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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용 Feb 08. 2024

제4회 포스텍SF어워드 심사평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제4회 포스텍SF어워드의 심사평입니다.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리고, 수상하신 작가님들에게도 축하를 전합니다.


이번 공모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면서 포스텍 SF 어워드의 정체성과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공계열특성화 대학에서 공모하는 이공계열 전공 대학‧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SF 소설 대회라는 특수성을 심사 기준에 포함시키면서 작품을 읽어내는 동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심사에서 크게 세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작품의 수상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다.


첫 번째는 소설(小說) 그 중에서도 단편소설(短篇小說)이라는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소설은 형식을 통해서 구현되는 이야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단편소설은 그 중에서도 형식적인 완결성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작품들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추고 하나의 형식을 만족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사실 상당 수의 작품들이 단편소설 내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완결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예심을 통과해 본심과 최종 수상까지 이른 작품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형식들은 기본적으로 충족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SF(Science Fiction)라는 장르적 방법론에 충실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SF를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론들이 있지만 중요한 부분은 ‘과학으로 인해서 변화된 세계의 모습들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정보의 전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세계의 어떤 부분들이 바뀌는지를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하고 그것을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적인 정보를 가지고 아이디어에 그쳤을 뿐, 이야기 내에서 그것에 대한 활용이나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력들이 희미한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현대 사회의 모든 영역들이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다고 할지라도, SF 공모전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장르에서 주로 사용해 왔던 코드, 혹은 관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명확하게 구현된 작품들이 좀 더 의미있다고 판단했다.


세 번째는 이공계열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공모전의 특수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려한 부분은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인데, 그것은 기술적 정합성을 엄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들에 대해서 얼마나 다양하게 사고실험했는가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SF가 과학기술 정보에 대한 전달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가능성과 영향력을 이야기로 상상하는 장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이공계열 전공을 가진 작가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과학에 대한 정보 그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변화하게 될 세계에 대한 상상의 구체성과 논리성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지점들이 명확하게 개성으로 발휘된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였다.


이와 같은 기준을 가지고 예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먼저 선별했고, 본심을 통해 최종심을 진행하면서도 여러 심사위원 분들과 기준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였다. 그 과정에서 단편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도시 바깥에는 껌의 향이 난다>는 개인적으로 제시했던 세 가지의 기준을 모두 만족했을 뿐 아니라, 심사위원분들의 각자의 기준에도 부합하는 지점들이 많아 만장일치로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경이롭고 환상적인, 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세계를 개성적으로 그리는 정보들이 과학적인 근거들에 기인하면서도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것이 흥미로웠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나가면서도, 기존의 기술만능주의적이거나 혹은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세계의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려는 태도 역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은 동시대적인 담론에도 잇대고 있는 지점이 있어, 미래를 지향하는데 있어 동시대적인 담론들에 반응해야 하는 SF의 특성 역시 잘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다만, 이야기의 세계관이 단편소설 내에 담기에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어 이후에 이 세계들이 좀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작가가 계속해서 이야기의 세계들을 확장해 나가면서 더 많은 부분들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편소설 부문의 가작으로 뽑힌 <영도>는 SF라는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소재와 이야기들을 능숙하게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속 통신이 가능한 시대와 같은 이야기는 그동안 수없이 SF에서 이야기 되어왔던 부분인데, 그것을 무리없이 잘 녹여내면서도 현대적인 맥락들을 접붙였다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광속통신이라는 대단한 기술이 있고, 시대 역시 천 년 뒤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양식, 그에 따라 사건 및 사고에 대해서 반응하는 양태들까지도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20세기부터의 SF 소설의 그것과 비슷하게 구현되고 있어 아쉬움이 남았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그에 걸맞는 신기술이 도입된 세계의 사람들은 지금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는 고민들이 구체적으로 구현되거나 시대적 설정의 변화를 통해 이러한 지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상작에는 들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BLESS>와 같은 작품들이 너무 좋게 느껴졌다. 사건에서 문제시되는 부분들이 다소 구체화되지 못하고 느슨한 상태로 제시되며, 결말부에서 너무 급작스럽게 사건을 수습한다는 느낌이 있지만 몇몇 유명한 SF 작품들이 생각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로서의 ‘읽은 재미’는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공모전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준들과 그에 부합하는 의미들로 작품을 판단한다고 이야기 했지만 SF 소설은 기본적으로 대중문학에 속하는 장르이고, 그러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흡인력과 재미요소를 무시할 순 없다. <BLESS>는 그러한 요소들을 훌륭하게 구현한, 작가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독자들을 더 만나보았으면 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미니픽션 부문에서는 심사의 기준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짧은 글을 쓴다는 것은 물리적인 문자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 보이지만 ‘픽션’이라는 이야기 형식을 제안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야기로서의 구조의 완결성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특히 SF는 새로운 세계들을 상상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면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를 설명하는 지점들이 발생하고 여기에서 물리적 분량들을 잡아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니픽션은 이러한 지점들을 최대한 압축하고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기술적인 역량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단편소설보다 더 치밀한 능력을 요하는 것이 미니픽션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메모, 혹은 인상에 대한 기술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올해의 공모에서는 미니픽션에서의 대상을 선정하지 못하고 가작만 두 편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작품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이야기적 형식으로 엮어내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자연선택>과 <카산드라>의 경우 다양한 정보들을 토대로 특정한 상황과 그에 대한 결과들을 보여주려는 형식에 맞는 시도들이 잘 이어졌다. 다만, 짧은 이야기에 너무 많은 정보들과 이야기를 넣다보니 그에 대한 구체성들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게헨나>와 <지능의 발명> 같은 경우엔 과학적 상황들과 그에 대한 사고실험들을 수행한 것이 특징적이었지만 역시 형식적인 완성도를 가져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었다. 네 작품다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단편소설로 구성했어도 될만한 이야기들이었다고 보인다. 하지만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들을 이야기로 구성하려는 시도들을 보여준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모전이라는 특성상 기준을 나름대로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작품들로 의미를 한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작품들의 가치와 가능성들에 모두 반응하지 못한 것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혹은 SF라는 장르의 형식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부터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작품들 뿐이었다. 이번에 수상하지 못한 작품들이 이후에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서 더 많은 기회들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공모전에 응모해 주신 모든 작가님들의 수고에 감사드리고, 이후로도 자신의 전문성과 그것을 세상에 다양하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소설 쓰기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제4회 포스텍SF어워드 심사평을 옮겨놓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까지 종합적으로 보시길 원하시면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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