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1] 지구에 무해한 생활이 주는 풍요로움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글을 브런치에 옮겼습니다.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15648)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살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직감 했습니다. 지구가 망하지 않도록, 건강한 지구에 살고 싶어 생활 양식을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를 연재합니다.
지구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고작 30년 걸렸다. 북극 한파, 초대형 산불, 미세먼지, 코로나바이러스, 가을 태풍. 기후 위기는 고작 한 세대의 작품이었다. 내 나이는 서른넷. 딱 내가 살아온만큼, 기후 위기를 촉발하는 탄소 중 반 이상이 배출됐다.
실제로 나는 탄소배출물을 급격하게 뿜어댄 세대답게 잘 먹고 잘 입으며 컸다. 매일 고기를 먹고, 옷장에는 옷이 그득했다. 길을 걷다 일회용 컵에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기분 전환을 했고, 화장대에는 립스틱을 색깔별로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더 편리하지 못해서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소비는 기후 위기를 촉발한다. 생산과 유통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소비는 결백할 수 없다. 기업은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수십 톤의 물을 쓰고, 서울 면적 18배만큼의 아마존을 불태워 고기를 판매한다. 돈을 주고 사는 상품 대부분에 탄소배출물이 숨어 있다.
그러면 기업과 법률 탓일까? 기업과 정치인들을 기후 악당으로 만들고,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살던 대로 살아보려고도 했다. 내 탓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죄를 짓는 것' 뿐이라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우리가 날씨다>의 저자)의 말이 맴돌았다.
내가 필요한 상품을 생산하느라 기업이 나 대신 죄를 짓다니. 기업의 죄를 줄여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덜 사는 일'이다. 하나라도 소비를 줄임으로써 그들의 상품이 하나라도 덜 생산되어야 했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기후 위기에 결백하게 대응하는 기업과 자영업자의 상품을 소비했다.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태도는 언뜻 결백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처럼 풍요로운 생활이 누적되면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의 책 제목처럼, '2050년 거주 불능 지구'만 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풍족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할 1인분의 책임이 있다.
그 시작이 '플라스틱 사진 찍기'였다. 일단 쓰레기 지옥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의 플라스틱 배출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0주간 사진을 찍었다. 일주일 동안 나와 남편, 그리고 두 아이가 먹고 마시고 사용한 흔적들이 사진 한 장씩, 고스란히 담겼다. 비닐은 아찔하게 많았다. 라면 사리, 콩나물, 두부 곽의 껍질에서 애호박을 감쌌던 랩과 시리얼, 빵을 먹고 남은 포장 비닐까지. 물건을 살 때마다 비닐이 쌓였다.
플라스틱도 마찬가지였다. 두부 한 모도 플라스틱 곽에 담겨 있었고, 마들렌은 플라스틱 뚜껑에 덮인 종이 곽에 포장됐다. 아이들이 선물 받은 클레이도 색깔마다 아주 두껍고 단단한 플라스틱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줄일 수 있었다. 아찔한 쓰레기 더미에 맞설 요령을 터득해갔다.
소비 패턴을 바꿨다. 그러면 필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 플라스틱도 줄일 수 있었다. 종이팩과 유리병에 담긴 물건을 고르고, 배달 음식이나 포장 음식을 지양했다.
맥주와 식용유는 유리병에 담긴 것으로, 우유는 비닐 포장 없이 파는 상품을 구매했다. 치약은 종이팩에 포장된 고체 치약을, 배달 음식은 먹고 싶어도 다섯 번 중 네 번은 참아봤다. 그래도 먹고 싶을 때는? 빈 용기나 냄비를 들고 가 가게에서 직접 포장했다. 다진 마늘 하나도 비닐에 소분해 파는 밀키트는 사절, 두부는 플라스틱 곽에 담긴 것 말고 판두부를 샀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덜 풍요롭게 살아보려 했다. 하지만 애쓸수록, 내가 얼마나 넉넉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뿐이었다. 맥주를 포기하기도 전에 병맥주를 찾았고, 플라스틱에 포장된 마트 칼국수면에서 눈을 돌리니 집 앞 칼국숫집에서 면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콩나물 한 봉지를 사도 비닐이 나왔다. 플라스틱 곽에 담긴 두부 대신 판두부를 샀지만, 전통시장이 아닌 마트에서 사는 이상 비닐이 따라왔다.
시부모님께서 친정 부모님과 나눠 먹으라고 선물해주신 곶감도, 친정 부모님께서 손주들 생각나서 사 오신 요구르트와 딸기 한 팩도, 모두 플라스틱에 포장되어 있었다. 플라스틱은 너무 흔해진 나머지, 선물을 받는 순간조차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비닐과 플라스틱은 씻어서 다시 썼다. 비닐은 주로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데 썼다. 때로는 마트에 비치된 비닐을 거절하고, 면 주머니에 채소를 담아온 후, 씻어 말린 비닐에 담아 보관했다. 플라스틱 딸기 팩은 튼튼하고 용량도 넉넉해 칼국수 면이나 삶은 시래기를 담을 때 딱 좋았다.
덕분에 우리 집 건조대에는 빨래처럼 비닐이 널려 있다. 멋은 없지만, 의미는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게 해주는 풍경 같아 볼 때마다 신난다.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사서 고생일까? 아니었다. 마냥 나를 희생하는 이타적인 일인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나를 지키는 일로 보답을 받았다.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2020년 10월부터 변동생활비가 줄었다.
변동생활비에는 식비(식재료, 외식, 카페), 생활비(의료, 의류, 유류, 대중교통, 여가, 잡화)가 포함된다. 부부 용돈은 각자 한 달 15만 원인데, 변동생활비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이 변동생활비를 10월부터 70만 원대로 마감했다.
절약가들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지갑을 열게 할 방법이 있다. 어떤 물건을 사도 후손들 보기에 죄스럽지 않을 쇼핑 환경이다.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원피스가 잘 관리된 중고 의류라면,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는 조악한 장난감의 재활용률이 높다면, 나 같은 사람들도 지갑을 연다.
실제로 12월, 우리 가족이 지출했던 265,557원의 생활비 중, 130,050원은 책값이었다. 일회용 테이크아웃 잔과 플라스틱 빨대를 제공하지 않는 책방에서 샀다. 이것도 모자라 유치원, 어린이집에 못 간 아이들을 위한 교육비로 이 책방에서 85,000원을 더 썼다. 요즘 말로 '돈쭐'이라 한다. 마음 따뜻한 사장님들이 부자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소비 수치심이 들지 않으면 죄책감 없이 적은 돈이나마 흘려보내고 싶다.
지구가 망할 것 같아 뭐라도 한다. 때로는 성공하고, 자주 실수 하기도 한다. 그 흔적은 가계부에 고스란히 남았다. 우리 집 가계부는 '지구를 구하는 가계부'가 될 수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기후 위기 시대, 풍요로우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가계부로 지구를 구할 수 있도록 1년간의 도전을 시작한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뭐라도 해야 하는 시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