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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Apr 18. 2024

꿈이 없는 삶 긍정

"나는 꿈이 없는 엄마다." 꾸밈없는 삶 긍정

'꿈을 크게 가져라. 꿈꾼 것만큼 이룬다.'

전 생애에 걸쳐 이런 메시지에 깊이 젖어 살아왔다.

그런데 임신과 동시에 꿈이 없는 삶을 동경하고 긍정하게 되었다.


내 반려인은 꿈이 없다.

정확히는 스스로 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리고 그는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나보다 더 만족스럽게 하루를 사는 것처럼 보인다.

뭘까? 어째서일까?

누가 이상한 걸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일을 할 때 알았다.

그 일이 오랜 꿈이었던 이들보다

그냥 별 기대 없이 생계를 위해 시작한 사람들이 

더 강한 멘탈로 오래 버티는 것을 보았다. 

굳이 의미를 찾지도, 완벽을 추구하지도, 훌륭해지려 너무 애쓰지도 않기 때문이다.

꿈꾼다는 건, 꿈을 이루기 전의 상태를 미완의 상태로 여겨

좌절이나 낙담, 의기소침과 불만족 등의 상태를 수반한다.


'꿈꾸는 엄마'로 살라고 한다.

아이와 가족을 위해 소망을 품고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 말고도

낱개의 존재로서 자아를 실현하라는 외침은 

엄마들에게 공허하고 아프고 성가실 뿐이었다.


함께 꿈꾸는 엄마이자 아빠, 꿈이 있는 부부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꿈꾸지 않는 반려인을 만났다.

당황스럽고 신기했다.

어떻게 꿈이 없을 수 있지? 의아했다.


그리고 그 덕에 쉴 수 있었다.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꿈꾸지 않아도 된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아닌 나와 다른 사람이 되려고 

나를 소진하지 않아도,

그저 지금에 존재하면 된다고 그는 그의 삶으로 내게 말했다.


꿈, 욕망, 욕심. 

더.. 더... 더.....


그래그래, 꿈은 욕망과 욕심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아이의 탄생은 어쩌면 내게 가장 큰 욕망의 실현으로서

동시에 다른 욕망의 소멸을 낳았다.

정말이지 더 바랄 것도, 이룰 것도 없이 충만했다.

한동안은 정말 그랬다.

먹고 자고 돌보는 일은 내게 다른 틈을 주지 않았고,

아이가 내 삶을 매일 새롭게 했다.


아이의 오늘에 집중하면서 

처음으로 지금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현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소중한 오늘을 산다.


나는 꿈이 없는 엄마다.

나는 꿈을 잊은 엄마다.

나는 행복한 엄마다.

나는 그저 오늘을 산다.


꿈이 없는 삶 긍정.

쓰고 보니 이렇게 읽힌다.

꾸밈없는 삶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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