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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28. 2023

4. 로맨틱엔 맥주가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sapanga, TURKEY

터키에 오기 전부터 그의 친한 친구커플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다리가 다쳐서 가서 짐만 될까 취소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기대에 차서 나에게 여행을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과 처음으로 만나는 그의 친구들과 약속을 깨고 싶진 않아 가서 최대한 짐이 되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고 취소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스탄불에 있는 블랙퍼스트 체인점인 ‘Ethem Etendi Kahvalti’에서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한 커플과 함께 아침을 하기로 했다. 거지 같은 영어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였기 때문에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났고 그의 말대로 그들은 따뜻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나의 기분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식당은 아주 클래식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터키식 아침식사에 주 메뉴인 빵, 치즈, 수죽, 야채, 잼, 티 등등이 나왔고 끊임없이 여러 가지 종류로 식탁 위에 올려지는 음식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30가지 정도 되는 잼 중에 우리는 오이, 고추, 생강 잼을 골랐고 그 맛은.. 흥미로웠다. 그래도 그중엔 오이 잼이 가장 괜찮았다. 치즈 퐁듀와 함께 먹는 빵은 정말 맛있었고 우리는 서로 먹는 방법을 공유하며 서로의 연애사를 얘기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눈 후 우리는 다음날 여행을 위해 헤어졌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둑어둑해 우산을 챙길까 말까 고민했는데 카페에서 볼일을 조금 더 보고 나오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주 많이 왔으면 우산을 썼을 텐데 비를 맞는 걸 좋아하는 우리는 그냥 비를 맞으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이어폰을 꺼내 한쪽씩 나눠 끼며 거리를 걸었다. 이슬람 종교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이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찾기는 힘들었지만 어둑한 하늘에 촉촉이 젖은 길가와 나무 그리고 그 사이에 빚 나는 주황빛을 한 가로등까지 지금 이 순간을 로맨틱한 공기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는 자주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듣는데 지난여름 이어폰을 나눠 뀌고선 그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불러주었고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만나기 전엔 한 번도 꿈꿔오지 못했던 순간들이었는데 그는 나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고 깊은 어둠 속에서 꺼내주었다. 한 번씩은 함께하는 미래를 생각하다 나의 그런 미래를 그리다 밤을 지새우고 혹 그에게 부담을 줄까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마음들을 그는 나의 행동으로 나의 눈을 보고 알고 있었다. 마음에 병에 있었던 그와 내가 서로에게 어떠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를 맑고 퓨어하게 나쁜 것들을 거루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 어느새부턴가 그는 나를 ‘medicine’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 눈물이 흘러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는 또 따뜻한 말들로 나를 어르고 달래주었다. 어쩜 이리 행복해도 괜찮은 건지 한 번씩 이 행복들이 갑자기 또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신기하리만치 똑같아서 우리는 잘 통하지 언어를 하고 있더라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하기 넉넉한 시간으로 알람을 맞추고도 늦게 일어나는 것 마저 똑같은 우리는 분주하게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다행히 짐을 거의 다 싸 놓아서 나갈 채비만 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 전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아침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커플을 만났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사판자는 호수가 있는 마을이다. 그 근방에 이쁘게 잘 꾸며놓은 펜션들이 가득해 중동지역 사람들이나 터키 사람들도 연휴나 휴가를 보내러 많이들 온다고 했고 우리도 그곳에서 3박 4일을 보내기로 했다. 바깥 구경을 좋아하는 내가 그곳에서 3박 4일 동안 잘 머물 수 있을지 걱정을 했지만 이 다리로는 밖에 다니는 게 불가하니 이참에 잘 쉬어보자고 생각했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잘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방갈로(bungalow)는 원래 인도의 벵골 지방 특유의 가옥을 가리키는 형태의 주택인데 인도가 식민지로 있을 때 서양에 퍼지며 전 세계 곳곳에 발달한 건물의 형태로 일층은 베란다같이 유리로 된 구조가 특징이며 영국에서부터 퍼진 것은 벽돌, 미국에서부터 퍼진 것은 목조기 많다. 나무로 된 우리의 방갈로하우스는 자쿠지와 풀장 비비큐까지 있어 아주 완벽한 휴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짐을 풀고 조금 쉰 뒤 마트로 향했다. 아주 털털한 성격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그의 친구의 여자친구인 아이친은 꽤나 여성스러운 성격을 가진 캐릭터로 나와는 다르게 반만의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고기나 사서 구워 먹고 과자랑 맥주나 먹지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카드게임, 향초,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믹서, 여러 음식의 레시피 등등 별것들을 다 챙겨 온 그녀를 보고 웃음 보이긴 했지만 아주 살짝 조금 피곤하기도 했다.. ㅋㅋㅋㅋ 그녀가 준비해 온 레시피로는 케이크와 터키식 수프, 꿀마늘치킨? 등등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크게 필요치 않은 식재료에 큰돈을 써야 하기도 했지만 뭐 그래도 다 같이 즐기러 온 거 기도 하고 나도 맞춰주는 게 편해서 마트에서 ‘whatever you want’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비비큐를 해보는 남자들은 불을 붙이는데만 한참 동안 시간을 썼고 터키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구우면서 먹는 문화가 아닌 다 굽고 차려먹는 문화라 따뜻한 음식을 먹기에는 일렀지만 고픈배를 움켜쥐고 결국 새벽 한 시 정도가 돼서야 제대로 된 저녁을 먹기는 했지만 안에서 야채를 씻고 먹을 준비를 한 아이친과 나는 이러다가 배불러서 아침에 돼서야 잘 수 있겠다며 서로의 남자친구의 흉 아닌 흉을 보며 조금 더 가까워졌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친구인 부락과는 어느샌가 브로과 되어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시간들을 사진 속에 남겨주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기도 하고 스파를 하기도 하며 추억으로 가득한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떠나기 마지막날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의 시작은 나의 섭섭함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곳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리를 시작하면서 꽤나 털털한 내가 예민해지면서 마음속이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래도 같은 나라사람들인 그들은 어느샌가 영어보다도 자신의 모국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한참 동안 불을 피우던 그는 회사에 내야 할 서류에 문제가 생겨 실내에 들어올 때마다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그 모습도 섭섭함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웃음을 잃은 나를 보곤 그가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마음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나는 지금 조금 더 예민해졌고 그는 내게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더 다리 때문에 속상해할 거냐는 그의 물음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눈물을 닭똥 같은 뚝뚝 흘리며 나는 다리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 여기에 와서 너와 걱정 없이 여행을 하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에서 여름에서부터 정말 열심히 시간들을 보내며 살아왔다, 네가 잘 알지 않느냐 하며 근데 이 다리 때문에 시간을 이렇게밖에 보내지 못하고 함께 놀러 와서 너와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속상했다고 했다. 내가 대충 준비하고 이 시간들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너무나 기대를 했기에 그래서 더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는 나를 안아주며 다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놀러 와서 부락과 아이친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그의 마음을 전부 다 이해해주지 못해 주는 것도 미안해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에도 어느샌가 눈물이 흐른 자국이 생겨있었다.

쉽게 행복감이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던 그가 나와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하기 시작하며 행복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3가지를 말해보라는 부락과 아이친의 질문에 그는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어둠 속에서 꺼내줬다고 말했다. 나도 어느새 그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의 눈물을 본 순간 행복해졌다.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닌 이곳에서 그와 내 생에 최고로 로맨틱한 크리스마스이브 밤을 보냈다. 서로에게 눈물을 보여주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건네는 것보다 더 로맨틱한 것이 있을까. 부락은 여자친구를 정말 잘 챙겨주는 좋은 남자인 것 같다고 아이친은 어린 나이에 비해 주변 사람을 잘 챙겨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그들도 나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을 많이 도우지 못해 짐이 된 것 같을 것 같은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이친은 나를 만나기 전에 타국의 여자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하고 본인이 나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 터키어로 나도 모르게 그에게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나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술을 먹는 순간들마다 내가 좋아하게 된 터키 맥주인 보몬티(Bomonti)를 찾는 나를 보며 그들은 로맨틱에 맥주가 웬 말이냐는 제스처와 표정을 취했다. 그리고 나를 트럭드라이브라고 부르는 그의 말의 모두가 동의했다. 아니 로맨틱에 맥주가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Dce20,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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