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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Jan 01. 2024

산책 정도로 생각하자

[에.이.쓰 1] 에세이 쓰기는 쉽다 

새해를 맞아 새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결정한 건 ‘쓰기’에 대한 글이었다. 첫 문단을 마치기 전 내 안의 다른 자아가 일갈한다. ‘너가 무슨 그런 글을 쓰냐? 글 그렇게 잘 써? 너부터 글 좀 쓰시지?’ 이거 원, 정초부터 욕을 먹다니(그것도 나한테). 그래도 쓰련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쓰려 하면 유튜브부터 쳐다보는 나를 위해.     


사람들은 글을 왜 안 쓸까(나 포함).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없잖아요.” 충분히 이해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빡세게 살아가는 나와 너. 하루에 10분이라도 온전히 쉰다면 감지덕지인데 고상하게 글을 쓰라니...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용기 내어 조언을 건넨다. “한번 써보지 않을래요?”     


가까스로 마음을 굳게 먹고 노트북 앞에 다가섰지만, 다시금 강력한 질문이 다가온다. “뭐를 써야 돼요? 쓰는 건 넘 어려워요.” 그렇다. 글쓰기는 어렵다. 초등 5학년 울 아이도 항상 말한다. “일기 쓰는 게 제일 싫어!” 베스트셀러를 밥 먹듯이 낸 일류 작가들조차 이렇게 말한다. “매번 글쓰기는 어려워요.” 이런, 이 생에서 글쓰기란 정말 소원한 일일까. 쓰기를 우리의 계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때, 두 번째 조언을 조심스레 건넨다. 


“그렇다면 에세이 써보지 않을래요?”     

에세이? 말이나 방구야? 동어반복 아닌가. 조삼모사도 아니고. 볼멘소리가 더 퉁명스러워졌다. 자, 일단 분노는 내려놓고, 내 말을 들어보자. “글의 여러 갈래 중 에세이를 권유한 건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에세이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수필의 하나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을 말한다'(나무위키 설명). 느낌이 오는가. 다른 글보다 에세이가 (그나마) 쉬울 수 있는 건 바로 ‘나’에 대한 글이기 때문이다. 나의 느낌이나 생각을 나보다 잘 알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래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보인다. ‘다른 글보다 쉽다지만 난 (한 번도) 안 써 봤단 말이에요.’      


음. 확실히 동기 부여가 쉽지 않다. 그럼 이건 어떨까. 에세이를 쉬운 것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 한번 산책으로 생각해 보자. 갑자기 웬 산책? 새해 첫날, 건강을 생각해서 마음 (크게) 먹고 운동을 결단한 이가 많을 것이다. 골똘히 어떤 운동을 해볼까 고민한다.      


자. 마라톤은 어떨까. 토부터 나온다. 10분 거리도 항상 차를 타고 다니는데 무슨 몇십 킬로를 뛴단 말인가. 크록스를 신을 수도 없다. 최소 나이키 조깅화도 사야 하고, 땀을 모조리 흡수할 좋은 운동복도 사야 한다. 패스. 수영은 어떨까. ‘원래 물이 무서워서요. 수영할 자신이 없어요. 수영복 핏도 잘 안 맞아요.’ 시원하게 패스. 그렇다면 누구나 다 하는 헬스? 근육 하나 없는 포동포동한 팔과 다리에 쇠질이라니. 파스 값이 더 나오지 않을까. 이번에도 패스.     


그러면 마지막 선택지. ‘산책은 어떨까요?’ 산책? 그게 운동이 될까. 음. 좋다. 산책은 부담이 덜 된다. 크록스에 츄리닝도 괜찮다. 뻗친 머리에 모자 하나만 쓰면 오케이. ‘저녁 먹고 집 근처 산책 한 시간만 해 볼께요.’     

에세이를 산책으로 치환해보자. 에세이는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그게 제일 큰 장점이다. 글감을 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내 얘기가 다 글감이니). 오타 나도 괜찮고, 문법에 맞지 않아도 된다(일단 나만 보니까). 글 쓰는 스킬도 별로 필요 없다(백일장에 응모하는 것 아닌 이상). 몇 장이 넘어가도 되고, 두세 문단 정도로 짧아도 상관 없다(누가 감히 재단하겠는가).     


자. 나와 함께 에세이 한 번 써보자. 잘 쓰지 않아도 된다.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밥 먹고 잠깐 거니는 산책 정도로 생각하자. 산책은 해 볼 만하지 않나. 써 보는 거로 알고 글을 마친다. 


[에세이 이렇게 쓰자(에이쓰)]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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