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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브장 Jun 06. 2022

<봉명주공>, 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

영화 <봉명주공>은 재건축을 봉명주공의 마지막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영화는 봉명주공 아파트의 풍경과 그곳에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이런 종류의 여느 다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영화가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사라지는 공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라는 공간


아파트는 언젠가부터 한국의 주거를 대표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하는 최적의 수단이었기 때문일까요. 어느새 도시는 아파트로 가득 찼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공간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공간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단순히 주거를 위한 공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가 자신의 부를 증명하고, 교육의 수준을 결정짓기도 하고, 그 안에서 하나의 계급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값이 끝을 모르고 올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공간을 갈망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염원은 지어진지 30년, 40년 된 아파트들을 없애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오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고작 30년, 40년일 뿐인데 말이죠. 오래된 아파트는 그렇게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그곳을 떠난 사람들 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영화 <봉명주공>에서도 이렇게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30년 전 이곳에 들어와서 자식을 다 키우고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파트가 흔치 않던 시절에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 그렇게 각자의 시간이 담긴 아파트를 사람들은 떠나야만 했습니다.



아파트, 누군가의 고향...


예전에 TV를 보면 댐을 만들면서 사라진 동네의 이야기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곳을 떠난 사람들이 이제는 갈 수 없는 물속에 있는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재건축되는 아파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마도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대부분은 아파트에서만 살았을 것이고, 그들에게 거대한 아파트 단지는 하나의 마을이자, 고향이 아니었을까요.


<봉명주공>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구조를 가진 아파트 단지입니다. 이곳에는 5층짜리 아파트 단지와 2층짜리 건물, 그리고 단층으로 된 건물이 한 단지에 함께 있습니다. 마치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하나의 마을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 영화 속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을이 사라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봉명주공> 뿐만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아파트 단지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더 높고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낡은 내 고향을 발전시키자는 마음과도 같은 것일까요?



사라지는 공간에 대하여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사라집니다. 아파트가 사라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오는 것도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의 순환처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높은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공간의 이야기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 단순히 건물이 사리지고, 나무와 꽃들이 사라지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 안에서 어울려 살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그 공간과 함께 머물러주던 지나간 시간들도 사라지고, 하나의 마을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봉명주공>은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내용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공간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기록이 담겼기 때문에. 그 기록을 따라가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래서 의미 있는 영화, <봉명주공>


여러분에게 사라진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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