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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지원 Jul 02. 2024

습도가 이럴 수가

시작과 끝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자 나타나는 희뿌연 바깥. 바로 앞에 있는 건물조차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로 이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집안에 들여놓은 습도계는 70%를 향했고, 숨 넘김은 다소 부드럽지 못했다. 공기 중에 수분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의식해 보면 하나의 숨이 무겁다. 하지만 아침 루틴을 출근 전에 하고 가야 하기에 이내 잊는다. 그리고 사무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시금 깨닫는다.


어쩌면 먼 옛날 어류가 육지로 올라와 포유류로 진화하기 시작한 순간이 이와 같은 날은 아니었을까. 이런 습한 날에도 무언가는 시작되기 마련이다.


시작을 생각하니 오히려 끝을 말하고 싶어진다. 시작은 또한 끝이기도 하다. 무한정 시작하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끝맺음 뒤에, 혹은 서서히 끝을 내가면서 시작이 시작된다. 돌아보면 가지가 돋아나는 마디 같은 것이 뭉툭하게 생겨 있다. 그리곤 마디 이전의 시간을 ‘그 시절’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뭉툭한 마디들이 돋아나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을 내는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동시에 많은 경험을 시도한 나를 칭찬하고, 그 시작과 끝은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지금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잠시 붙잡아본다. 이것이 스쳐 지나갈 끝자락이 될지, 찬바람으로부터 나를 지킬 대님이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저 앞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하고, 할 수 없으니까 마음을 비워낼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란 생각으로 소설을 써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거다. 뭐, 아무렴 어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외면과 침묵 대신 무엇이든 보고 뭔가 말을 건네는 쪽을 택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지금은 끝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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