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상근 중입니다.
주부의 항변 아닌 반성
"자기는 한 번도 안 치우면서."
"자기는 출퇴근도 안 하면서."
날 선 말이 툭툭 오갔다.
"나는 출퇴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퇴근이 없는 집이라는 일터에서 상시근무 중인 거야."
이렇게 반박할 걸 그랬다.
육아 휴직이 길어지면서 왜 부부간의 거리가 생기는지 알 것 같다. 아내는 자기의 일터는 가정을 자기 방식대로 가꾸고 지키고 싶어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일터에서 지쳐 돌아온 남편은 집에서 자기 방식대로 어지르기도 하며 쉬고 싶다. 아내는 자기가 애써 만든 질서감이 불규칙하게 어그러지면서 짜증이 나고, 치우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에 외롭다. 남편은 집에 와도 눈치가 보이고 온전히 쉬지 못해 짜증이 난다.
오래 아이와 집을 가꾸느라 소일하는 엄마는 세상에 눈귀가 어두워진다. 남편은 아내와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하다. 아내는 온통 아이 교육과 요리 등 집안일 생각뿐이다. 남편과 아이가 함께 웃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할 때뿐. 언젠가부터 부부는 단둘이 있고 싶다거나 같이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육퇴 후 밀린 톡에 답장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육아의 방향을 고민하고 나를 돌아본다. 남편은 회사퇴근과 동시에 시작된 육퇴 후에야 아내가 못다 끝낸 집안일을 살피고 누워서 유튜브도 보고 핸드폰을 들고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이다지도 다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10년 후 우리 부부는 얼마만큼 달라져있을까?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하며 서로 짜증 내지도 화내지도 않는 평화로운 저녁을 맞았다. 그런 날은 일기에 써야 할 만큼 소중한 날이 된다.
남편은 일터를 나와도 오가는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마저 사람들에 부대끼다 지쳐 집에 돌아온다. 아내는 아이 외에는 종일 사람 하나 못 만나고 집안일이라는 밑 빠진 독에 쉼 없이 물을 부으며 남편을 기다린다. 사람에 지친 남편과 사람이 고픈 아내가 아이와 함께 한 식탁에 앉는다. 남편을 위해 마음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앉아 맛있게 먹으며 하루를 나눈다. 아내가 식탁을 치우는 동안 남편은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온 가족이 같이 양치하고 씻고 누워 다 함께 침대에 구르다 이른 저녁잠에 드는 일. 그게 지금 나의 가장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제였는지 오늘일지 모르겠는, 일기인지 소설인지 모를 어느 날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