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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다독 Sep 30. 2020

별빛을 잃어가는 어떤 명절

읽고 쓰기 — 빌 헤이스, 『별빛이 떠난 거리』

연휴 첫날이었고, 5분 지각했다. 공휴일 배차를 생각하지 않고 느긋하게 고시원을 나섰다가 지하철을 놓쳤다. 하루가 조금 어긋난 느낌으로 오후 내내 이런저런 일들을 했는데, 하나같이 해냈어야 하는 시간보다 오래 걸렸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합리화가 가능했지만(실제로 다른 직원이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하다 보면 빨라지겠죠.'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다소 시무룩했다. 더 빨리 하지 못해서, 그리고 이런 일을 빨리 해내야만 해서.


일들 중 하나는 서가에 붙일 소개 문구를 쓰는 일이었다. 문학이나 중수필, 사상서가 있는 서가라면 상대적으로 덜 어렵게 느꼈을 텐데, 문제는 문구가 붙을 서가가 아동 중심의 그림책 서가라는 점이었다. 나는 오래 고민했고, 몇 시간을 끙끙 앓았다. 정해진 테마가 있다한들, 어찌 그런 문구가 후다닥 쓰인단 말인가? 더구나 서가의 책들을 참조해서 자유롭게 고민하고 적어보고 싶었지만, 계속 손님이 있어 불가능했다. 일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 손님이 뜸했던 매장은 누구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임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산한 날들이 잦았다. 덕분에 나는 노트북으로 해야 하는 여러 사무를 카운터에 앉아 압축적으로 배우고 또 해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던 건, 아마 거리두기 2.5단계가 지속되며 인내심을 시험 당한 사람들의 마음이 명절 연휴와 맞물린 결과 같았다.


5월에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주말이 붙어 있던 연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한동안을 집과 마트만 오가다 연휴 첫날을 맞아 내가 생각한 가장 안전한 야외 활동­―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지나치는 카페마다 사람이 가득 차 있어 깜짝 놀랐다. 그 틈에 끼어 앉아 시원한 라떼를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나라도 처신을 잘 한답시고 참느라 혼났지. 이 대목에서 지금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니, 공교롭게도 그날과 같은 스웨터, 같은 바지를 입고 있다. 이런 신비가 있어서 삶은 우리가 아는 경이와 재미를 자랑한다. 이런 신비가 없다면, 그건 우리가 삶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신호겠지.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도 삶을 잃어버리고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을 낭만화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일을 멈출 필요가 있다. 왜냐면,


왜냐면 지금이 어떤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땠던가 하는 건 지금의 뉴욕에서는 널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 빌 헤이스,『별빛이 떠난 거리』, 205쪽


지금에 온전히 몰입하는 건 (그게 언제든, 팬데믹 상황이든 아니든) 쉬운 일이 아니다. 빌 헤이스 역시 그것을 알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을 슬쩍슬쩍 50쪽 가량 읽는 동안 그는 코로나19로 완전히 변모한 뉴욕의 풍경과, 그게 자신의 우울증에 일조한 영향―그가 우울증을 '하나의 우울함'으로 다루지 말라고 말하듯―을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즈음에 그가 어떤 문장을 썼을지 궁금해서 뒤를 펼치니 저 인용문을 보게 되었다. 그는 올리버 색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간직한 채 누군가를 새로 사랑하고, 현재의 증인이 되기 위해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다.


별빛이 줄어든 건 서울도 마찬가지다. 오늘 나를 내내 시무룩하게 만든 문구에 나는 이런 말을 적었다. "여기가 낮일 때 그곳은 밤인데, 거기 사는 친구들은 밥 대신 다른 걸 먹는다는 거야."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또 얼마나 흡사한지! 코로나19가 낱낱이 드러내 버린 혐오와, 혐오의 시대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빛마저도.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며 하늘이 어두워져, 집에 가는 길에 달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보름달을 올려다보게 되는 명절이다. 올해의 추석 보름달이, 별빛이 떠난 곳곳을 조금 더 세심하게 비추는 상상을 한다. 오늘은 오늘에 충분히 몰두하고 헌신해야겠지. 5분 늦어버린 내 마음이 하루 중 알게 모르게 품었던 혐오들을 제치고 얼른 사랑과 함께 도착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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