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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ang is ainm dom Apr 01. 2016

Fáilte Ireland

2015.03.30일의 기억.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는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패트릭과 디는 언제든 방에 있고 싶으면 방에 머물러도 된다고 했지만, 나 역시 홈스테이에 있는 동안 계속 낮에 방안에 박혀있기도 싫었기에, 그리고 그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기에 일단은 더블린 센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관광지 선정보다 더 큰 문제는 옷이었다.

한국에서 올 때 1년 내내 일교차가 별로 없다, 영국과 비슷한 날씨다. 라는 말에 괜히 짐 부피를 늘리기도 싫어 봄, 여름가을 옷만 가득 챙겨왔는데더블린은 4월이 다 되가는데도 초겨울과 같은 추위와 비바람으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티셔츠, 긴팔남방스웨터 위에 1주일째 매일 똑 같은, 등판에 날개가 그려진 키덜트스러운 패딩조끼를 입고 더블린 시내와 교외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면서 돌아다녔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보고 환장을 하는, 가격도 싸고 품질도 괜찮은 페니스가 있긴 했지만페니스에서 파는 아우터는 너무 얇아보이고 곳에서 아우터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그래서 더블린 시내에 위치해 있다는 쇼핑센터 중 하나인, 아일락(Ilac) 쇼핑센터로 들어갔다다양한 브랜드들이 있었지만한국  방에 뻔히 있는 겨울 옷들을 여기서 새로 웃돈을 주고 산다는  너무나도 아까웠다그러던  눈에 영국에서   갔던 아울렛, T.K. 맥스가 들어왔다남자 S 사이즈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의외로 마음에 드는 옷들이 많이 보였다.

많은 옷들 중 최종 후보는 세 벌이었다. 따뜻해 보이고 파란 색깔도, 후드를 접을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드는 <DC슈즈> 보드복, 따뜻해 보이고 방수도 잘 될듯한, 이름부터 범상찮은 <브레이브 소울>의 가죽점퍼, 방수도 잘 되 보이고 바람도 잘 막을 것 같은, 브랜드 이름이 너무 오글거려 마음에 든 <빌런>이라는 브랜드의 후드 자켓.

가죽점퍼는 입어본 적도 없고집어들자니 마냥 멋쩍어 후드 자켓보다 훨씬 도톰한 60유로짜리 보드복을 집어들던 나는 멈칫했다.
(이건 보드복이다. 나는 보드를 탄 적도 없고, 여기서 탈 일도 없다. 아무리 방수가 잘 되고, 따뜻하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게 쳐다볼까?)하며 보드복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걸어두었다가 하기를 몇 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여기는 더블린인데.) 옷을 한 벌 더 사려다가, 어차피 내일도 시티센터로 나올 테니, 하룻밤 자면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결심한 후, 잠시 둘러본다는 게 네이비색 노트북 가죽가방에 꽂혀 40유로를 더 써 버렸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모아온  중 12만원을 쓴다고 생각하니 돈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소비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옷을 구매하고,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한 손에 빨래 맡긴 백팩 대신 들고나온 보스턴백을 들고 고픈 배를 달래러 버거킹으로 들어갔는데, 자라 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반대의 경우 같지만,) 와퍼 단품이 6유로가 넘는 걸 보고 기겁해 버렸다. [주문할꺼야?] [베이컨 치즈 와퍼 하나 줘.] [밀로 할꺼야?] [뭐라고?] [세트메뉴로 할 꺼야?] [아니아니야버거만 줘.] 와퍼를 받아 들고 앉으니 한국돈 7천원정도에 벌벌 떠는 내가 너무 처량해 보였다. 그래도 어쩌랴. 나는 가난한 워홀러인데. 하고 스스로를 달래는데, 갑자기 짭짤하고 기름진 치즈스틱이 너무 먹고 싶었다. 고민 끝에 초록고추가 송송 들어간 1.5유로짜리 치즈볼을 추가로 주문했다. 매콤한 치즈볼을 깨물며 계산해 보니, 세트메뉴보다 1유로가  비쌌다. 콜라도 없는데. 앞으로는 그냥 세트메뉴를 사먹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버거킹을 나와 밥도 사먹고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니 밥, 아니 빵이 아까워 리피강변을 따라 걷다가, 대기근 동상 앞에서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수리중인 이민선, 지니 존슨 호를 보다 저녁시간에 늦지 않게 홈스테이로 향했다.

홈스테이로 돌아와 새로  가방에 노트북도 넣고, 폴더도 넣었는데, 옵션으로 딸려온 태블릿 케이스에 태블릿을 넣는데, 태블릿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대로 쓸까 고민하다가, 결국 오늘 봤던 가격이 비슷한 자켓으로 교환해야겠다는 생각에 고이 접어 다시 보스턴백 안으로 넣고, 저녁으로 패티와 치즈만 들어간 햄버거와 드레싱이 없는 샐러드를 마요네즈를 찍어 먹으며 이탈리아 여학생들의 페니스의 가성비 찬양을 듣고, <먹고기도하고사랑하라> 에서 나왔던 이탈리아어들을 어설프게 따라 하며 실없이 웃다가 방으로 올라와 샤워를 하고, (아그냥 햄버거에 샐러드 넣고 브라운 소스랑 마요네즈 넣어서 먹었으면 맛있었을 텐데근데 오늘 햄버거 두 개나 먹었네. 점심때 그냥 따끈한 수프나 사 먹을걸!) 라며 하찮고도 여유로운 후회를 하다 베게에서 나는, 내 향수 냄새와 섞인 옥수수 쉰내를 맡으며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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