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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Apr 27. 2021

책<떨림과 울림>; 경이로운 인간

문과인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그렇다. 나는 완벽한 문과생이자, 수포자(수학포기자)다. 

이런 내가 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님의 책을 읽게 된 데에는 '우주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볼 정도로 별을 사랑하고,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에게 '물리학자가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라는 부제는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한 자의 결말은 언제나 참혹하지 않던가. 280쪽도 안 되는 책을 읽으며 이렇게 머리를 쥐어뜯은 적은 없었다. 생소한 과학 이론들이 많이 등장해 검색은 필수였고(검색 결과를 이해하는데도 한참 걸린다), 같은 문단을 4~5번 읽어야 간신히 알듯 말 듯 했다. 분명 이해하고 넘어간 챕터인데,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절대 불가'다. 


그저 '문과인이 바라본 물리학자의 세계관에 대한 단편적 감상' 정도로 봐주시길..  



1부. 분주한 존재들

우주; 존재의 이유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와 시공간이 탄생했다. 그로부터 38만 년 후, 원자와 빛이 탄생하며 지구와 같은 행성과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우주에는 은하가 무려 1,000억 개나 있다고 한다. (별이 모여 성단이 되고, 성단이 모여 은하가 된다.) 우리 은하에만 태양과 같은 별이 약 2,000억 개가 모여 있는데, 이런 은하가 1천억 개라니! 전혀 체감할 수 없는 크기다. 


우주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잠시 멍해진다. 그리곤 바로 이어지는 의문은 이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찮은(?) 우리가 왜 존재하는 걸까. 


책에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마지막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빅뱅 이전에 대해 인간은 모른다. 결론은 우주의 탄생 원인을 모르기에,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안다. 

별이 되지 못한 입자와 우주공간을 떠돌던 원자 먼지가 모여 행성이 되었고, 행성(지구) 표면에 일부 원자들이 자신의 구조를 유지하고 복제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생명의 탄생이라는 것.


tvN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개한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생각났다. (아직 읽진 못했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를 보관, 운반, 전송하는 생존기 계일뿐이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존재의 이유를,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유전자' 입장에선 '돌연변이'일뿐일지 모른다.



원자; 우리를 이루는 것, 세상을 이루는 것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멸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으면 영혼이 남아 구천을 떠돈다거나 좋은 곳으로 간다거나 별이 된다는 말은 인간의 원자가 흩어져서 또 다른 무엇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말인 듯하다. 원자가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이전의 사람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을 대체 누가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의 존재는 돌고 도는 원자의 사이클 중 하나의 지점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자동차, 강아지, 스마트폰 등이 되는 원자의 사이클에서 '인간'으로 시각화된 것이 지금 나, 우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 나무, 흙 공기, 스마트폰, 모두 원자로 되어 있다. 물체를 이루는 원자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전자 같은 기본입자들은 서로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똑같다. ... 때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7살 때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던 중 가족들을 따라오던 흰나비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하듯 가족들 사이사이를 팔랑이며 날고 있는 흰나비를 보고, 어른들은 할아버지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셨다고들 하셨다. 할아버지는 흰나비가 되셨던 걸까.



2부 시간을 산다는 것, 공간을 본다는 것

세계를 해석하는 일에 관하여


2부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정리되었다. 

1. 자연은 최상의 시나리오로 움직이는 '경향'을 가질 뿐, '의도'는 없다.

2. 빅뱅으로 인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 흐른다. (미래에서 과거로 흐를 수 없다.)

3. 빛과 전자는 음양의 조화처럼 이중성을 품고 있다. 


우주는 이중성을 가진 빛과 전자의 공간으로, 존재의 영속을 위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경향'을 '의도'로 해석하면,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6살 때였을 거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처음 '달란트'라는 동그란 종이 조각을 봤다. 이게 대체 뭐냐고 물어보면서 교회의 존재를 알게 됐다. 기독교를 맹신하는 친가 쪽과 스님인 외삼촌이 있는 외가의 만남에도 딱히 종교활동을 하지 않던 부모님 영향이었는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가는 능력 따위를 주었다는 말은 너무나 생경하게 들렸다. 


지금의 나는 교회나 성당보단 절에 가는 것이 선호하지만, 하나의 종교를 맹신하지도 않기에 '경향'을 '의도'로 해석하지 않는다. 단지 재미있는 상상을 할 뿐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존재가 몇 천만 개의 시나리오를 보고 최상의 시나리오로 상황을 이끌어 낸 것과 같은 상상 말이다.


내가 종교가 없다고 해서 종교인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함께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살면 된다. 빛과 전자도 입자이자, 파동이지 않던가. 



3부 관계에 대하여

힘들이 경합하는 세계


총 4부로 구성된 책 내용 중 3부가 가장 어려웠다.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쉽지 않았다. 

각 힘에 대해 과학적으로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상호관계라는 사실은 확실히 인지했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은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중력과 전자기력의 크기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와 같은 이론은 곧 까먹을 것이다. 하지만 온 우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되새길 듯하다. 체감할 수 조차 없는 크기의 우주 속 나의 존재는 지구의 원자 1개만큼도 안 되는 존재겠지만 이런 내가, 지구가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존재' 자체가 얼마나 고귀한지 새삼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환원주의'와 '전일주의'는 대립되는 주장이다. 환원주의는 대상을 쪼개어 부분으로 나눈 다음, 이들로부터 전체를 이해하려는 방법이고, 전일주의는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떡볶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추장, 간장, 설탕에 대해 연구하면 환원주의이고 고추장, 간장, 설탕으로 떡볶이의 맛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전일 주의이다.) 


책 속 김상욱 교수님의 의견처럼 양극단에 서 있지 않다면 이 두 입장은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부분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우주는 나와 같은 작은 존재의 합보다 크지만, 우리와 행성 없이 존재할 수 없다. 



4부 우주는 떨림과 울림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


물리는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우주를 이해하는 완벽한 법칙은 없지만 점점 더 많은 자연현상이 법칙으로, 수학으로 기술되고 있다고 한다. 수학으로 거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은 '자연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나 단순하지 않은가. 법칙을 설명하는 수식은 어렵지만, 방식은 너무나 단순하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tvN <알쓸신잡>에서도 김상욱 교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기쁘거나 슬퍼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이다. 의미 없는 법칙에 따라 그냥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와 달리 인간은 법칙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예외성이 있다. 그 예외성이 우리의 존재를 더욱 경이롭게 만들어 준다.


4부 뒷부분에 책 <사피엔스>의 저자 하라리의 의견을 덧붙인다.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틀은
'상상을 믿는 능력'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것이다. 


인류는 세상을 파멸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인류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경고하는 하라리의 의견을 또한 적혀 있다. 마블 코믹스 '타노스'의 건틀렛과 인피니티 스톤이 없어도 인류는 이미 '핑거스냅'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역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인류는 '핑거스냅'의 기회를 상상으로 빚어진 '가치'를 위해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고지능 외계생명체도 지구에 안오는 건가...)



친언니가 첫 조카를 출산하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대단하고 아름다운 거야. 대단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는 거지."


우리의 몸을 이루는 탄소 원자 하나도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우주의 먼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없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주에 대한 이해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원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원자의 합보다 크지만, 원자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아래 문구를 마지막으로, 일상 속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에 대해 고민해본다.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쌍생성으로 만들어진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질이 반물질보다 10억 분의 1 정도 많이 생성되어야 한다. ... 아무튼 세상의 물질은 알 수 없는 비대칭에서 생겨났다.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이 세상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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