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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02. 2024

6.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을 느낀다면,

istanbul, TURKEY

며칠을 시끄럽게 보낸 우리는 오늘은 꼭 공부를 하자며 약속했다. 병원에 다녀온 그와 준비하고 그의 친한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사진으로 너무 자주 봐서 만나자마자 서로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말이다. 커피나 차를 자주 마시는 터키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한두 시간 정도밖에 카페에 있지 않았는데 2잔의 커피를 마셨다. 슬슬 배가 고파진 우리는 근처에 있는 치킨라이스집으로 향해 점심 겸 저녁으로 향하기로 했다. 혹시나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이 다 먹겠다고 했는데 마늘향이 나는 밥에 삼계탕에 있을 법한 별 양념이 안된 닭이 올라간 게 전부여서 후추와 고춧가루를 뿌려 나름 야무지게 먹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듯한 그들을 위해 바클라바를 먹고 싶다고 말했고 길 건너에 있는 바클라바 가게로 향했다. 바클라바는 크로와상 같은 생지 안에 피스타치오를 넣은 터키식 디저트인데 안에 들어가는 종류가 다양해 그의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내가 제일 먹어보고 싶은 바클라바는 카이막 바클라바였지만 이곳보다 다른 곳이 더 맛있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아이스크림바클라바와 밀크바클라바를 주문했다. 아이스크림과 먹는 바클라바는 아주아주 당이 올라가는 맛이기는 했지만 우유로 촉촉하게 안을 채운 밀크 바클라바는 상상이상으로 부드러웠고 맛은 아예 다르지만 티라미수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내 입맛에 꼭 맞는 터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이 동그래지는 나를 보고는 그는 나를 따라 해 보였고 그의 친구들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고 그가 좋아하는 카페로 가 그는 공부를 나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친구들과 점심에 그곳에서 만나 커피와 차를 마시기는 했지만 그곳의 커피는 상상이상으로 맛있었고 주인분도 너무 기분 좋게 잘 대해주셔서 동네에서 굳이 다른 곳을 찾고 싶지도 않았고 공부하기에 딱 적당한 공간이었다. 카페에 도착해 차를 시키려는데 아까도 왔지 않냐며 공짜를 차를 주겠다고 하셨다. 저번에도 공짜로 주셨는데 또다시 터키인들의 정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독일어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냐는 그의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모의시험을 치렀고 집에 가서 남은 맥주를 먹자며 과자 봉지를 들고 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에 들었다.


이번주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그는 이제 다리도 좀 괜찮아졌으니 이스탄불을 천천히 둘러봐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동의했다. 하루를 가득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아직 한 달이 좀 넘는 시간이 남아있으니 하루에 한두 군데 정도 나가 여행을 하자며 어제 카페에서 계획을 세웠고 우리는 오늘 그랜드 바자르, 술탄아흐메트 모스크, 아야소피아에 가기로 했고 저녁으로는 그의 홈타운에서 먹는 방식의 케밥을 먹기로 했다. 원래의 일정은 이렇지 않았지만 터키 시민이나 학생들이 쓰는 무제한 이용권인 교통카드를 만들려다가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고 길을 걷다가 계속 멈추어 사진을 찍는 나 때문에 시간이 더 지체되어 일정을 변경했다.

그의 동네에서 큰 길가로 내려오면 있는 곳에서 트램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로 향했다. 큰 길가에는 이란이나 인도 등 아랍권에 있는 사람들의 동네였는데 버스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기 위해 잠깐 들른 그곳에서 정말 많은 눈빛을 받았고 내 피부가 뚫릴 것만 같았다. 트램역에 와서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그에게 혹시 나를 지켜주냐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남자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너무 싫고 말이라도 걸면 싸움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ㅋㅋㅋ. 이스탄불 대학을 지나 그랜드바자르 근처에 도착해 트램에서 내렸다. 한 겨울임이 분명한데 20도를 웃돌아 어이가 없었다. 딱 두 장 가져온 반팔티에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왔는데 이 외투를 입고 있다간 쪄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외투를 들고 다녔고 그럼에도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분명 사계절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길가에 반팔에 반팔티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 이상기후를 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12월이었다.


명동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랜드 바자르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해 1400년대에 지어졌다는 사실과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이라는 사실과 그 안에 5000개가 넘는 상점이 있다는 사실에만 흥미를 가졌다. 건물 안을 페인트 칠을 하는 것도 구경하고 사람 한 명이 들어갈만한 아주 좁은 가게에서 티나 커피를 만들어 배달하는 것 같은 거 말이다.

바자르에서 나와 커피를 한잔하고 오랜만에 아빠와 통화를 했다. 터키에 오기 전부터 감기에 걸려있던 아빠는 아직도 병원에 가지 않은 아빠는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자마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아빠에게 잠깐 아잔 소리를 들려준 채 통화를 마무리했고 좋은 날씨를 배경 삼아 술탄아하메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술탄아하메트와 아야소피아는 잠깐 빛나는 석양과 너무도 잘 어울려졌다. 히잡을 구매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아야 소피아는 겉에서만 봤지만 그는 나에게 히잡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 히잡을 쓰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 하지만 그들의 종교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모두를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였다.


파란 하늘을 더 파랗게 물들여 줬던 해가 졌다. 그렇게 찾아온 어둠은 이 밤의 이스탄불을 밝았던 하늘 못지않게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그와 물가에 가 손을 잡고 노래를 들으며 발걸음을 맞췄다. 괜스레 코끝이 찡해져 마음이 울컥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소중함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뱀파이어가 됐으면 했다.


오늘도 모두가 우리를 쳐다본다. 동양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이스탄불에서의 우리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가라쿄이로 향했다. 갈라타타워가 있는 가라쿄이라는 동네는 이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했고 나는 평소처럼 골목골목 들어가 그곳을 눈에 담고 프레임에 담았다. 올드디카가 먹통이 된 아침이었지만 혹시 몰라 챙겨 온 디지털카메라로 이스탄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영화같이 담아낼 수 있었다. 갈라타 타워 앞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냥 떠돌아다니는 소문으로 약 700년이 된 그 타워에 연인과 함께 오르면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된다는 속설 때문 일거다. 그가 바비라고 칭하는 이들이 온갖 이쁘고 우아한 척을 하며 타워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진들을 그 들은 얼마나 볼까. 아마 웃긴 사진을 더 많이 찍는 우리보단 덜할 거라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새겨진 갈라타 타워 앞을 한참 서성이다 그렇게 발을 떼어냈다. 이곳도 히잡을 구매하면 아야소피아를 가기로 한 날 함께 오기로 약속했다. 그전에 지진이 나지 않길 빌며 말이다.

터키사람들의 차 사랑. 아니 그 시간에 대한 사랑.

전날 해가 져버려 가지 못한 동네에 가기로 했다. 배를 타고 쿠즈쿤주크로 향했다. 또 다른 아시아지구인 이곳에는 터키사람들의 삶이 더 묻어나있었다. 전통적인 건물에 아늑한 거리, 카페 앞 큰 나무 밑 돌의자에 찻잔이 가득하다. 이 사진만으로도 내가 터키에 왔었다는 걸 아주 실감할 수 있다. 터키 사람들은 그만큼 차와 커피를 사랑한다. 아마도 차와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 동안의 수많은 대화들을 그 소통의 마음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쿠즈쿤주크의 어둑한 골목

골목길에 들어서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서로의 시간을 보냈다. 이런 시간을 가질 때마다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그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밉기도 하다. 지금 터키에 있는 나는 마냥 여행자가 아닌데 그도 나의 시간을 그렇게 받아들여줬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본인이 때문에 공부를 하기 위해 카페를 가는 게 나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가 막힌 티라미수를 맛보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익을 무시한 채 항구 앞 가게에서 고등어케밥과 미트볼케밥을 먹었다. 분명 다른 가게인데 이곳에 가져와 고등어케밥을 먹어도 되겠냐는 그의 질문에 미트볼케밥 사장님은 ‘오 형제여, 나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아. 편하게 가져와서 먹고 그릇도 내가 치워줄게.’ 란다. 한국이면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나는 정의 나라 터키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맛있는 가게 간판은 꼭 사진을 찍는 나여서 식사를 끝내고 사진을 찍는데 미트볼을 굽는 할아버지께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신다. 나는 오늘도 그 미소를 이곳의 사람들의 마음을 내 마음에 고이 담아 포장해 두었다. 어느 깊은 어둠에 잠긴 날 그 포장을 열어보기 위해 말이다.

여행자는 모르는 현지인 진짜 맛집.

기억은 얼마만큼 왜곡되어 내게 달려올까, 단편적이며 맥락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그것들이 사진의 무기이자 한계일 거다. 사진을 찍고 앨범에 담아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인지 매 순간, 매 여행에서 깨닫는다. 그건 아마도 사진이 아닌, 사진 속 담긴 사람에 대한 마음일 거다. 나이가 들면 가질 수 있는 게 늘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약만 늘어난다. 삶은 왜 이토록 찬란하고 빠르며 아쉬운 것을 제때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이것은 그리 짧아 무지개 빛 찬란한 비눗방울만 같을까.

터키에 와 삶에 대한 화가 늘었다. 끝이 없어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그냥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하고 싶기도 하다.

Dec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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