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
나무는 익은 열매를 떨어뜨렸다. 아이는 떨어진 열매를 주웠다. 하나의 가지에도 새빨갛거나, 검붉거나, 황금빛이 나는 다채로운 동그란 열매들이었다. 열매가 고왔던지, 귀하게 여겼다.
아이는 열매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내리막길에 굴려보고, 멀리 던져도 본다. 동생 하나, 엄마 하나, 아빠 하나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은 열매를 산책길 30분 내내 꼬옥 쥐고 다니다가, 산책길 끝의 놀이터에서 모래 쌀밥 지을 때 양념으로 넣었다.
볼이 차갑고 시리다고,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장난감도 없고, 알록달록한 간식 가게도 없었는데 집에 가기 싫어한다. 여기는 숲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모든 게 공짜다.
이 공짜들에게 사무치게 감사하다. 살아가는 일이 낙원이 될 수 있도록 곁을 내주어서.
우리가 이미 낙원에 살고 있다는 걸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 <완벽한 날들> 중, 메리 올리버 지음
공짜를 좋아했다. 내 돈을 아껴주니 얼마나 실용적인지! 그래서 숲과 공원을 거닐다 오면 저절로 이런 말이 샜다.
"... 공짜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너무 훌륭해!"
공짜는 무가치한 것이라 은연 중에 생각했나보다. 공짜라서 '미안'하다니... 요즘은 조금 다르다. 알고보면 공짜 취급 당해온 것들이 소중하다는걸 알게 됐다. 지켜야 할 무언가로 느껴진다.
계기가 있다. 에코페미니즘을 알고부터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혁명>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생태주의와 여성주의를 회복하자는 책이다. 15명의 공동저자들은 그 동안 돈 덜 드는 것들을 가치절하 해오느라, 우리의 생명과 명예에 해를 끼쳤음을 알려준다.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자연, 주변부 지역을 끊임없이 비가치화하고 착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형명> 중, 여성환경연대 지음
돈 드는 것, 돈 덜 드는 것으로 이분화하며 살았다. 일해서 돈을 버는 유급노동과 집밥하고 청소하는 무급노동. 돈을 주고 사들이는 상품과 그냥 주어진 자연. 구매력의 상징인 '올 유행 신상품'과 절약의 상징인 '헌 물건'.
이런 이분법 이후 남은 것은 기후위기와 피로사회다. 제 살 파먹었다.
천연자원을 무자비하게 채취하고, 상품을 생산, 유통, 폐기한 결과? 우리는 쓰레기 지옥에 떨어졌고, 미세먼지를 마시며 살게된데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끝날지 모르며, 지구온난화로 초대형 태풍, 가뭄, 산불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
더 가치있다겨 '여겨지는' 인간이 되려면, 더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한 결과? 살림과 양육은 '돈 버는 일'에 비해 덜 존중받고 있다. 점점 살림은 기계에게, 양육은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 외주화하게 됐다. 그렇게 해결하는 방식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살림과 양육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이므로, 나 스스로도 하찮게 여기게 된 것이다.
오래된 물건이나 음악, 꽃과 나무, 동물과 사람에서 느낄 수 있던 시적인 요소들은 설 자리가 좁아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최신 기술의 신제품과 재력을 과시할만한 물건들(그리고 SNS)이 차지해버렸다.
이런 삶의 방식 이후, 나는 행복해졌을까? 성취감과 우월감이란 면에서 조금은 기분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피곤했다. 나의 눈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만 하는데, 편할리가 없었다.
찐 행복은 '돈 덜 드는 것'을 소중히 여긴 이후 찾아왔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며 성취감과 떳떳함, 안정감, 자립심, 시(詩)와 노래가 남았다.
성취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기분인 '성취감'은 남과 비교해서 돈을 더 많이 벌거나, 좋은 물건으로 몸과 집을 두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늘 쓰던 페이스트 치약을 고체 치약으로 바꿈으로써, 플라스틱을 덜 쓰고자 노력할 때에도 성취감을 느낀다. 비누로 머리를 감기 위해, 단발 머리를 한 뒤에도 성취감이 생겼다. 해냈다!
떳떳함.
노동하고 절약해서 저축함으로써 돈을 모으니 떳떳했다. 최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누리면서 낭비하지 않으니, 자원을 덜 파괴했기에 더더욱 떳떳했다.
안정감.
과잉소비를 하기 위해 돈을 모은게 아니므로, 앞으로 모은 돈을 허투루 쓸 일도 없다.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누린다. 낭비하지 않으니, 풍요롭게 산다.
자립심.
밥을 하고, 청소하며, 아이를 돌보는 일을 최소한으로 외주화하고, 나와 남편의 힘으로 해내고 있다. 돈을 주고 노동을 사기보다, 가족과 이웃이랑 연대하며 살림하고 양육한다. '이기심'이 아니라 '자립심'이다. 혼자 살 수는 없지만, 할 줄 아는 일이 많아지면 살림에 드는 비용을 줄이며 살 수 있다는 자립심이 생겼다.
시(詩)와 노래.
공짜를 소중히 여기다보면, 자연히 시와 노래가 남았다.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덜어냈더니, 남는 시간과 공간을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손길로 채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그리고 자연, 시간이 깃든 물건과 생각하며 사는 삶(철학과 사유)은 아름다웠다.
공짜들의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살려 한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검소한 삶, 나와 남편의 살림과 양육이 돈 버는 일이나 쇼핑 뒷전으로 미뤄지지 않도록. 그게 내 삶을 존중하는 방법이며, 비폭력적인 몸가짐이지 않을까.
다치고 상처받는 사람들과 자연이 최소화되도록, 개인적으로는 집밥을 하고, 숲과 공원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 바깥으로는 이렇게 글을 쓰고, 기부하며(제 용돈 15만원 중 오마이뉴스 1만원, 초록우산 1만원, 그린피스 3만원 기부중입니다!), 폭력적 상품 소비를 최소화하며(기업에 미치는 작은 영향력), 정신 똑바로 차리고 투표해야지(법과 제도에 미치는 작은 영향력). 늘 잘 하지는 못 하지만, 최소한의 지향성을 이렇게 갖고 살아야지!
공짜는 소중하다. 공짜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면, 삶을 회복할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공짜라는 말, 그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