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보다 '경청'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대화의 주요 요소로 꼽는다. 물론 ‘공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감’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끄덕거리며 ‘그래, 맞아’라며 맞장구 쳐준다고 해서 ‘공감’ 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반대로 맞장구를 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해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인간의 본성상 이게 참 쉽지 않다. 남의 큰 상처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공감’보다는 ‘경청’을 커뮤니케이션의 목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 ‘공감’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라면, ‘경청’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태도다. 인간관계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각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해져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경청의 첫 단계는 ‘집중하기’다. 경청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에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이 본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본능적으로 나 자신에게 대입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이 같은 습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나와 연관 짓지 않고 듣는 것이 바로 ‘집중하기’다. 가령 친구가 지갑을 잃어버린 경험을 이야기할 때 내가 예전에 지갑을 잃어버린 기억을 꺼내지 않는 것이다. 단지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이 ‘나’로 바뀌는 흐름을 차단해보자.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건성으로 추임새를 넣으면서 그저 내 이야기를 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면 상대가 아무리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눈치챌 수밖에 없다.
꼭 오랜 시간이 아니어도 상대의 말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면 관계는 확연하게 좋아진다. 물론 상대방의 말에 얼마만큼 집중해야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만날 때마다 회사 상사 욕을 계속하는 친구가 있다면 내가 언제까지 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내가 이 친구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준 적이 있는지. 짧은 시간일지라도 친구의 말을 경청한 뒤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면 상대방도 그 틈새의 시간에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면 자연스럽게 그 내용은 기억할 수 있다. 타인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상대에 대한 무관심은 나쁜 일도, 탓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을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관계라는 건 함께 한 시간 동안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친한 친구의 임신 소식을 듣던 순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경험이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친해졌다고 한들 1년에 한두 번 본 10년 지기 친구보다 깊은 관계는 아닐 수 있다. 관계에 있어서 시간은 그만큼 중요하다. 오랜 시간 경청의 과정을 쌓은 관계에서는 상대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만약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던 시간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대화의 시간을 늘리고 대화 중에서도 내가 상대의 말에 집중하는 경청의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상황을 기억하는 데서 관계가 시작되고 세계가 확장된다.
상대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기억을 잘한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 단순한 예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고 했을 때 생일선물로 필름을 구매하는 것까지 이어져야만 관계라는 건축에 하나의 벽돌을 쌓는 것이 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는 자신의 의견이 조직 내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데, 이는 ‘행동하기’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젊은 직원들에게 의견을 내보라고 한 뒤 그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경청하지 않은 행위나 다름없다. 모든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결과가 어찌 되었든 ‘행동’과 ‘변화’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인간관계에 3단계의 경청 과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족, 부부, 연인, 친구처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경청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롯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집중해서 대화를 할 필요는 없다. 적당히 듣고 적당히 행동하는 관계가 더 많은 것이 정상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고민은 나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데 상대방은 내 말을 건성건성 듣는 경우일 것이다. 이럴 땐 내가 먼저 노력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아들러 심리학에서처럼 ‘나의 과제’와 ‘남의 과제’를 분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이롭다. 내가 먼저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 상대는 좋은 에너지를 받게 되고, 좋은 에너지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져 나 또한 그 감정을 전달받게 된다. 관계 변화의 시작은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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