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 육아 생활
매화가 폈다. 드디어 나갈 시간이다.
코로나 이전의 겨울은 따뜻했다. 기온이 더 높았다는게 아니다. 도서관과 미술관, 식당과 카페에서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추위를 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겨울은 다르다. 모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추위를 피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더 움츠러드렀다.
여태껏 문명의 힘을 빌어, 겨울인데도 엄혹하다는 느낌 없이 살아왔다. 추우면 미술관에 가고, 비가 오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지루해 하면 키즈카페로 가고, 배가 고프면 뜨끈한 국밥을 먹었다. 그런데 올 겨울에는 시계를 계속 봐야했다. 가장 따뜻한 정오와 오후 2시 사이를 기다려 산책하며 겨울을 보냈다.
겨울 동안 힘들었는데... 이제 매화가 핀거다. 입춘도 지났다. 봄이다! 나가자!
산책 준비물은 텀블러 두 개다. 한 개에는 아이들 우유를 담고, 다른 한 개에는 엄마, 아빠 마실 카누 커피를 탄다. 놀 때 최대한 돈을 덜 들이려 한다. 노는 데 돈 드는게 너무 이상하다.
'놀이 소비'에 익숙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주고 무언가를 산다는 게 조금은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나를 괴롭히는 일 같다. 나의 자립력을 퇴화시키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내 힘으로 뭐든 해 본다. 그러면 돈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걸 몸으로 알게 된다.
되도록 돈을 덜 쓰는 경험이 늘어갈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내 삶은 웬만하면 안 망하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산책 장소는 다양하다. 집 앞 산책로로 갈 때도 있고, 동네 아파트 놀이터를 순회하기도 한다. 차를 조금 더 타고 산과 공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어디든 좋다. 날씨는 포근하고, 매화도 예쁘니까.
내가 어릴 때 당연하게 누린 것들을, 나의 아이들은 누리지 못 하고 있다. 과거보다 집은 더 따뜻하고, 차는 조금 더 크고 안전하며, 간식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넘친다.
하지만 마당이 없다. 대문을 열면 나오던 차 없는 흙길과 동네 골목도 없다. 친구네 대문 앞에서 멜로디까지 집어 넣어 "OO야~ 노올자~"라고 부를, 동네 친구도 없다. 가장 행복했던 유년기의 요소들이 나의 아이들에게 없다. 물론 아이들은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만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간다. 유년기를 놀이로 채워주고 싶다. 클레이나 비즈, 장난감, 키즈 카페나 동물 농장 따위처럼 돈 주고 사는 놀이 말고, 주어진 자연 속에서 수다 떨고, 경치를 감상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 사유하는 그런 놀이 경험을 주고 싶다.
놀이마저 '소비'하는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길. 나의 아이들이 자연은 '놀이 소비'의 대안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의미가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면 '소비자'로서만 자랄 때보다 사는게 유리하다. 덜 시장 의존적인 사람이 된다. 돈 주고 해결하려들면 더 많이 노력해서, 더 오래 유급노동을 해야 한다. 그 이후 쥐꼬리만큼 남은 시간에 타인의 노동을 돈 주고 사서 쉬어야 한다.
적어도 놀이만큼은 돈 주고 사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소망을 담아 자연에서 마음껏 누리는 경험을 아이와 누적한다. 우리의 여유있는 삶을 지키고, 더 이상 자연을 파괴해서 '놀이 소비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와 황태 칼국수를 해 먹었다. 쥬키니 호박과 팽이버섯 세 개로, 어제 하루 소비는 5050원으로 마감했다. 잠깐 한눈팔면 소비가 늘고 가계부에 구멍이 뚫린다. 이럴 때는 집밥이 최고다.
오늘도 자연 산책과 집밥으로 하루를 정갈하게, 자립력을 높이고 싶다. 음, 그러니까 더 멋진 말로는...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고 싶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 스콧 니어링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중, 헬렌 니어링 지음
소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수행해야 할 노동의 양이 늘어날 뿐 아니라 모든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투여하게 되면 삶의 자율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에코페미니스트의 행복혁명> 중, 여성환경연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