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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Jul 14. 2020

남의 집 애가 늦게 자거나 말거나!

밤 11시.


한 밤에 우리 부부는 둘만의 데이트를 종종 즐긴다.

고1 첫째, 중2 둘째, 초5학년 막내는 집에 두고 말이다.

물론 첫째는 우리 손을 벗어났지만 둘째와 셋째는 곤히 잠들어있다.  


데이트라고 해봤자 집 앞에서 치맥을 즐기거나 마트 행렬이 전부다. 그래도 좋다. 여름에 느끼는 시원한 밤바람도 좋고 겨울에 느끼는 오싹한 한기도 마냥 좋다. 애들 두고 집구석을 나왔으니까. 남편과 함께니까.



밤 11시에 마트에 와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 밤에 정장을 입고 장을 보는 모습을 보면 잘 차려입은 정장이 부럽기보다 안쓰럽다. '피곤하시겠다...'라는 마음이 절로든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걸어 나와서 20% 할인 스티커가 붙은 물건만을 구입한 알뜰 구매자도 눈에 띈다.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타인의 물건을 보면 그제야 '아... 나도 저거 가지고 올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뭐니 뭐니 해도 그 밤에 눈에 띄는 사람은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이다. 그 시간밖에 장 볼 시간이 없어서 나온 경우도 있을 테다. 아이가 어려서, 하나라서, 집에 둘 수 없으니 온 가족이 나들이 겸 나온 것 같다. 밤이 깊어서인지 아이도 부모님도 피곤해 보인다. 아이는 잠이 오는지 카트 안에서 한껏 찌푸린 얼굴로 부모에게 칭얼거리고 있다. 젊은 부부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무슨 오지랖인지 가서 아이라도 안고 얼러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이래 봬도 내가 세아이를 직접 키운 베테랑 엄마니까!


맞벌이 부부라서 어쩔 수 없는 가정은 할 수 없다.

그보다 아이를 왜 일찍 재워야 하는지 몰라서 그 밤에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계신다면 조곤조곤 옆집 언니가 되어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이에게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의식하지 않고도 실천하는 루틴이 있을 때 엄마의 육아가 얼마나 쉬워지는지. 아이가 얼마나 건강하고 밝아지는지.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고민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가정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요즘 우리의 생활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한 몸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수업이 대체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의 인연으로 7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아들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아들들은 이제 사춘기의 절정 중2다. 중2가 무서워서 북한에서도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뭔지 몰랐다. 내 아들이 중2가 되기 전 까지는. (아. 키워보니 딸과 아들은 또 다르다.)


초등학교는 경기도 외곽 지역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있다. 더 좋은 학군을 향하여, 소신껏 이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하나같이 훈훈하게 잘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자마자 엄마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아. 죽겠어요. 맨날 전쟁이에요. 게임 때문에."

"밤에 몇 시에 자는 건지. 도대체 내가 어제는 새벽 3시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다가 열 받아서 애 등짝을 후려쳤어요."

"밤에 늦게 잤으니 아침엔 당연히 못 일어나죠. 온라인 수업이니 학교 다닐 때보다 늦게 일어나도 되는데도 겨우 일어나서.. 암튼 생활 습관부터 엉망이에요. 아. 언니. 저 정말 너무 속상해요."


우린 아들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깝게 지내며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응원해 오던 엄마들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잠겨보았다.


내 아들은 낮에 뭘 했든 그래도 10시면 컴퓨터를 충전시킨다고 거실에 내어놓고 일찍 잔다. 그렇다고 고민하는 엄마들 앞에서 우리 집 상황을 말할 타이밍은 아니었다. 내 아들 녀석도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아들의 건강한 변화 - 사춘기- 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적어도 노력하는 중이다.



14개월이 지나서야 걸어서 14킬로나 되던 우량아 아들을 허리가 부러지도록 안고 다녔다. 그랬던 녀석이 수컷의 향기를 풍기기 시작하니 당황스러운 일도 종종 있다. 선배 엄마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 아들이 그럴 줄은 몰랐다고... 나 역시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 않지만 다행인 것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실천했는데 아이가 커 갈수록 아주 바람직하게 발현되고 있는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다. 그리고 몰입해야할 때는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같이 온라인 학습으로 학습결손이 생기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는 시기에 여간 고마운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아이는 늦지 않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학교를 가든, 가지 않든, 늦잠을 자지 않는다. 이것만 잘 지켜도 아이의 생활이 내 눈에 보인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감사한 정도가 아니다. 중2 아들을 가진 엄마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는 '9시 취침의 기적'이란 책을 썼다. 그리고 엄마들을 코칭하는 프로그램 '미라클 베드타임'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의 수면시간을 기준으로 생활습관과 학습습관을 잡아갈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어릴 때 아무리 공들여 키워도 중, 고등학교 때까지 아이의 자발적인 관심사와 학습이 연결되지 않으면 엄마의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다. 그걸 알기 때문에 내가 후배 엄마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던 말을 '미라클 베드타임'을 통해서 전하고 있다.


남의 집 애가 늦게 자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람.

아니. 상관이 있다. 이 세상은 내 아이가 혼자 살아갈 세상이 아니라서. 이 사회가 인식의 변화만으로 건강해진다면.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건강해지지 않을까? 나 혼자 기대해본다. 그리고 계란으로 바위를 건드려본다.


"아이를 규칙적인 시간에 조금만 일찍 재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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