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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율 Apr 25. 2024

우리 집에 왜 왔니

배가 고파서

배가 고파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띵대사.

식상할 법도 하지만

이보다 더 적확한 말은 없다.


나 진짜 배가 고파서 집에 왔다.

아이 밥도 제대로 못 차려주면서

내 밥을 더 못 챙겨 먹는데

모유수유를 해서 돌아서면

특히 수유직후엔 늘 허기가 졌다.

항상 배가 고팠다.


퇴근 후에 신랑이 차려주는 밥은

맛있지만 늘 체하는 듯 편치 않았다.

막 퇴근한 신랑에게 밥을 받아먹는 게 당연하지 않았고

제대로 못 챙겨 먹은 상태로 신랑의 밥을 차릴 힘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와 아이를 위한 건강식 모드에서 적당히 나쁜 음식 모드로 오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배달 음식도 맛있지 않고

어느 한 끼 맘 편히 맛있게 여유롭게 먹기 어려웠다.


특히나 반복되는 끝없는 집안일. 빨래를 돌리고 개고 입으면 다시 빨래통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무한 굴레. 요리해 먹으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설거지거리. 닦고 돌아서면 지글지글 밟히는 방바닥.. 돌아버리겠다. 정말 돌고 돌다가 내가 돌아버리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며 쇄잔해지는 내 몰골. 거울을 보고 싶지 않다.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


늘 가정에 제 몫의 육아와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랑의 여유 없는 종종거림. 나의 쉴 곳은 어디에. 일일일 모드인 우리. 쉬고 싶다. 집에서 더 이상 쉴 수 없다.


해주는 밥이 먹고 싶어서, 집안일 좀 쉬고 싶어서 집에 왔다. 그 집밥을 만들어주는 엄마아빠는 더 이상 서서 옷을 입을 수 없어서 앉아서 입는다. 나는 거기서 내 아이와 내가 돌봄 받기를, 사랑받기를 기대했다.


이 집에는 또 이 집의 일이 있다. 나이 많은 부모님이 미처 돌보지 못한 집안일이 있다. 눈에 마음에 거슬린다. 짜증이 나고 속이 상한다.


내 자식도 내 맘대로 안된다지만

내 부모님은 내 맘대로 더 안된다.


화가 나는데 내지 못해

전투적인 화가 무뚝뚝, 무표정에서 화병이 되어갈 때쯤 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겨우 하루 있었을 뿐이잖아.

이렇게 긴 하루는 또 없었다.

여기저기 닦고 열고..


나는 여기에 왜 왔지?

뭘 하고 가면 될까?

딸과의 여행에 집중할까?

부모님의 집안일 돌봄에 집중할까?

내 쉼과 식사, 잠만 생각할까?


나.. 우리 집에 뭐 하러 왔지?

내가 찾으러 온 꽃은... 뭐지?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소중한 사람 옆에 소중한 사람 옆에 더없이 소중한 우리 아가. 아가보다 내가 더 소중한 엄마빠. 그 이상한 동거. 그렇지. 여기는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었다. 나의 집도 완전히 편한 나만의 집은 아니다.


우리가 온다고 평소와 달리 정리하고 청소해 둔 집을 보니 마음이 짠해 괜스레 짐정리를 한참 했다.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 자식이 상전이고 제일 큰 손님이다.


나흘째. 집에 와서 매 끼니 밥을 두세 그릇씩 먹고 있다. 내 집 생각이 안 난다. 당연하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 어릴 적 엄마아빠 딸이기만 했던 그때처럼 마음껏 짜증을 내고는 넙죽 받아먹는다. 오늘은 뭐 먹지? 메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우리집에 왜 왔더라? 실은 책임감에 종종거리는 신랑에게 잠시나마 쉼을 주기 위해 엄빠집에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근데 지금은 모르겠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엄마가 주는 밥을 먹으며 젖을 먹인다. 폰도 책도 글도 쉬고 있다.


"나는 내 새끼 챙길 테니 니는  새끼 챙겨라."


아이보다 나를 대놓고 먼저 생각하는 우리 엄마는 사랑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싫지가 않다. 그간 내 아이를 별로 안 예뻐해 준다고 서운해있었는데 조금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다만 내가 편하길, 내 아이가 나를 덜 힘들게 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딸 가진 엄마가 손주를 보는 마음은 그런 것이겠구나. 나도 이제 딸 가진 엄마로서 그 마음 예습해 본다.


#딸가진엄마마음 #백홈 #친정밥 #엄마밥 #육아일기 #아내휴가 #엄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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