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청년들도 '젠더 폭력'에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렸을 때 저는 ‘우리나라는 치안이 좋아’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주변의 여성들이 밤길이 무섭다거나, 낯선 사람의 접근이 무서웠다는 말에 “괜찮다”라는 의미로 건넨 말이었죠. 그런데 그 말이 위로는커녕 ‘불쾌감’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불안한 공간이라는 것을, 여성과 남성의 안전에 대한 감각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니까요.
저는 기자 생활을 2015년에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서 한국에서는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면서 가장 자주 했던 생각은,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사는 게 맞을까’였습니다. 제가 만나본 청년 여성들의 상당수는 일상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공간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쫓아오거나 문을 두드리는 스토킹, 신체 일부를 만지고 도망가는 성추행, 공공장소마저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불법촬영 등은 남성들에게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범죄이지만, 여성에게는 실재하는 공포였습니다. 젠더 폭력에 의한 여성의 고통은 거리에 나온 여성들이, SNS상의 지위고하와 세대를 막론한 여성들이, 저의 친구들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지난해 두 여성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먼저 고 이예람 중사께서 성추행 피해를 입고 이를 신고했으나, 오히려 2차피해를 입은 뒤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건을 은폐하거나 부실하게 수사했던 사람은 1~2명이 아니었습니다. 매우 조직적인 2차가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특히 남성 중심의 조직이 성폭력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그들 모두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셈입니다.
이와 같은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의 안전과 노동권을 위협하는 아주 중대한 문제이지만, 그럼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성을 동료가 아닌 성적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의 안전을 수시로 위협하면서도 그것에 너무나도 둔감한 남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한 미투운동 연속 토론회에서 <"신입에게 만남 요구하는 40~50대 유부남들... '로맨스'로 생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는데, 큰 화제가 된 바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사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권수현 여성학자님이 공공기관 고충심의위원을 맡으며 직접 경험한 내용이었습니다. “사회 초년생이 들어오면 조직 내에서 로맨스 대상으로 언급이 되며, 사적 만남이 부추겨진다”라며 “고용이나 승진 등 인사에 관련해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할 경우 여성들에게는 치명적인데, 본인들은 로맨스로 생각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사적만남, 성희롱 등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조직 내에서 가장 지위가 취약한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고연령층보다는 저연령층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피해가 컸습니다. 즉 20대 비정규직 여성은 직장 내에서의 안전을 보장받기가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일’만 열심히 해도 힘든 직장에서 경계와 불안까지 떠안게 되는 것이죠.
가장 친밀한 남성이, 가장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
다른 한 명은 지난 8월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해 세상을 떠난 여성입니다. 심지어 가해자 남성은 처음 수사 당시 고작 ‘상해’ 혐의에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뒤늦게 여론의 공분이 일어나자 혐의가 ‘상해치사’로 바뀌었고 구속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근거로 발표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이 최소 97명이고, 살인미수 등 사건에서 생존한 여성은 최소 131명이었습니다. 참고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여성 살인 피해자 숫자만 138명이었습니다. 언론 보도가 남편이나 애인 등의 모든 여성살해를 담고 있지 못하다는 걸 감안한다면 138명 중 친밀한 관계에 의한 살인 비율은 더 높을 수도 있을 겁니다.
‘페미사이드’, 풀어서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말을 혹자는 ‘망상’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저희 <오마이뉴스>의 교제살인 기획을 엮은 책의 제목이 무려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책은 2016~2018년 교제살인 108개의 판결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여성들은 여성답지 못하다고, 잠자리를 거부했다고, 헤어지자고 했다고, 남성들을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냈다고 죽었습니다.
배우자나 남자친구로부터 당한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불법촬영, 가스라이팅을 고백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고, 이는 가장 친밀한 사람,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도 여성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2019년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청년 갈등의 ‘젠더 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를 살펴보면 청년 여성의 범죄 불안에 대해 조사한 결과 살인, 폭력, 강간 등의 피해에 대한 불안을 호소한 비율이 53.4%, 불법촬영은 60.4%, 공중화장실 이용은 69.8%, 집에 혼자 있을 때는 46.9%가 불안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청년 남성은 살인, 폭력, 강간 등의 피해에 대해선 19.6%, 불법촬영은 18.9%, 공중화장실 이용은 18.7%, 집에 혼자 있을 때는 18.2%였습니다. ‘안전’이 결코 평등하게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성평등하지 못한 구조가 ‘안전하지 못한 세상’ 만든다
그런데 상당수의 남성들은 뉴스에서 나오는 이러한 젠더 폭력에 대해서 ‘남의 일’처럼, 나와 관계없는 일처럼 생각합니다. 특별히 나쁜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이니, 그 ‘나쁜 사람’을 잘 처벌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남성들이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점은 여성을 위협하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이런 폭력들이 결국 성평등하지 못한 사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남성 지배와 성차별이 당연시되는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은 동등한 시민이 아닌 ‘성적 대상’이나 남성의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혹자는 여성은 신체적인 힘이 약해서 피해에 쉽게 노출되고, 불안하고 고통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폭력을 ‘자연화’시키기도 합니다.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잘 보호하거나, 여성 스스로 조심하는 것을 오히려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은 잘못됐습니다.
지금껏 인류의 진보 과정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며, ‘당연히’나 ‘어쩔 수 없는 것’ 역시 결코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 구조를 갖는다면, 여성이 ‘만만하거나’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하지 않는다면, 특히나 지금까지 남성 중심의 사회를 지탱해오고 공조해왔던 남성들이 ‘다른 생각’을 갖기 시작한다면 분명 ‘젠더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군대 내 부조리에 대해 다룬 <D.P.>라는 드라마를 보며 분통을 터트리는 남성들을 보면서 청년 남성들 역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더불어 청년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폭력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악마와 같은 가해자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방관자들이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애써 무시해온 것입니다. 군대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의 폭력적 구조에서는 이처럼 다수의 방관자들이 존재합니다.
군대는 특성상 사교적인, 신체 능력이 좋은 ‘표준적 남성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선호됩니다. 신체적으로 약하고, 소심한 성격을 갖거나, 특이해 보이는 이들은 ‘전투와 공동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문제시됩니다. 그렇게 ‘상명하복’의 명목하에 표준에 부합하지 않은 남성과, ‘비남성’인 여성을 배제하는 시스템이 공고하게 유지됩니다.
이처럼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지는 환경일 때, 누군가는 함부로 대하고 배제해도 마땅한 존재처럼 여겨질 때, 폭력은 폭력으로 불리지 못한 채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일이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인지 감히 묻고 싶습니다.
차별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차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일방적인 폭력이 가능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 청년들은 안전을 위협받고 존엄을 잃어갑니다. 저는 군대 내 폭력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청년 남성들이 젠더 폭력 피해의 불안과 아픔에도 공감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방법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리라 믿습니다. 부디 청년 남성들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성차별이라는, ‘여성혐오’라는 관습에 균열을 내고 성평등을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 성평등 포럼 <세션 2: 안전한 사회>에 토론자로 참석해서 발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