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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17. 2024

8.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에서의 방황

istanbul, Turkey


1월 1일 아침부터 남자들을 취하게 하고 싶다는 아이친의 의견에 동의했다. 함께 마켓에 가서 앱솔루트와 음료를 구매하고 조금씩 취기가 올라 허기짐을 느껴 일층 KFC에 가서 치킨을 구매했다. 새해부터 뭐가 문제인지 아이친과 부락은 살짝 다퉜고 그 길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많이 늦지 않은 시간임에도 어둑한 하늘, 곳곳에 있는 터키 국기가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린다. 드디어 겨울이 오는 이스탄불이었다.


시끌벅적한 새해를 맞이하고 오늘은 제발 조용히 보내자고 그에게 말했다. 동네에 있는 피자 가게 가서 피자를 먹고 카페 공부를 하기로 했다. 오늘 먹은 피자는 터키식 피자인 피데인데, 맛은 기본 피자와 비슷했지만 생김새가 달랐고, 화덕에 구워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고 쫄깃했다. 한국식 피자와 다르게 아주 기본적인 맛만 있는 터키식 피자는 크기가 작고 토핑이 적어 그런가 한 끼 식사로 먹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카페에 와서 오랜만에 단둘이 조용히 공부를 했다. 그의 학교 근처인 이 카페는 항상 그의 친구들이 방문했었는데 오늘은 둘이 한참 공부를 하고 글을 쓰다가 친구가 1번 방문한 게 전부였다. 대화를 좋아하는 덕기 사람들은 1번 대화를 시작하면 5분 이상이 지속되는데 둘이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기 때문에 말을 끊을 수도 없다. 그와 대화를 하려고 기다리다가 친구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렇게 나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세네 시간쯤 카페에 있었을까, 피데를 먹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려고 배고픔을 감수했지만 뱃속에서 허기 심해 점점 커져 내 위에 구멍을 내었다. 나는 정말 밥이 먹고 싶었는데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한국에서 챙겨 온 굴소스가 생각나서 야메로 불고기를 해 먹기로 했다. 사실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음식을 챙겨 오는 일이 거의 없는 나이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인데 굳이 굳이 식재료를 챙겨 온 이유는 내가 만든 김치를 맛 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 한국 음식을 해 주고 싶었다. 거의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챙겨 가는 나를 보고 엄마는 이게 무슨 일이냐 놀라워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랄 것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말이다.

마트 가서 가지와 버섯, 다진 소고기, 양파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있는 사잇도 생각해 양을 넉넉히 구매했다. 사실 친구까지 챙길 여력은 없었는데 그의 생일 케이크를 함께 먹으려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같이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밥을 짓기 시작했고 나는 불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익혔다. 적당히 익었을 즈음 버섯과 가지를 넣고 익히고 굴소스와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다진 소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 그런 걸지, 100년 된 이 건물이 그런 느낌을 주는 건지, 터키라는 나라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식기구가 없어 요리를 할 때마다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70% 정도의 기능만 하는 이 주방에서 못할 건 없었다. 더 적은 퍼센트가 아님에 감사할 뿐이었다. 완성된 음식에 참기름과 김가루를 뿌리고 아껴뒀던 김치를 꺼냈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 음식에 눈동자가 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참기름과 김치가 신의 한 수임에 분명했다.

한국에서처럼 내 밥숟갈 위에 찢어놓은 김치를 올려놓는 그가 내 옆에 있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데 몇 번을 실패하면서도 말이다. 내가 왜 이리 스위트하냐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면 ‘나도 너 챙겨줄 수 있어. 젓가락으로.’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곤 한다. 이곳에서 한국음식을 먹는 게 반갑다기보다도 그의 서툰 젓가락질이 그 눈빛이 내 속을 가득 차게 만든다.


겨울이 온 터키는 며칠째 날이 흐리다. 아직 이곳에 와 한 번도 미술관에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내가 제일가보고 싶어 했던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터키에 와 모든 게 풀어지듯 몸이 풀린다. 학교일을 하면서 강박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며칠 긴장과 마음이 풀리다 보니 그런 듯싶었다. 게을러지게 만드는 흐린 날도 한몫을 하게 하기도 하고 말이다. 터키에 오기 전 이스탄불이 있는 한 갤러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전시를 하고 싶기도 했는데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그린 그림을 고해상도로 보내주면 프린트해서 걸어놓겠다는 그들의 말에 단번에 거절을 했다. 그렇담 나의 그림은 미디어 아트와 다른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육칠 년 전부터 굶어가며 매일 빵만 먹어도 좋으니 해외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프린트는 내 작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그런 아쉬움과 작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뒤섞인 감정으로 그와 버스에 올라탔다.

아침을 잔뜩 먹고 이르지 않은 저녁을 먹는 일상을 지속하는 요즘이다. 아침이 되면 속이 더부룩해 음식이 당기지 않기 마련이지만 밖에 나가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 먹는 일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지출이었다. 도무지 떨쳐내지지 않는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커피를 찾았다. 마침 미술관 앞에서 유명한 바클라바집을 발견했고 우리는 그곳에 들어갔다. 터키의 디저트 중에 하나인 바클라바는 옛 오스만 제국 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의 디저트인데 아주 얇은 반죽을 40겹 정도 쌓은 페이스트리식의 반죽에 뜨거울 때 설탕 시럽을 끼얹어서 완성하며 그 안에 피스타치오패이스트를 넣는 게 가장 기본적이다. 맛만 봤을 때는 페이스트리에 설탕시럽에 페이스트가 느껴며 엄청나게 칼로리가 높을 거 같지만 버터 반죽이 아닌 물과 밀가루만을 사용하고 구울 때 정재버터를 뿌려가며 쌓기에 생각보다 칼로리가 낮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클라바는 재료에 따라 엄청 다양하게 맛볼 수 있데 마지막에 설탕시럽이 아닌 우유를 넣는다면 밀크바클라바가 되고 안에 카이막을 넣으면 카이막 바클라바 아이스크림을 넣으면 아이스크림 바클라바가 된다. 내가 먹어본 바클라바중엔 아주 잘하는 집의 일반 바클라바와 밀크바클라바가 제일 부드럽고 티와도 잘 어우러졌다.

그의 동네에서 맛봤던 것들보다 맛있었던 카이막바클라바와 밀크바클라바를 먹었다. 하지만 네 배 정도 더 비싸다는 가격을 듣고 입이 떡 멀어지긴 했지만 1800년도부터 이어져왔다는 사실에 딱히 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디저트 가게에서 나와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이런 곳에 현대미술관을 지었냐는 그의 말이 공감이 될 정도로 동네는 조금 위험했고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지만 미술관 앞만큼은 아주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전시 정보를 보고 오지도 않았고 영어로 된 해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것 보다도 요즘 새로운 방식에 작업에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기에 더 넓은 세상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작업방식을 보고자 이곳에 방문했다.


테이프로 선을 만들어 화면을 채우는 작가, 두꺼운 종이로 입체감을 만드는 작가, 캔버스 앞면에는 백색으로만 칠을 하고 옆면에 칠을 해 반사된 빛으로 색을 표현하는 작가, 나름의 방식으로 샤머니즘을 표현하는 작가등 정말 한 건물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완성도 높은 작업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 다양한 작업들이 이 건물에 각자의 방식으로 잘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나도 언젠간 이렇게 큰 곳에서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는 데스크에 가서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줘 보자고 했다. 지금 나의 커리어와 작업의 수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냥 물어보고 싶어 전시장을 내내 둘러보며 고민을 하고는 건물을 나서는 길에 데스크에 들렀다. 돌아왔던 대답은 내 생각과 똑같이 회원제로 운영하며 나의 작업은 미술관보다는 갤러리에 문의하면 좋은 답변을 받을 거다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나름의 용기였다.


집에 가는 길에 펍에 들러 프렌치프라이에 맥주를 한잔 했다.

내내 텅 빈 이상한 마음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나의 능력으로 쉽게 해외에 터전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던 거 같다.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무언지 대충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마음 한편에 있는 작은 무언가 때문에 그것을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균등한 조건에 태어나지 못하는가에 대한 어리석은 고민을 할바엔 지금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어떤 영화를 볼지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편이 나았다.

집에 도착해 한국에서 가져온 한글 공부 책을 꺼냈다. 머리가 좋은 그에게 어떤 게 좋을지 몰라 만 3세부터 5세까지 3권을 구매해 왔는데 한국에 가기 전에 전부 다 끝낼 수 있을 거라고 한 건 내 착각이었다. 삶이 언제 계획 대고 된 적이 있던가. 생각한 대로 척척 다 이루어졌다면 오늘의 나는 이렇게 내 신세를 안쓰러워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조금 더 빨랐다면, 조금 더 잘났다면,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말이다. 지도가 있다고 한들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던 나에게 계획이나 지도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손에 쥔 것이 없는 오늘날의 나를 안쓰러워할 일도 과거의 나를 탓할일도 아니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에서 나는 당연한 방황을 했을 뿐이었다.

Ja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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