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을 좋아한다면 부상은 숙명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에는 언제나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내포되어있다. 누군가 회사 면접에서 "제 취미는 스포츠입니다"라고 한다면, 어느 날 그 사람이 회사에 목발을 짚고 출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운동을 좋아하는 배우자를 두셨다면, 병원에서 머쓱해하며 다친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게 되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농구를 좋아하는데, 각종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운동 중 하나에 속하다 보니 다치는 일이 잦다. 20대 때는 정말 자주 다쳤다. 다행히 타고난 강골이라 그런지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적은 없지만, 손가락부터 발가락까지 안 다쳐 본 곳이 없을 만큼 다쳤다. 눈썹 옆이 찢어지기도 하고, 어깨가 탈골되어 큰 수술도 한번 받았다. 보통 대다수의 일들은 한두 번 경험하면 익숙해지는데, 유독 부상만큼은 익숙해지지가 않는 거 같다.
2. "우드득"
그러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부상을 당했다. 농구에서 점프를 한 뒤 슛을 쏘고 내려오는데 상대편 발이 착지 지점으로 들어와 우드득 소리가 나며 발목이 돌아갔고,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큰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곧바로 기어서 코트를 나왔는데, 혼자 기숙사로 돌아갈 수가 없어 동기의 부축을 받아 가까스로 방에 들어갔다. 보통 이러한 관절 및 뼈·인대 부상은 다친 날 밤이 되면 고통이 극에 달하게 되는데, 얼음을 가지고 아이싱을 하며 잠을 청했다.
고통으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걸을 수가 없었다. 얇았던 발은 퉁퉁 부어 있었다. 겨우 나갈 준비를 하고, 택시를 부른 다음, 한발 깽깽이로 기숙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택시를 타고 정형외과로 향했다.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 병원에 도착하니 그래도 마음이 한시름 놓인다. 장장 3시간의 시간이 지난 뒤 병원을 절뚝이며 걸어 나오는 내 다리에는 반깁스가 되어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발목 인대·혈관·힘줄에 손상이 많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내 발은 군데군데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정상인 왼발과 비교하면 오른발이 곰발처럼 커져 있었다.
3.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
하루를 보내다 보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걷질 못하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다가 전화를 했더니,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혼자 거기서 고생하고 있지 말고 얼른 시간 되는 기차표를 끊어서 집으로 바로 올라오라고 하신다. 나도 멀지 않은 미래에 좋은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이게 뭔 뜬금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야만이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명제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의 삶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가정을 이루는 결혼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존 위티 주니어가 이야기하듯, 지난날 보편적으로 인정받았던 '서로 사랑하고 후손을 낳으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영구적으로 약정된 하나의 연합'이라는 결혼의 이상은 차츰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가고 '양쪽 당사자의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한시적인 성적 계약'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결혼은 하나의 연합에서 둘의 연합으로, 연합에서 계약으로 변화했다. 우리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혼관은 이렇게 변해온 것이다.
지난날 보편적으로 인정받았던 '서로 사랑하고 후손을 낳으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영구적으로 약정된 연합'이라는 결혼의 이상은 차츰 물러가고 '양쪽 당사자의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한시적인 성적 계약'이라는 새로운 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John Witte, Jr., "From Sacrament to Contract: Marriage, Religion, and Law in the Western Tradition", 209.
부상은 인간을 비독립적으로 만든다. 혼자서의 삶이 가능했던 일반적인 사람은 부상을 입으면, 연약(vulnerable)해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발목을 다친 당일 밤에는 친구들이 사다준 얼음과 그들의 부축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그다음 날이 되자 혼자서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스스로를 보면서 점차 현시대의 주류적 목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것이 생각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있는 가정에 돌아와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그런 생각은 더욱 짙어졌다. '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겠다! 그래야 내가 연약할 때, 나의 배우자가 연약할 때, 자녀가 연약할 때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겠구나' 결혼은 사실 이런 의미인게 아닐까?
4. 모든 시민의 이동의 자유 보장을 위한 노력
주변에 장애인 인권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시는 변호사 분들이 계신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게 크게 가슴을 뛰게 하거나 열정을 바치게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다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걸을 수 없어서 한참을 침대에 앉아 어떻게 병원에 갈 것인지를 고민했는데, 결국 10분간의 궁리를 통해 고안해낸 방법은 기숙사 앞 주차장으로 택시를 부른 뒤 깽깽이를 통해 기숙사 1층으로 내려가 주차장까지 다시 깽깽이로 이동하여 택시를 타고 병원 바로 앞에서 내려 다시 깽깽이로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 번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기숙사 건물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발에 의존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카드키를 찍고,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휠체어로 이동하거나 목발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이 건물이 얼마나 불친절한 건물인지가 느껴졌다. 장애학생을 위한 손잡이는 설치되어 있었지만 충분한 거리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아주 극소량이었고, 문은 너무나 빨리 닫혀 큰 힘으로 밀었다가 열린 공간을 재빠르게 지나가야 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군데군데 벽돌이 빠져있어서 이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위험천만했다. 인도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연결점에는 점프로 넘어야 하는 높은 턱이 존재했다. 이동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불편함을 최소화 시키는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대한민국 시민의 5%나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고, 뉴스에서나 나오는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한 이 문제는 내가 매일 살고 있었던 기숙사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잠시나마 나의 불편함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내 발목이 고장 나고서야 이를 느끼다니 나 자신은 얼마나 얄팍한 사람이란 말인가!
5. 집으로
겨우 병원에 가서 한참을 기다려 받은 진단 결과는 '인대 파열'이었다. 뼈는 문제가 없다는 것.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지만, 이틀째 밥을 한 끼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걸을 수 없는 것이 이렇게나 불편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발이 말도 안 되게 크게 부어서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에, 집에서 다시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오히려 인대에는 큰 이상이 없고, 뼈에 금이 간 것이 발견되었다. 초음파로 봐야 보이는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 균열에 맨발이 신발을 신은 발처럼 붓다니... 인간은 사실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또 놀라운 존재인지를 고통으로 깨닫는 요 며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