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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Apr 09. 2021

이래서 다들 대기업 가려고 안달인가 봐

#2.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할퀴고 간 상처

함께 일하는 선임들 모두 퇴사한다고 했다.

2008년 11월, 첫 회사를 출근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코딱지만 한 광고 에이전시인만큼 선임이라고 해봐야 6명. 6명 중 1명은 대표의 동생, 1명은 대표의 절친인 관계로 나는 나머지 4명의 선임만을 바라보며 회사를 다녔다.


선임들을 향해 무책임하다고 손가락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지난 몇 년에 대해 들어왔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했기에.


광고 회사인 만큼 퇴근 시간은 항상 불규칙했다. 물론 출근시간은 규칙적이었다. 대중교통이 끊긴 새벽 퇴근길 택시비를 사비로 내야 했고, 야근 택시비는 회사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자 회의실에 이불을 가져다 놓았다. 식사 제공이라는 명목 하에 대표의 집에서 밥과 반찬을 가져와야 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을뿐더러 대표의 밥상을 직원들이 차려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렵사리 회사에 영업이익이 생기면 대표의 또 다른 사업으로 자금이 흘러들어 갔고, 거기서 생기는 손해는 다시 우리들이 벌어야 했다.


무서웠다.

4명의 선임이 퇴사하는 순간, 대표의 동생과 대표의 절친만이 남게 된다. 대표의 동생은 일머리 없는 한량이었고, 대표의 절친은 본인 아이디어만이 답인 꼰대였다.

코딱지만 한 회사에 인사 기준이랄 게 있을 리 만무했다. 평가를 하려면 목표가 명확해야 하는데, 내 업무가 정확히 뭔지도 헷갈릴 만큼 온갖 업무에 투입되고 있었다. 나의 암울한 앞날이 그려졌다.  



"넌 어떻게 할 거야?"

2008년 12월, 선임들이 모두 퇴사하던 날. 나도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7개월 만이었다.



처참한 4개월

1년도 채우지 못한 7개월 중고 신입의 이직은 말 그대로 개고생이었다. 어떤 천재지변에도 1년 이상은 참고 버텨야 하는 직장인의 현실을 발로 차 버린 나는 누군가의 발에 차인 듯 처참한 4개월을 보냈다.



벤처 기업이라는 허울

2009년 4월, 어찌저찌 작은 벤처 회사에 입사했다.

광고 플랫폼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회사였고, 플랫폼 개발이 거의 다 끝나서 영업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대표의 얼굴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2009년 7월, 팀장이 퇴사했다.

대표와 자주 의견 차이를 보이던 팀장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를 했고, 그 자리에 대표 아내의 친구가 입사했다.(하, 이놈의 혈연!! 지연!!)


2009년 12월, 플랫폼 개발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개발이 거의 완료되었다는 대표의 말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2010년 1월, 월급 지급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플랫폼은 여전히 개발 중이니 회사 매출은 0원이었고, 투자받은 돈은 바닥났다고 했다.

그런데! 경영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대표의 또 다른 사업체였던 H사에 아직 개발도 안된 우리 회사 플랫폼의 광고를 실었고, H사에 광고비 명목으로 투자금 일부를 입금했다는 것이다. 월급 줄 돈은 없어도, 챙길 돈은 있었던 것이다.


2010년 3월, 나의 2번째 회사는 폐업했다.



2번째 회사에 다닐 때, 대학 선배와 동기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누구나 바라던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1년 만에 퇴사한 이야길 듣고, 누구나 바라던 대기업에 취업한 다른 선배와 동기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대화에 단 한마디도 낄 수 없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선임들이 퇴사한다고 대책 없이 따라서 퇴사하냐고, 대기업 입사 준비도 제대로 안했냐고, 지금 너의 모습은 자업자득인 거 아니냐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달라지게 되었다. 꿈꾸던 직무를 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이기만 하면 된다던 나의 목표는 유명한 회사, 조금이라도 더 큰 회사에 입사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의 꿈에 대한 열정은 회사 타이틀에 대한 열망으로 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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