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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 Oct 27. 2023

불면의 악순환

강박증, 우울증, 식이장애까지

(전 편에 이어서)


나는 로빈을 용서할 수 있을까?


긴 긴 악연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이해하지 못한,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로빈의 불면증을 지금 내가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십 수년째 잠을 못 자고 있으니 언뜻 그녀와의 연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구역질이 난다. 그녀가 냉소와 함께 뱉었던 마지막 인사--Ok. so good luck.--로 내 인생에서 로빈을 아예 도려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어린 마음에 가진 지나친 낙관이었다. 눈앞의 모습은 사라질지언정 기억 속 잔상은 맹렬히 살아있다. 지친 표정, 천천히 움직이던 실루엣, 허스키하면서도 강렬한 목소리 모두 불로 지진 것 마냥 각인되었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던 로빈의 밤들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내 불면증에 트리거가 된 계기뿐만 아닌 현재 모든 불안의 근원을 로빈이라 결론지어 놨건만, 그녀의 지난한 밤을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젯밤 나의 모습과 자꾸만 동일시하게 되고 그녀를 마음 놓고 탓하기 애매하다. 사실 아주, 아주 그냥 통째로 원망하며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저주를 들이붓고 싶었는데. 어렵다. 이게 영 찝찝하다.


잠 때문에 괴로워질수록 당시 그녀에 대한 이해를 강요받는 느낌마저 든다. 나처럼 로빈도 불안에 취약하고 또 더없이 나약한 인간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니 용서는 힘들더라도 이해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하늘이 말하는 것만 같다. 심지어 어느 날은 문득 내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불면증을 겪게 됐나 하는 생각까지 가닿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나는 애초에 그녀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수면의 부채에 한껏 예민해질지언정 나보다 약한 상대를 학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불면증에 온 신경이 쇠약해져 잔뜩 곤두선 날에도 나는 그녀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경험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화살은 타자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하곤 했으니까. 나는 그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있을까.

그래도 더딜지언정 멈추지 않고 가긴 가더라.


한국에 돌아오자 꿈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가족과 친구가 반기는, 너무나 익숙하고 안온한 곳에 오니 온 마음이 녹아내렸다. 하루하루 즐거움에 벅찼고, 텍사스에서의 일은 모두 잊은 채 매일 큼지막하게 웃었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억지로 있어야 하는 곳도, 괜스레 두려울 일도 없었다. 의기소침한 자세로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바쁘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보호받았고 모든 면에서 안전해졌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하루가 끝나고 눈을 감으면, 야속하게도 꿈은 나를 다시 텍사스로 데려갔다. 귀국 후 약 한 달 동안 매일 밤 꿈에 로빈이 나타났다.


그리고 텍사스에서의 식습관이 한국에서도 간간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을 굶어야 했기에 점심식사를 늘 몰아먹었던 나는 그 버릇을 한국에서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꽤 긴 시간 동안의 공복을 내 몸이 버텼다는 왜곡된 기억은 식이장애까지 불러왔다. 체중증가가 신경 쓰일 때면 쉽게 굶곤 했으며, 이에 따라 폭식이 드문드문 반복됐다.


이 즈음 내겐 극단적인 강박증세와 더불어 옅은 우울증이 시작됐는데, 대입준비로 공부가 급했기에 나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 또래 모두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강박증, 식이장애, 우울증은 악화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수면의 양과 질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오자 정신과를 찾게 됐다. 우울증, 식이장애, 불면증의 삼각형은 끊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고, 병원에 갈 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어떤 증상이 선행됐는지 가뭇하게나마 되짚어야 했다.



모든 완벽해 보이는 것들에도 뜻밖의 비밀과 아픔이 있고, 이를 발견하기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이미 타이밍은 지났고 모든 게 망가져 버린 때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멀쩡해 보였던 모든 것들을 모조리 분해한 다음 하나하나 맞춰보며 균열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영화 <데몰리션>을 보고 난 뒤 적었던 글이다. 영화 속 제이크 질렌할로 분한 나는 몇 주에 걸쳐 나의 불면의 역사를 모조리 분해해 봤다. 특히 로빈과의 일화를 적는 과정은 애써 회피해 온 만큼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번쯤은 이를 마주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과거 일들로부터 2차 피해를 받고 싶지 않았다. 깊숙한 곳에 눌러뒀던 아픈 기억들은 의식적으로 무시하려 하면 할수록 무의식의 저편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게 애써 덮고 있던 나의 과거를 전부 끄집어내고, 또 헤집어 놨으니 다음 차례로 가야 했다. 정리하고 나아가야 할 타이밍이다. 부러 떠올린 이 녹슨 과거들을 어떤 식으로 재저장해야 할까? 수많은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았고, 서적과 강의를 찾아봤다. 어감에 미세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론은 하나로 통일됐다. 나는 불안의 시초가 된 로빈을 용서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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