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독다독 Nov 20. 2017

미아의 설득력

<라라랜드>를 뒤늦게 본 짧은 소감

  <라라랜드>를 보니 자연스럽게 <아티스트>가 생각났다. <아티스트>를 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두 영화는 같은 계보에 놓아도 될 만큼 유사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여성, 할리우드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요소인 춤과 노래, 지나간 영화와 음악들에 대한 헌사, 그리고 사랑. 유수한 영화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면면들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만, 이들이 하나의 서사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영화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그런 점에서 보면 <드림걸스>도 유사한 맥락에 놓이겠다). 이미 영화에 대해 과분한 평가와 정리들이 이루어진 마당이라 할 말이 별로 없어서, 한두 가지 단상만 적어두면 될 것 같다.


  <라라랜드>가 <아티스트>와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는 세바스찬이 밴드를 나온다는 점이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현실적인 곤란들은 차치하고, 굳이 말하자면 ‘정통 재즈’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제는 다수가 외면하는 소수의 음악이자 고유한 정신과 가치를 지닌–을 지키고 스스로를 그런 의미에서의 ‘재즈 연주자’로 정립시키려는 그의 꿈은 언뜻 <아티스트>의 조지를 연상시킨다(물론 조지의 보수성이 가치 수호와 같은 대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세바스찬과 구별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러나 유성 영화로의 이행을 통해 조지와 패피가 함께 성공을 이뤄낸다면, 세바스찬은 퓨전 재즈로의 이행에서 이탈하여 미아와는 별도로 자신의 성공을 이뤄낸다. 이 도식적 비교는 영화의 범박한 서사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바스찬의 길과 미아의 길이 갈라지는 내적 이유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빛나는 것은 미아의 캐릭터다. 미아는 고투 끝에 성공하여 세바스찬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지 않는다. 세바스찬에게 꿈을 잊지 않기를 일갈하는 그는 세바스찬이 가져온 ‘굿 뉴스’에 고집을 부리지 않고 반응하며, 언제까지나 당신을 사랑할 거라고,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는 세바스찬과 정확하게 조응한다. 누구 말마따나, 그는 참 ‘알맞게’ 사랑한다. 그는 연주 하나만으로 세바스찬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 연주가 살아 있다면 언제까지나 세바스찬을 사랑할 것이다. ‘도망’치던 세바스찬을 도망치지 않도록 변화시킨 것도 미아였다. 더듬어보면 미아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한 번을 제외하면 줄곧 도망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무대의 정적과 고독, 어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이를 함축한다(이전까지 미아가 홀로 노래하는 장면이 중간에 잘리는 등 불완전한 컷으로 제시되었던 것과 달리, 이제 미아는 극중 처음으로 완연한 어둠 속에서 노래 전곡을 소화한다). 정교할 수 없는 낭만과 환상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배우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다. 엠마 스톤은 유감없이 역량을 발휘했다.


  영화는 오프닝의 고속도로 신에서 등장하는, 같은 꿈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장삼이사들 속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올려서 환상은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 역시 환상에 발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망 없는 낭만이라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도 없지만, 가끔은 센 강에 맨발로 뛰어든 이모의 이야기를 부르는 미아를 떠올릴 것 같다. 삶에게 나를 납득시키는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런 순간에.


  영화가 재즈를 상당히 편의적으로 다룬 것 같기는 하지만.

작가의 이전글 제주 드리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