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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구리 May 18. 2021

책 <사라진 서울을 걷다> 땅의 이야기를 읽다.

서울을 해외여행하다.

요즘 '산책'에 관한 글들이 많다. 나의 산책은 사색이 가능한 잔잔함보단 반려견과의 우렁찬 박진감으로 가득하지만, 산책이 주는 기분 전환은 확실하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자연의 모습은 부지런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회사에서 마주하던 사람들의 시들하고 무기력한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자연의 역동적인 생명력에 경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요즘 '산책'에 대한 글이, 산책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이것 아닐까.


서울을 해외여행하는 기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경기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후드득 쏟아지는 서울의 상세 지명에 네이버 지도를 옆에 끼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대학시절 연합동아리 모임으로 대학로에 자주 갔다. 대학로에 학교라고는 성균관대학교뿐인데 왜 '대학로'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어 선배와 동기들에게 물어봤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책이 그 의문을 풀어 주었다. 대학로의 이름이 대학로인 이유, 서울대학병원이 혜화에 있는 이유를 알게 되어 혼자 배시시 웃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 대학교가 들어섰다. ... 1975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자 구 문리대 일부는 대부분 민간 주택지로 불하되어 본관만 남기고 철거되었다. 그리고 당시 문예진흥원장의 제안으로 공원으로 바뀌면서 서울대학교 자리는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대학로의 역사는 물론, 조선의 궁터가 북악산 기슭이 아닌 중랑구쯤이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 8 학군이 만들어진 배경, 동대문이 패션의 중심지가 된 이유 등 서울에 얽힌 역사를 때론 재미있게, 때론 진지하게, 때론 서글프게 엿볼 수 있었다.


성인 되고 내 발로 찾아간 서울의 첫인상은 시끌벅적한 종각역의 피아노 거리와 울퉁불퉁 돌길에 땅과 주변을 살피느라 정신없던 인사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코엑스몰 정도로 기억하기에 책을 읽을수록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누워 있는 분수, 청계천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질 때, 성인이 되었지만 미성숙했던 나였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뭔가 문제가 많은 건 확실해 보였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기업 출신답게 본인의 실적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은 받았다. 


복원 작업이 끝나고, 교보문고 말고도 광화문에 갈만한 곳이 생겼다며 친구가 나를 데리고 청계천에 갔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청계천 물에 하얀 맨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생경해서 그곳에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있던 땅이 무너져 내려 나 혼자만 멀뚱히 서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을 맛 본건 단지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복원사업의 우여곡절이 청계천에 자연스레 묻어난 것이 아닐까. 


자양 취수장과 뚝섬 정수장에서 각각 모터 펌프 4대와 대형 변압기를 일 년 내내 가동해 한강의 물을 청계천으로 퍼 나르는 방법을 택했다. 물 12만 톤을 24시간 내내 양수기로 퍼올리는 비용도 하루 기준 전기료 230만 원, 전기료 인건비 등을 포함한 유지비만 연간 18억 원 이상 든다. ... 
그러나 막대한 경비는 더 막대한 이익을 낳는다. ... 서울시는 이 일대에 주상복합 시설과 오피스빌딩, 방송국 등이 들어선 일본 도쿄의 '롯폰기'처럼 개발하는 걸 구상했다. 그렇다면 청계천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고, 삼일고가도로의 철거는 순수하게 청계천 복원을 위해 철거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청계천은 명당수인만큼 조선시대부터 수많은 역사가 얽혀 있었지만 현재의 나, 우리에게 밀접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더 눈에 띄었다. 복원된 청계천에 흐르는 맑은 물이 수돗물임을 새삼 상기하며,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서울 중앙부의 욕조 속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모습이...



선의 길, 인사동

길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선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점의 길이다. 길에 선적인 특성이 강조될 때 우리는 풍경을 잃는다. ... 
새로 단장한 인사동은 말끔히 정리되면서 보다 선적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인사동은 버려 버렸다고 자탄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좋은 공간은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몇 년 전 오랜만에 인사동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잰걸음으로 중앙로를 통과하곤 '볼 게 없네'라고 생각했었다. 최근의 삼청동도 그렇다. 점점 선의 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작가가 말한 것처럼 버려 버렸다고 자탄할 일은 아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는 글귀에 얼마 전 삼청동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젠 볼 것 없어진 삼청동'을 걸었다. 중심 거리에 자리한 건물 1층은 대부분 임대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눈에 익은 가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볼 것 없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가파른 언덕에 작은 카페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평수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는 고요할 정도로 손님이 없어 보였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시끌시끌해졌다. 루프탑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루프탑에서 바라본 풍경엔 청와대 일대와 북악산 포대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수없이 가던 삼청동이었지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에 커피 마시는 것도 잊고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서구와 우리 건축의 차이

서구 건축은 집을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미학적 관점을 형성해 나가지만 우리 건축은 집안에서 바깥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에 장식이 없다. 한국 건축의 장식은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된다.

'물질을 잃고, 출렁이는 물그림자-종묘' 장(챕터)에서 위와 같이 문구가 있다. 우리나라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변하면서 한국 건축의 장식도 미니멀리즘과 많이 멀어졌었다고 생각한다. 책 <공간의 미래>에서 건축가 유현준은 기능에 따라 공간과 가구를 나눈 현재 우리네 방의 구조는 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전의 발전으로 가구의 통폐합이라는 새로운 미니멀리즘으로 향해 가는 듯하다. 책 <공간의 미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현대 사회는 기능에 따라 물건이 나누어지기보다는 합쳐지는 추세다. ... 거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혼자 TV를 시청할 수 있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식탁에서 누가 공부를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이 만들어졌다.


소파베드, 다용도 침대, 책상 겸 식탁 테이블 등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코로나로 급변하고 있는 집의 중요성이 새로운 미니멀리즘을 어떻게 녹여낼지 기대되는 순간이다. 



특수성 속에 보편성, 종묘

종묘가 서양인 눈에도 확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은 ... 한국적 특수성 속에 이미 삶의 보편성이 깊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 특수성과 보편성을 연결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태도, 이러한 건축을 나는 종묘에서 본다. 종묘는 참, 위대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성과 보편성이 내재된 것이 바로 세계적인 것임을 작가는 말한다. 종묘에 다시 찾아가 보고 싶어 졌다. 



영추문 옆 효자로

나에게 '효자로'는 통인시장으로 가는 설렘의 길이다. 하지만 효자로 옆 '영추문'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었나, 자문하게 되었다. 

영추문 길은 경복궁역에서 시작해 은밀한 지하도를 거쳐 당대를 풍미한 뭇 선사의 부도와 탑이 진열돼 있는 정원을 나와 긴 돌담길을 하염없이 걸어도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길과 같다.

이번 주말은 영추문 길을 걸어 통인시장으로 가볼까 한다. 


통인시장에서 인왕산까지 걸어가는 길

인왕산에는 누상동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옥인동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두 줄기는 오늘날 옥인동 47번지 일대에서 만나 천계천으로 흐르는데 이 계류가 바로 옥계다. ... 
양란으로 파괴된 경복궁을 버리고 임금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경치 좋고 땅값 싼 곳으로 중인이 몰려들었다. ... 약 60여 개 정도의 시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시사가 바로 송석원시사다.

기름 떡볶이와 효자 베이커리 그리고 볼거리 많은 골목길 때문에 통인시장을 자주 간다. 효자 베이커리에서 인왕산 수성동 계곡까지 걸어갔던 길이 바로 누상동, 옥인동이다. 시사가 많았던 역사가 있는 만큼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걷기 좋고, 다시 걷고 싶은 길이었는데, 그곳이 송석원 시사가 있는 곳이었다니! 역시 알수록 다르게 보인다.



불공평의 재미, 창신동 헌책방

헌책방에서는 다르다. 부르는 게 값일 수 있고, 깎는 게 값일 수 있다. ... 합리적인 가격 결정보다는 비합리적이고, 심정적인 가격 결정이 이루어진다. ... 화폐가치가 똑같은 책인데도 수시로 바뀐다. 그러니 헌책방에서는 손해 보는 이도 있고 득을 보는 이도 있다. 한마디로 불공평하다.

헌책방에 가본 적이 있던가. 강남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꽤 자주 가던 시절이 생각나긴 했지만, 진정한(?) 헌책방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헌책방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지게 하는 구절이다. 동시에 아이유의 'Coin'을 무심히 흥얼거리게 되었다. '세상이 원래 불공평해 So 더럽게 재미있지~' 



하지만... 아쉬운 편집 

1. 책 중간중간 인용된 구절에 한자 독음이 없어 읽는데 속도가 붙질 않았다. 


2. 글에서 언급되는 주요 장소에 대한 이미지 자료가 하나도 없어 일일이 찾아봐야 했다. 특히, 156페이지에는 '양화진은 지금 절두산 성단이 있는 자리이고, 오른쪽 그림은 양평동 쥐산 풍경이다.'라는 부분에서 마치 그림이 있는 것처럼 묘사된 부분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오른쪽 그림이 어디 있나 한참 고민했다.)


3. 글 작성일자가 적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글에 '얼마 전'이라 명시된 부분은 기준이 없어 아리송했다. 



장소에 얽힌 이야기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그 장소만의 특별함을 부여해주어 찾아가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곳을 걸을 때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장소의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그 장소의 역사에 나의 역사도 녹여내고, 새로운 역사를 내 안에 담아내 보고 싶어 진다. 



선유도 공원은 '지금, 여기'의 인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성공적으로 살아내고 있다. ...
과거는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선유도 공원은 웅변한다.
 미래는 곧 우리 앞에 놓인 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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