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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멜팝콘 Feb 14. 2017

16.<더 킹>

세련된 한국식 블랙코미디

정우성, 조인성 두 ㅈㅇㅅ의 조합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았던 <더 킹>.

다들 재밌게 보셨나요? 이 영화가 '천만급' 영화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를 담은 정치 느와르, 블랙코미디로서 충분히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론가들의 평점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고, 관람객들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수준입니다.


허물어지는 선악의 대립

처음에는 그냥 그저 그런 뻔한 정치 영화일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그런거 있잖아요~ 착한 놈이 내내 구박받다가 마지막에서야 정의가 승리하는 그런 뻔한 스토리.

물론 최근의 트렌드는 그런 뻔한 구도들이 잘 등장하지 않지만 <내부자들>이라는 굵지한 영화가 흥행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큰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내부자들>, <아수라> 등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고 또 흥행으로도 이어지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혼란스럽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영화들은 선악의 개념이 아닌 시점의 개념으로 영화를 바라보면 더 잘 몰입되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누구의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곧 ="이 장면은 누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는가?" 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장면에서만큼은 정당화하고 있는 그 인물이 바로 '선'이자 '정의'의 개념이 되어 버리는 거죠.


<더 킹>=박태수's Story

이런 관점에서 <더 킹>을 보게 되면 매우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이 영화가 누구의 시점을 전개될 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박태수(조인성)의 나레이션으로 자신의 과거와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죠.

양아치 아버지 밑에서 양아치로 자란 자신이 어떻게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되었는지... 왜 99%의 공무원 검사가 아닌 상위 1%의 검사가 되려고 했고,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박태수가 내뱉는 자신의 이야기가 바로 영화의 줄거리가 되는거죠.

결국 영화의 가장 큰 주연은 바로 박태수(조인성)이 되는거고, 한강식(정우성), 양동철(배성우), 최두일(류준열) 역시 박태수의 시점으로 비쳐지는 모습들입니다.


<더 킹>은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현재=나레이션 >> 과거=3인칭 >> 현재=나레이션

으로 이어집니다. 중반부가 지나서야 처음 장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액자 속 이야기인 과거 역시 3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지만 대부분이 박태수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박태수가 바라본 과거'들만 이야기 합니다.


세련된 촬영과 편집

또 하나 이 영화의 특징을 말하자면, 매우 세련된 촬영과 편집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을 만큼의 국내 정치물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편집과 효과들이 많은데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킹스맨>,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등 에서나 보았던 파격적인 편집효과들이 이 영화에서도 꽤나 자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나치게 다양한 촬영기술과 편집이 오히려 흐름을 끊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특히 도입부에서 데칼코마니로 현대사를 보여주는 장면,

초반부에서 박태수가 유명연예인 전희성의 마약비디오를 보면서전략부로 넘어가기로 결심하게 되는 장면,

한강식에게 버림받아 목포에서 인생의 나락에 있다가 다시 그 때의 선택을 떠올리면서 리와인드 되는 장면,

최두일에게 박태수, 한강식, 양동철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히 역사, 정치적 스토리에만 신경쓴 것이 아니라 영상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프닝에서는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면 나머지 부분들은 박태수의 심리변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온 조인성

<비열한 거리>에서 성공욕에 사로잡힌 병두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조인성은 지난 10년간 확실히 내공이 더 쌓인 듯 합니다.

전략부검사라는 '강자'와 한강식에게 붙어야만 하는 '약자' 두 속성을 잘 나타내고,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인성은 왜 전라도 사투리를 잘 구사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내부자들>에서 조승우가 서울에서 성공하고 싶은 검사로서 '경상도사투리+서울말'이 섞인 이상한 억양으로 연기했었다는점을 감안하면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검사로서 사투리를 잘 구사하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악역도 우아하게

정우성은 이번 영화에서는 가장 비중있는 주연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박태수의 눈에 비친 한강식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죠. 영화 내내 박태수 시점에서의 한강식은 경이로울 정도로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한강식이 처음 출연하는 장면은 마치 <관상>에서 이정재가 나오는 장면과 비슷할 정도로 힘을 잔뜩 실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역사라고 외치는 한강식 검사의 오만함,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부지런함, 위험요소를 잘라내는 잔혹함까지 정우성은 악역도 우아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입니다. <아수라>의 형사 한도경과는 신분이 뒤바뀌긴 했지만 캐릭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미쳤든, '복수'에 미쳤든, 한강식과 한도경은 결국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캐릭터들이기 때문이죠.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배우

배성우는 어느새 주연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무슨 영화든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이 배우는 조폭, 깡패, 양아치가 아닌화이트컬러 직장인으로도 사실 너무 잘 어울리는 비주얼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우성, 조인성이 너무 비현실적인거죠. 양동철은 박태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 한다고 한강식에게 무지막지하게 뚜드려 맞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한강식의 최측근으로 권력 가까이에 붙어 있습니다. 박태수는 사퇴종용까지 받으며 목포에 좌천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양동철이 어떤 커넥션으로 어떤 방법으로 계속 한강식에게 붙어 있는지 영화는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박태수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니까 말이죠. 배성우 역시 딱 박태수에게 보이는 만큼의 양동철을 연기해야 했던 것이고, 이번에도 배성우는 기대를 져 버리지 않았습니다.


약한 캐릭터, 약한 사투리

개인적으로 아쉬운 배우는 류준열입니다. 최근 가장 핫한 배우 중 한 명이죠?

수원 출신이자 쌍문동 고등학생을 연기했던 류준열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아직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목포 조폭이라면 사투리 억양이 어마어마하게 전라도스러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색한 부분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박태수의 기억에는 최도일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린 인생 최고 멋진 사나이입니다. 최도일이 실종 된 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최도일의 무용담은 거의 전설 수준이죠. 최도일의 수하들에게서 들은 이 무용담은 당연히 과장과 왜곡이 보태져 있을 테지만 박태수는 그런 과장과 왜곡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없죠. 후반부로 갈수록 최도일은 더 멋지고 극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한강식, 양동철이 점점 더 파렴치로 그려지는 것 또한 박태수의 시점과 기억에 의존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는 잘 소화하고 있지만 캐릭터 자체의 비중이나 필요성이 적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그점은 류준열이 <모래시계>의 최민수, <내부자들>의 이병헌이 아직 아니기 때문이겠죠 ㅜㅜ


한강식 저격수 안희연 

오히려 인상 깊었던 배우는 한강식 저격수로 나오는 안희연 검사 역의 김소진이라는 배우입니다. 딱딱한 경상도 사투리의 여검사로서 박태수를 통해 한강식 라인을 집요하게 파내다 결국 좌천되버리고 마는데요, 나중에 박태수와 의기투합해 마침내 한강식을 잡고 말죠. 잠깐 잠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정의에 불타는 여검사 캐릭터를 확실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박태수에게 보이는대로만

조인성 외의 모든 배우들은 딱 박태수에게 보이는 만큼만, 혹은 박태수에게 보이는 대로 연기해야 했기때문에 아마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가 아닌 박태수가 느끼고 기억하는 캐릭터로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과정이 하나 더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늙지 않는 주인공들??

<더 킹>은 대한민국 정치사 40년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박태수는 노태우 정권 시절 초임검사가 되었습니다. 아마 20대 후반쯤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MB정권까지 아우르고 있는데도(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국 때 국회에서 웃고 있는 박근혜까지 포함한다면 현 정권까지) 불구하고 연기자들이 너무 늙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조인성과 종반에 국회의원 출마 선언을 하는 조인성은 똑같습니다. 그에 반해 박태수의 아버지는 급격하게 늙어가는 것이 잘 나타납니다. 권력과 생존을 위해 숱한 싸움을 벌이며 갖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전략부 검사들이 전혀 늙지 않았다는 문제점은 분명 감독과 제작진들도 알고 있었을테지만 흰머리 하나 분장시키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박태수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에서 '노화=힘, 권력,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수단이 아닐까요? 박태수는 나이를 먹어가고 권력에서 멀어져 가지만 마음만 먹으면,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회의원까지 노릴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박태수가 스스로를 늙었다고 생각할 리가 없을 겁니다.


또한 박태수의 눈에 비치는 한강식과 양동철 역시 자신이 감히 함부로넘보기 힘든 대선배들인 동시에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입니다. 아무리 코너에 몰아 넣어도 여전히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박태수는 이 사람들 역시 늙으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양아치 눈빛을 가진 검사

영화 속에서 박태수의 아내 임상희(김아중)이 박태수에게 검사지만 양아치 같은 눈을 가져서 매력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저도 <더 킹>을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양아치 같은 매력을 가진 영화.

현대사와 현실을 세련되게 그려낸 그런 영화.


<마스터>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로서 ★★★★ 4/5

(5개: 재미+작품성=어머, 이건 꼭 봐야해!)

(4개: 작품성or재미=딱히 싫어하는 취향이 아니라면 보면 좋을 영화)

(3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

(2개: 취향을 심하게 타거나 굳이 안 봐도 될...)

(1개: 왜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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