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쓰 2] 일기와 에세이의 다른 점은
“일기 쓰기 진~~짜 싫어!!”
일요일 저녁,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 매주 한 편씩 쓰는 숙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이젠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아들의 절박한 외침이다. 간신히 달래고 달래 아들은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입이 댓 발 나온 상태로.
오늘은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에 대해 나누고 싶다. 혹자는 말한다. “일기랑 에세이랑 같은 거 아닌가요?” 사실 명확한 답은 없다. 챗GPT에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짧은 내 생각을 적겠다.
누구나 알다시피 일기(日記)는 하루 동안 내가 겪은 일을 쓰는 것이다. 어렸을 때 썼던 일기를 떠올려 보자(얼굴 빨개지더라도). ‘아침 몇 시에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학원 가서 공부하다가 집에 와서 좀 놀다가 저녁 먹고 숙제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기의 8할을 차지했던 내용이겠다.
그때 우린 왜 그렇게 일기가 쓰기 싫었을까. 숙제였기에 억지로 써야 하는 의무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쓰려니 쓸 것도 없고, 그러니까 신나게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에세이는 어떨까. 에세이 역시 내가 겪은 일과 느낌을 적는다. 그건 일기와 매한가지이다. 그렇다면 일기와 에세이는 무엇이 다를까. “일기는 한자고, 에세이는 영어예요.” 기발하긴 하지만... 머리를 좀 더 굴려 볼까.
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에세이는 일상을 재구성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에세이는 나의 반복되는 일상 중, 특별하고 중요한 사건을 꼭 집어내어 쓰는 것이다.
십여 년 만에 반가운 지인을 만났던 일, 처음으로 터키 음식을 먹었던 일, 수십 번 이력서를 낸 끝에 입사했던 일, 마음에 드는 이성과 데이트한 날, 처음 해외여행 갔던 날, 책상 서랍에서 나도 몰랐던 비상금을 발견했을 때...
이런 일들을 쭉 쓰는 것이다. 나의 특별한 일들을 생각하며, 그때 그 경험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고,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를 솔직히 쓰면 된다. 참 쉽지 않나.
“잠깐만요. 난 그렇게 특별한 일이 없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에세이를 쓰나요?”
날카로운 질문이다. 훗. 하지만 예상했다. 여기에서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에세이를 쓰기 전엔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쓰기 전에 나의 일상에 현미경을 대보는 것이다. 갑자기 웬 현미경? 특별해 보일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해 보라는 것이다.
음. 쉽진 않다. “그것 봐. 글 쓰는 건 역시 어렵잖아!”라고 말한다면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그래도 써 보라는 뻔한 말밖엔 못 하겠다. 이런 식으로(현미경 사용)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발견해 한두 편 써 보길. “제법 쓸 만한데”라며 다음 글을 구상하는 나를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이 생길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한 편 더..)
그렇다면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치겠... 잠깐. 노파심에 한마디. 당신의 삶보다 다른 이의 삶이 더 찬란하게 빛난다고 생각하지 말 것.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남의 이야기가 더 특별해 보일 수 있다. 내 경험과 일상은 왜 이리 비루한지...
혹시 몰라 내 얘기를 덧붙인다. 7년간 문방구 아저씨로 살았다. 쉽지 않았다. 처음 해 보는 서비스업은 아동복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각종 진상에 시달렸고, 게다가 매출은 왜 이리 점점 떨어지는지. 인생의 황금기에 왜 하루종일 초딩들이랑 지지고 볶고 있을까. 자괴감에 치를 떨었다.
한 계기가 있어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문구점의 일들을 1, 2년 썼다. 어느 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문구점 이야기가 특별해 보이는데요.”라며 출간 계약을 했다. 결국 책이 나왔고, 나는 작가가 되었다.
지구에 60억의 사람이 있다면 60억 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쓰면 된다. 그 글 역시 특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