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찬 바람이 분다.
일어나자마자 써 내려간 모닝 페이지
새벽에 코막힘과 마른기침에 잠 깬 아이, 아침에 두터운 기저귀를 보고 다짐한다. 꼭 일기예보를 보고 옷을 입혀야지. 전날의 기억으로 옷을 입고 자면 낭패를 보는 변덕스러운 가을이다. 이제 난방이 필요한 날들이 오겠다. 뱃속에 찬 바람이 분다.
내가 돌보던 아이가 잘못을 해서 부모님이 오셨다. 부모님은 원에 화가 나있고 못 미더워하는 상황이다. 마침 우리 부모님이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발표를 하며 주인공이 될 시간이었다. 아이와 나의 불화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깨졌고 우리 아빠가 내게 무서운 얼굴로 다가와 갑자기 나를 때리려 했다. 억울하고 두려웠다. 꿈이었다. 엉엉 울고 싶다. 사과받고 싶다.
최근 원에 느끼고 있는 마음과 세상 다정한 아빠에게 일생 단 한번 맞았던 기억이 뒤엉킨 꿈이었다.
낮잠을 재울 때 발생한 아동학대 및 사망사고의 CCTV를 본 이후로 그 모습이 자주 반복되어 어린이집에 보내기를 결정하기도, 보내면서도 내내 한편으로 불안했다. 안 자는 아일 이불에 덮은 채로 방치해 한 아이가 죽었다. 어린이집을 불신하는 예민한 엄마로 몇 달을 보내는 마음이 반대인 입장에서 일하기도 하는 사람으로서 괴로웠다. 발도르프 기관에 보내고픈데 경제적 이유로 일반 원에 보내고 있다.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는 발도르프 철학을 공부해갈수록 일반 원을 예민하게 대하게 된다. 집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공부실천모임을 하지만 잘 안된다. 원에서 세상을 배우고 자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가 우리 부부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가 주는 영향이 더 지대한지라 괜히 원에 욕구불만을 품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밀가루와 카페인, 과식과 저녁 폭식을 끊어내야 한다. 더 단단히 완전히. 내 안의 냉기와 류머티즘 증상을 몰아내겠다. 음식과 요리를 공부하는 건 우리 가족의 몸을 지키는 일. 공부해야 산다.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큰 병 만들지 않고. 더 강하게 지켜내야겠다, 우리의 아이의 밥상을. 그에게 더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건강한 먹거리와 식재료의 올바른 손질, 보관법을.
평생 다정하던 아빠가 나를 쉼 없이 때렸던 그날 나는 마음을 닫았다. 여덟 살이었나. 그래봤자 엉덩이였고 그리 아프지 않았겠지만 왜 그리 깊었나. 바쁜 외출을 앞두고 스타킹을 찾아 신는데 잡히는 것마다 구멍이 나있었다. 온몸으로 짜증을 부리는 나를 아빠가 영문도 모르고 짜증 부리는 줄 알고 때리셨다. 외출은 연기되고 서로는 화가 나있다. 나는 어려서 구멍이 난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할 수 없었고, 힘들게 신고 나면 번번이 구멍이 나서 다시 벗고 신어야 하는 게 힘이 들었다고. 그건 엄마의 몫이 아니었냐고 항변하고픈 마음이 20대가 되어서야 불현듯 들었다. 아빠와는 이미 멀어진 뒤였다. 아빠는 5학년까지 머리를 감겨줄 정도로 누구보다 다정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평생 사랑을 줘도 이렇게 아이와의 신뢰 관계는 부지불식간에 깨진다. 자식 마음에 깊이 남는 게 멍이다.
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날 머리가 종일 지끈했다. 위험을 알리려고, 훈육을 하는 엄마이고 싶어서 억지로 꺼낸 화로 아이가 천지가 요동친 듯 화들짝 놀라 발을 동동 굴렀다.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마음의 멍은 보이지 않게 남을 테니까 도자기를 다루듯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반려인에게 애꿎게 신신당부를 한다.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아침이 밝았다. 어른들이 짜증스럽게 혹은 힘겹게 하루를 시작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이의 생명력 넘치는 아침을 보며 하루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로구나 배운다. 가을이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