수인데 게으른 영혼은 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누군가 등 떠밀어야 그제야 자리를 일어난다. '으쌰!'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좀 해볼까? 





굴레에 속해 '개편하고 행복해'라고 말하는 한편, '너 그래선 안돼!' 따끔하게 혼낸다. 하지만 나는 자신에 약한 사람이다. '그래선 안 되는데 정 귀찮으면 어제 했던 일 또 해도 돼. 그래도 해야만 하면 하잖아. 그거 감안할게. 그래도 잘하고 있어.' 정신승리 후에 편한 마음으로 르완다 푸어 오버 커피를 마신다. 스멜 소 굿 테이스트 소 굿. 오늘도 굴레에서 꿀 빤다. 









디지털 권력




온라인 세상에 새로운 권력이 생긴다. 외모다. 실제 외모와 다소 차이가 있어도 이해의 영역에 속한다. 실제로 봤을 때 알아볼 수 있는 정도면 오케이. 외모가 돈이 되고, 외모가 모두에게 칭송받는 요소로 자리했다. 대SNS 시대엔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 전시된 내가 예쁘고 잘생기면 거기서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외모가 유명세로, 유명세가 수익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권력자가 되기 위해선 크게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밑바탕. 둘째, 보정 기술. 셋째, 미감 넷째, 마케팅. 모든 요소를 충족하면 인플루언서가 된다. 기본적인 외모도 중요하다. 요리사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재료가 별로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재료의 다소 아쉬운 면을 보정이 커버해 준다. 온라인에선 전시된 결과물이 중요하다. 과정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온라인 전용 결과물을 톤 앤 매너를 지켜 업로드한다. 그렇게 체계적으로 올린 SNS를 홍보하며 마케팅한다. 홍보는 해시태그, 유명인과 함께 올린 사진, 재밌는 틱톡, 스토리 등이다. 외모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맥락(그러니까 미감)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팔로워가 생기면 권력이 생긴다. 





타인의 멋짐은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나와 비슷한 나이 대의 누군가는 화려한 삶을 산다. 연예인처럼 아름답다. 댓글로 사람들이 추앙한다. 예쁨은 추앙의 절대적 근거다. 또한 팔로워 수는 그래도 된다는 허락과 같다. 다들 칭송하니 나도 칭송해야지. 전혀 이상하지 않아. 스크린 타임이 길어진다. 미국 10대 청소년의 여가 시간 사용처 리서치에 따르면, 90퍼센트가 스크린타임이라고 한다. 틱톡을 보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왓츠앱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사실상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전복한 상태다. 이것이 메타버스가 아닌가! 높아지는 스크린 타임과 중요도도 높아진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 동년배 친구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일상은 나의 일상을 초라하고 볼품없게 만든다. 





효율적으로 살고자 한다. 온라인의 위력을 실감한다. 온라인에 전시되는 내 모습이 일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온라인을 통해 형성한 네트워크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유력인사에 닿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설사 전시된 모습이 실물과 다르다 해도 상관없다. 모두가 전시를 위해 약간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안다. 실물을 구별할 수 있는 정도라면 충분하다. 어떤 거리낌 없이 스노우 앱을 연다. 셀피를 찍으려 전면 카메라를 얼굴에 향한다. 잡티 없고, 갸름하고 이목구비 뚜렷한 업그레이드 버전의 나를 마주한다. '스노우에 진정한 내가 있다'라는 농담도 더 이상 재미없다. 그것이 온라인 세상의 사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상 후에 유튜브로 곽튜브와 미나미의 한국 여행기 마지막 편을 시청했다. 유튜브를 보며 덤벨로 근력 운동을 병행했다. 어깨와 등 운동을 했다. 펌핑한 몸을 보는 것은 운동 의지를 고취시킨다.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서재의 전신 거울로 자신을 본다. 오늘따라 몸이 좋아 보인다. 2년 동안 거의 매일 운동을 해왔다. 식단 관리가 철저하지 않은 탓에 뱃살을 없어지지 않는다. 빈도만 높을 뿐 매우 낮은 강도로 운동을 해온 탓에 투하 시간 대비 만족스러운 몸은 아니다. 어떻게 각도를 틀고 숨을 내쉬고 보니 뱃살도 크게 티 나지 않는다. 유튜브를 멈추고 거울을 본다. 포즈를 취한다. 조명이 잘 받는 위치로 움직이고 얼굴 각도를 틀어 비율을 좋아 보이게 만든다. 현실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 사진에 담긴다. 여기서 스노우에 접속한다. 얼굴을 줄이고 어깨 사이즈를 키운다. 몸의 비율이 좋아지고 근육이 커 보인다. 결과물을 보니 사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운동 경력이 민망한 배 나온 30대가 중력 꽤나 치는 헬스인으로 거듭났다. SNS에 이것이 나의 몸임을 천명했다. 업로드 즉시 오프라인의 거짓이 온라인의 사실이 된다. 전시하면 그만이다. 현실에서 상탈한 몸 보여줄 일이 없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기억에 더 나은 나로 기억에 남는다. 





전날 자주 가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머물고 있는 카페 직원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친구로 추가했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인스타그램 친구 늘리기다. 이런 식으로도 얻은 얇은 네트워크가 언젠가 역할을 할지 모른다. 단골 카페 직원분과는 반년 가까이 인사 나누며 나름의 친밀감이 쌓였다. 유일한 한국인이어서 한국말로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사소한 즐거움이었다. 그가 3주 뒤에 호주를 떠난다고 해서 연락처를 물었다. 가족이 사업 중이고, 나중에 호주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 말했다. 언젠가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어서 잘 됐다 싶었다. 카페를 떠나 직원의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쁘띠 인플루언서다. 그러니까  위에 언급한 네 가지 요소를 어느 정도 충족한 쁘띠 디지털 권력자다. 정돈된 피드와 높은 팔로워 수, 멋지게 연출된 사진을 본다. 카페에서 근로하며 열심히 사는 젊은 워홀러가 갑자기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 문법에 적응했기 때문에 현실과의 다소의 괴리는 무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 걸음 뒤로 떨어져 감정을 돌아본다. 새삼 온라인 시대 권력이 철저히 작용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소비자다. 






적극적으로 전시용 사진을 올릴 생각이다. 자발적 복종을 하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다. 이 시대에 사는 많은 이들이 새로운 권력에 복종한다. 나는 철학이고 자시고, 정의고 건강이고 자시고 간에 실리를 취하고 싶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망하고 각도와 조명, 앱이 새롭게 만들어준 뉴타입을 나로서 온라인 세계에 천명한다. 이젠 스노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부캐인 현실의 내가 있다. 









스크린 타임과 우울




한 주장이 행동경제학과 사회학 서적, 경영 서적, Ted talk 등에 종종 등장한다. '스크린 타임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장르에 따라 지향은 다르지만 문제 진단은 똑같다. 성공하기 위해, 평등하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발전하기 위해, 우리는 스크린 타임을 줄여야 한다. 





스크린 타임과 우울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됐다. 과학적 검증은 가설 설정, 실험, 데이터 분석, 결론 도출의 구조를 따른다. 관련은 분명한데, 근거는 분명치 않다. 검증 후에 저마다 근거를 추가한다. 박탈감, 주의력 감소, 높아진 쾌락 역치, 생산적 시간 감소 등이 주로 등장하는 근거다. 사용하는 앱이나 나이대, 문화권에 따라 작용하는 근거가 다르리라. 핵심은 전자기기를 많이 쓰면 불행하단 사실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애. 카르페 디엠. 지금을 잡아라. 모두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을 온전히 감각하라 명한다. 이 사회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처방이 아닌가 한다. 정보의 홍수, 자극의 홍수의 시대다. 손바닥 크기의 액정에 도파민이 폭발한다. 하이브의 집안싸움, 동방신기의 몰락, 권은비의 가슴과 워터밤, 재범 오빠의 찌찌파티 등. 이목을 단숨에 끌어 공론의 장을 만든다. 시원하게 욕하고 누구를 끌어내리며 압도적 쾌락을 느낀다. 정보도 승자독식이다. 자극도 높은 정보만이 살아남는다. 클릭율 높일 수 있는 자극적 제목을 붙인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 지금을 볼 수 없다. 니체가 무덤에서 외친다. 운명을 사랑해! 인생의 단 부분 말고 쓰고 시고 떫은 맛도 보란 말이야! 





스크린 타임이 긴 날은 하루가 덜 만족스럽다. 만족도의 기준은 '오늘을 충실히 살았는가?'란 질문이다. 얼마나 건설적인 일을 했고, 배움을 얻었고, 남을 도왔고, 경제적 이득을 거뒀는가? 음... 글쎄. 없네. 당당히 대답할 수 없다. 오늘을 낭비했다. 낭비의 주요 원인은 스크린이다. SNS와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 등이 너무 재밌다. 너무 재밌어서 상대적으로 내 주변이 따분하다. 자극의 역치가 올라간다. 자고 먹고 일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 일정 수준의 도파민 없이는 못 사는 지경이 됐다. 






물론 모든 스크린 타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전자기기로 하는 활동 중에도 생산적인 활동이 있다. 좋은 스크린타임은 독서, 글쓰기, 공부, 사업계획서 작성, 업무 등이다. 나쁜 스크린 타임은 이런 작업을 열정적으로 방해한다. 랩탑을 통해 하는데, 터치패드에 세 손가락을 갖다대면 유튜브와 카카오톡이 등장한다. 새탭에 'i'를 치면 인스타그램이 뜬다. 자극과 아주 가까이 위치한다. 1초만에 도파민을 주입한다. 도파민은 지금하는 일에서 흥미를 뺏는다. 집중력을 뺏는다. 낭비를 불러온다. 만족도를 떨어트린다. 





아침에 창고에서 짐 정리를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 일을 보면서 테드톡을 시청했다. 전날 보던 테드톡에서 관련 영상으로 등재된 영상 중 하나를 클릭했다. 제목도 주제도 모르고 그냥 시청했다. 테드 비즈니스 위주로 시청한 덕에 관련 영상 또한 자기계발 영상이었다. 영상의 주제는 '한정적 삶은 필수적인 활동(먹고 자고 씻는 등)을 제외하면 더더욱 한정적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라.' 여기서 스크린타임이 몹시 한정적인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자기개발을 위해선 그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충만한 삶을 위해선 삶의 유한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아껴서 써야 한다.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며 테드톡을 시청했다. 옆을 지나가는 직원분께 "스크린 타임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대요"라고 말했다. 일주일 360시간 일하는 그는 "저랑은 관계 없는 얘기에요."라고 대답했다. 일주일 내내 노는 나는 멋쩍은 웃음을 날렸다. 하하하하.. 그렇군요. 시간이 썩어나니 스크린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 무렵 되뇐다. 그래도 아깝긴 하네. 현실에 충실하지 못 한다. 자극을 찾는다.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자극 구경하다 시간이 지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선 사소한 습관에 인생 전반을 바꿀 힘이 있다고 말한다. 사소한 습관을 길들여야 인생을 길들일 수 있다. 나는 인생을 길들였나? 아니다. 그때그때 자극에 휘둘린다. 당장의 재미를 보장하는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린다. 정적인 삶에 충격을 줄 사건을 찾는다. 만날 사람을 물색하고, 잔에 위스키를 채운다. 이대론 안돼. 아주 작은 노력을 했다. 이 글을 쓰며 카카오톡을 체크하지 않았다. 노래를 재생하지 않았다. 온전히 글만 썼다.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주고 싶다. 주로 나오는 솔루션은 전자기기를 물리적으로 먼 곳에 두라. 명상하라. 독서하라 등이 있다. 다 해봤다. 다시 전자기기로 돌아온다. 자극의 중독성은 대단하다. 내가 스크린 타임 줄이기에 실패한 마당에 교훈 주는 게 의미가 없다. 글의 완결성을 위한 위선이다. 덧없는 외침이다. 단지 자극에 압도적으로 패배한 자신을 그린다. 반면교사라도 되도록. 












문장의 힘




좋은 문장을 읽는다. 기분이 좋다. 이 두 문장은 기술적으로 좋은 문장이 아니다. 첫째, '좋은'이란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직접적 표현을 썼기 때문. 둘째, 기분이 좋다는 표현은 독자의 해석의 즐거움을 뺏기 때문. 글은 말하지 않고 보여줘야 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하고 추측하게 만들어야 한다. 해석의 힘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글이 좋다. 이런 단점을 인지하고 쓴다. 목적이 맞으면 기술적으로 안 좋은 글도 좋은 글이다. 핵심은 '그럼에도'다. 기술적으로 좋지 않은 글임에도 쓴다. 그럼 '좋은 문장'과 '기분이 좋다'는 말에 힘이 실린다. 단점을 감안하고도 쓴다고? 도대체 얼마나 문장이 좋고 기분이 좋길래? 의도적 실패는 이유를 찾게 만든다.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도입부를 차용한다. 좋은 글은 저마다의 이유로 좋다. 





좋은 문장은 나를 울리는 문장이다. 그러니까 주관의 영역에 있다. 기술적으로 떨어져도, 글쓰기 작법의 원칙에 맞지 않더라도, 문장을 울림을 줄 수 있다. 문맥과 표현의 공명이 필요하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표현도 파급력을 지닌다. 좋은 예시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녀의 대통령 커리어는 차치하더라도 공식 석상에서 한 발언의 위력을 폄하할 순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그녀가 한 말은, "노무현 참 나쁜 대통령이네요." 정치계는 어렵고 두루뭉술한 발언의 주된 출처다. 상대 진영의 대장이자 정적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그녀는 몹시 짧고, 쉬운 표현을 했다. 참 나쁜 대통령. 이것이 맥락과 공명해 나라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인간의 평가가 어떻든, 정적을 공격하는 훌륭한 표현이었다. 요컨대 단순하고 기술적으로 훌륭하지 않아도 좋은 문장이 될 수 있다. 





좋은 문장엔 다양한 조건이 있다. 첫째, 압축이다. 복잡한 개념이나 다양한 설명을 짧고 명쾌하게 압축한 문장을 좋아한다. 핵심을 축약한 문장이다. 왜냐하면 압축하기 위해선 안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언어를 잘 다룰줄 알아야 하고, 핵심을 선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압축 문장은 안건과 언어에 대한 이해, 핵심을 선별하는 능력의 결과물이다. 이를테면,  '문화는 사람이 공유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불평등은 문명의 본질적 부산물이다.'등. 테트리스에서 일자형 막대가 5줄을 한 번에 뚫는 것과 같은 쾌감을 맛본다. 





둘째는 수려함이다. 언어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말 자체가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 이를테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모든 사람은 비밀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등. 문장 자체가 목적이 된다. 





셋째는 정의다. 나의 욕망과 정의 사이의 싸움에서 욕망을 포기한 사람의 말은 울림이 크다. 볼테르의 전기 작가가 재구성한 이 구절이 대표적이다. "내가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다.", 링컨의 말도 마찬가지다. "I destroy my enemies when I make them my friends." 적을 친구로 만들어 적을 제거한다. 그러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여 대립한 사람을 동료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좋은 문장을 듣고, 음미하고, 삶에 적용하는 과정은 고상한 활동이다. 사탕 한 알 까서 입에 넣고 천천히 녹여 먹는 것처럼, 문장의 단맛을 입 앗에서 굴린다. 살 안 찌고 돈 안 드는 건강한 군것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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