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su Aug 01. 2024

여름, 소도시, 터키 1

Bantman, TURKEY

터키 중부의 말도 안 되는 더위는 출국하기 전의 내 걱정보다 더 엄청났다. 우리는 햇빛 아래서는 말 한마디 손끝 하나 스치지 못한 채 그곳이 어디이던 목적지를 향해 걷는 수밖에 없었다. 선글라스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은 선글라스조차도 무용지물 하게 만들어 선글라스 안에서 찌푸리는 눈 주위의 주름이 아우성을 쳤지만 간간히 있는 그림자 안을 걸을 땐 그래도 이곳의 색을 담아야 한다며 선글라스를 벗어 보이는 별 수없는 그림쟁이인 나였다.

유럽권 보다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인접한 바트만이라는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는 디아르바크르라는 도시에 가기로 했다. 사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그 도시를 찾게 된 이유는 단지 T의 고향이라는 이유를 제외하면 소도시 여행은 어디라면 좋아하는 나 이기 때문인데 그곳에 다녀온 후 이 문장은 디아르바크르를 다녀오기 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이 되었다.


아침 일찍 눈을 떠 준비를 하기 전부터 여행사 어플을 켰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귀국날이 바뀐다는 건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보다 더 급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돌아가면 오기 전처럼 정신없이 살아갈 거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외국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즐기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귀국 날짜를 변경하기로 했다. 솔직히 가격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었지만 하늘도 ‘그래 이번에 바꾸고 편히 지내다 가서 대학원 마무리 잘해라’라고 세상에 말이라도 한 듯 변경수수료가 없는 일자가 있었고 난 일주일 더 이 먼 타국에 머물기로 했다. 제일 먼저 기뻐했으면 하는 T와 A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T는 놀란 눈을 하며 기뻐했고 문자로 소식을 들은 A도 마찬가지였다.


거실 식탁 위는 치워지기 무섭게 갖가지 것들로 채워졌다. 주방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을 챙기는 T의 아침식사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아우성을 치는 집을 두고 우리는 헐레벌떡 도망이라도 치듯 집을 나섰다. 온종일 에어컨을 가동하는 집 문을 열자마자 턱 막히는 온도에 우리는 소리 없이 고갯짓과 손동작으로만 대화를 이어갔다. 이렇게 몸동작으로만 소통이 된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이 더위에도 밖으로 나섰던 이유는 T가 작년 겨울 아니 그보다도 더 전부터 얘기했던 디아르바크르에 가기 위해서였다. 버스터미널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 낯의 바트만은 그림자가 별 소용이 없는듯했다. 뜨겁기만 하면 감사할법한 건조하고 먼지 섞인 바람이 금세 내 몸의 수분을 다 빼앗아갔다. 고개를 돌려 T의 얼굴을 봤다. 편안하지 않은 환경에선 왜인지 모르게 T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한국의 습한 여름을 평생 겪다가 이런 건조한 더위가 처음인 나보다도 더 많은 땀을 흘리며 현지인이 아닌 듯이 더워하는 T를 보며 나는 덥다는 말을 기어코 삼켰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하는 곳에 내렸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알아채야 했다. 이 소도시의 문제점은 제대로 명시된 정보보다는 누군가에게 받는 정보가 더 많은데 그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기사가 말한 버스터미널에는 우리가 이용하려는 버스가 없었고 우리는 이 더위에 물어물어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며칠을 더워서 실외로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던 나는 길거리에 모든 게 새롭고 귀여워 걷기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고 그는 이내 버럭 했다. 이 뙤약볕에도 아직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대는 내게 그는 한소리를 했고 나는 또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화가 식혔을 때쯤 나의 행동에 대한 설명을 했다.


감히 지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지쳐서 그만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싫어서일까, 누군가를 내 옆에 둔다는 건 항상 잃을 준비를 해야 하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서부터였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내 마음을 말하는 게 무서워진 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내편은 없다고 하던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던 누군가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살아가면서 순간의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래도 언젠가 편하고 싶은 T에게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내 마음을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2JUL2024



작가의 이전글 11. 헤맨 밤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